기자명 이효영기자
  • 입력 2016.01.21 17:13
 

미국 대선전의 신호탄인 아이오와 주 당원대회가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힐러리 클린전 전 국무장관에 박빙의 추격전을 펼치면서 ‘힐러리 대세론’이 흔들리고 있다.

민주당 첫 후보 경선(2월 1일)이 치러지는 아이오와주 코커스를 앞두고 실시한 최근 여론조사에서 샌더스 후보가 힐러리 전 국무장관을 아이오와에서 역전하고 두 번째(2월 9일) 경선지인 뉴햄프셔에서 27%포인트 이상 이기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전국적으로는 클린턴 전 장관이 여전히 우위에 있지만 지난해 4월에는 50%포인트 이상, 수주일 전만 해도 20%포인트 벌어졌던 두 후보의 격차는 최근 뉴욕타임스·CBS 여론조사에서 7%포인트까지 좁혀졌다.

왜 이런 예상치 못한 ‘샌더스 열풍’이 일어나는 있는 걸까.

불평등 심화로 기득권 세력에 대한 반발 커져

가장 큰 원인은 대중의 욕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민주·공화 양당 체제에 대한 반발, 약자 보호를 위해 기득권 타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불만을 막말을 통해 속시원히 지적하면서 화제를 모았다면 샌더스 역시 민주당 기득권 세력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의 표심을 전략적으로 공략했다는 것.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심화된 불평등도 한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은 이익을 내지만 개인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현실, 수백배가 넘는 최고경영자와 직원 평균 급여비율 등 미국 자본주의 사회의 불합리성이 ‘바꿔보자’는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샌더스가 정치광고에 집중했다는 점도 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샌더스 의원은 지난해 11월 이후 TV광고에 970만 달러(118억 원)를 써 740만 달러(90억 원)를 쓴 클린턴을 압도했다. TV광고 횟수도 지난해 12월 7600회 이상 상영해 클린턴보다 3분의 1가량 분량이 더 많았다.

일각에서는 세번째 대통령을 배출하려는 부시 가문과 두번째 대통령에 도전하는 클린턴 가문의 ‘왕조 대결’ 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 유권자들이 식상해 하던 차에 샌더스의 도전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고도 본다.

특히 청년층의 샌더스 지지율이 높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뉴욕타임스·CBS 조사에서 샌더스는 45세 이하 연령대에서 힐러리의 2배 가까운 지지율을 보였다. 최근 USA투데이·락더보트 조사에서도 35세 이하 유권자의 46%가 샌더스를 지지한 반면 힐러리 지지는 35%에 그쳤다. 민주, 공화 후보들 가운데 74세 최고령인 샌더스가 젊은층 지지를 많이 받는 것은 사회에 만연한 차별이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젊은층의 생각과 샌더스의 사회주의적 정치행보가 시의적절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샌더스 후보는 소득 불평등, 대형은행 개혁, 총기 규제, 세법 개정 등 그의 공약이 과격하다는 비판에 대해 “부자들에게 감세해 준 정치인들이 최저임금 인상은 반대하는 것, 소득 증가분의 대부분이 상위 1퍼센트에게 돌아가는 미국의 현실이 과격한 것”이라며 “미국은 이런 부도덕한 경제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류 언론들은 여전히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최종지명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샌더스 지지층은 급진적 성향의 백인이 다수여서 표를 확장하는 데 필요한 흑인이나 히스패닉계 확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샌더스는 오바마와 닮은꼴?

샌더스가 클린턴보다 TV광고 비용을 더 많이 쓸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만큼 후원금을 많이 모았기 때문이다.

샌더스 의원은 대규모 후원금을 모을 수 있는 슈퍼팩(정치행동위원회)나 억만장자 등 부자들의 기부를 거부하고 십시일반 소액기부금으로만 선거를 치르고 있는데 지난 1년 간 모금한 선거자금이 7300만 달러로 클린턴 전 장관(1억1200만 달러)의 3분의2 수준의 모금실적을 올렸다.

샌더스의 소액기부 모금은 8년전 풀뿌리 소액 기부에 의존했던 버락 오바마 후보와 닮은꼴이다. 지난 한 해 샌더스에게 선거자금을 낸 개인 기부자 수는 250만 명에 달해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세웠던 220만 명 기록을 넘어섰다. 이들의 평균 기부액은 1인당 30달러에 조금 못미쳤다.

슈퍼팩이나 부자들에 의존하지 않고도 수백만 개인기부자만으로 선거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샌더스가 오바마처럼 당선 가능성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여진 신호라고 선거진영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부자 들 중에서도 샌더스를 지지하는 이들이 물론 있다.  애플의 공동 창업주인 스티브 워즈니악, 영화 007시리즈의 주인공 다니엘 크레이그 등은 샌더스 지지자임을 표명하기도 했다.

이와함께 아이오와주 여론조사에서 현재 샌더스가 앞서고 있는 것 역시 8년전 초선 상원의원 ‘오바마 바람’이 불던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 힐러리에게는 ‘아이오와 악몽’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시에도 힐러리 대세론이 팽배했지만 아이오와에서 오바마, 존 에드워즈에 이어 3위에 그친 후 결국 힐러리는 경선에서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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