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1.21 18:19
바람이 불어 풀이 눕는 사진이다. 풀은 강인한 생명력, 스러지지 않는 힘을 상징하는 식생이다. 그런 이미지 때문에 동서양의 많은 문인들이 풀을 읊었다.

당(唐)나라 때의 스타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풀을 소재로 다룬 작품이 있다. 그가 젊었을 적 과거를 보러 수도 장안에 들렀을 때 이름 높은 한 시인에게 자신의 시재(詩才)를 선보이기 위해 건넨 작품이었다. 그 앞부분은 이렇다.

 

離離原上草,一歲一枯榮。

野火燒不盡,春風吹又生。

 

번역하자면 이렇다.

 

들판 가득 자란 풀, 세월 따라 자랐다가 사라지지.

벌판을 휩쓰는 불길도 그를 없애지 못하지, 봄바람 불면 또 자라날 테니.

 

한국의 시인 김수영도 같은 감회를 지니고 있다. 그가 1968년에 발표한 시 ‘풀’의 앞 내용은 이렇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시인의 시야에 들어오는 풀은 그렇게 가장 약하면서도 가장 강하다. 들판을 모두 태우는 불, 요원지화(爎原之火)의 맹렬함에 풀은 먼저 사라지지만 이듬해 봄이면 그 따사로움을 좇아 가장 먼저 생명의 시작을 알린다. 한국 시인 김수영의 작품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등장한다. 풀의 이미지는 그렇듯 이중적이다. 변변치 않아 보이는 모습 속에 숨어 있는 강력한 생명력, 굳이 다듬자면 ‘시원(始原)의 지평’이다.

그래서 풀을 뜻하는 한자 ‘草(초)’는 사물의 근원이자 시작이라는 의미와 함께 변변치 않은 것, 정교함을 결여한 엉터리 상태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모두 지닌다. 막 걸음마를 뗀 뒤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단계가 ‘초창(草創)’이다. 문장을 쓸 때 먼저 만든 그 바탕을 초고(草稿)라고 부르고, 계획의 토대로 만든 것을 초안(草案)이라고 적는다. 사료(史料)의 처음 원고를 사초(史草)라고 적는 이유다.

변변찮고 하찮다는 의미로 적는 단어도 많다. 정교하게 다듬지 않는 일을 초략(草略), 진중하지 못하게 일을 대충 마무리하면 초솔(草率)로 적는다. 붓글씨체 중 흘림체로 적은 것을 초서(草書)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다’의 ‘초개(草芥)’도 같은 의미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대화록 중 청와대가 보유했다는 원본이 없어졌다. 대한민국의 매우 중요한 역사 자료, 즉 사초(史草)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끈다. 우리는 ‘풀’이 지니는 두 가지 의미 중 ‘하찮음’에만 주목하는 모양이다.

역사를 제대로 적지 못하고, 세우지 못하면 나라의 근간은 망가진다. 사초를 잃음은 역사의 저본(底本)을 거리의 하찮은 풀처럼 홀대하는 경우다. 생태계의 바탕 자원인 풀의 중요성을 간과한 태도이니 그 위에 존재하는 다른 생명들 또한 온전할까.

 

<한자 풀이>

離(이별 리): 서로 헤어짐을 뜻하는 한자. <주역(周易)>에 나오는 괘(卦)의 이름이기도 하다. 왕성한 모양을 뜻한다.

枯(마를 고): 식물이 마르거나, 시드는 상태. 고목(枯木)이 대표적 쓰임새다. 기운이 떨어진 모습도 이 글자로 표현한다.

榮(영화 영): 위의 글자와 정반대의 의미다. 식물이 왕성하게 자라나는 모습이다. 둘을 합친영고(榮枯)라는 말이 자주 쓰이고, 그 뒤에 다시 번성함(盛)과 시듦(衰)의 두 글자를 붙이면 영고성쇠(榮枯盛衰)다.

草(풀 초): 잡풀을 가리킨다. 그러나 풀이 생명의 바탕이라는 점에서 시작과 근본이라는 의미도 얻었다. 아울러 하찮다, 귀하지 않다 등의 의미도 획득한다.

芥(겨자 개, 풀 갈): 매운 맛을 내는 겨자. 하찮은 풀의 의미도 있다.

 

<중국어& 성어>

草 cǎo

草芥 cǎo jiè ‘초개처럼 버린다’는 우리말 의미와 같이 쓰인다.

草率 cǎo shuài 엉터리, 지나치게 간략한 상태. 행동 등이 경솔한 경우를 표현한다.

潦草 liáo cǎo 제대로 다듬지 않은 글씨나 문장을 가리킨다. 행동거지 등이 매끄럽지 못한 경우에도 쓴다.

草菅人命 cǎo jiān rén mìng 菅은 우리 발음으로는 관. 골풀과,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라고 한다. 역시 둘을 합쳐 ‘하찮다’의 뜻이다. 사람의 목숨(人命)을 들에 난 풀처럼 여기는 태도다. 백성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과거 봉건왕조 관료 등의 행위를 비판할 때 썼던 성어다. 지금도 많이 쓰는 말이다.

草木皆兵 cǎo mù jiē bīng 서기 384년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은 지금의 난징(南京)에 있던 동진(東晋)을 공격했다. 그러나 부견은 오히려 동진의 군대에 대패한다. 그들에 거꾸로 쫓겨 다닐 때 산천의 초목이 모두 적군으로 보였다는 데서 나온 성어다. 고립무원의 경우에 빠져 매우 민감해져 있는 상황을 가리킨다. 그 앞에 風聲鶴唳 fēng shēng hè lì라고 적어, 역시 바람소리(風聲)와 학 울음소리(鶴唳)에 적병이 나타난 줄 알고 공황에 빠지는 모습을 표현했다. 요즘에도 자주 쓰는 성어다. ‘風聲鶴唳, 草木皆兵’ 함께 외워두면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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