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1.21 18:25
혐오의 대상인 쥐. 그러나 다산(多産)과 함께 부지런함의 이미지도 있다. 그럼에도 쥐에 관한 동양의 연상은 나쁜 쪽으로 많이 기운다. 그를 빗대 사람의 못남을 이야기하는 숙어가 발달했다.

이 한 여름, 갑자기 쥐에 관한 잡념이 떠오른다. 쥐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과거 농사를 천업(天業)으로 삼던 왕조 시절의 동양에서는 쥐가 절대적인 혐오 동물이었다. 힘들여 생산한 곡식을 훔쳐 먹는 얄미운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태산이 짜르르 울릴 정도로 소란스러운가 싶었는데, 쥐 한 마리가 지나가더라”는 ‘태산명동에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라는 속담도 쥐에 관한 왠지 모를 노여움을 담고 있다. 그런 정서는 우리보다 중국이 훨씬 더하다.

물산이 풍부해 파라다이스와 같다고 해서 ‘천부지국(天府之國)’이라 적었던 지금의 중국 쓰촨(四川)에서는 쥐를 ‘하오쯔(耗子)’라고 불렀다. 무엇인가를 반드시 ‘축내는(耗 우리 발음 모, ‘消耗’-소모-라는 단어 참조) 놈’이라는 뜻이다.

그 쥐에 관한 쓰촨 지역의 수많은 연상 중 중국 현대 개혁개방과 이어진 말이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이다. “검은 고양이든, 하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이 말에는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우리를 잘 살게 만드는 틀이 중요하다는 덩샤오핑의 실용적 사고가 담겨 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역시 쥐를 바라보는 중국인의 뿌리 깊은 혐오감이 숨어 있기도 하다.

밉고 조잡하거나, 음지만 떠돌며 나쁜 꾀를 내는 사람에 관한 형용에서도 흔히 쥐가 등장한다. 서목(鼠目)이나 서안(鼠眼)은 쥐의 눈 모양새를 일컫는 한자단어다. 이리저리 눈치만 살피다가 남의 것을 훔쳐 먹는 쥐의 행태를 사람의 행위에 덧붙여 비꼬는 말이다. 서담(鼠膽)이라고 적으면 쥐처럼 한껏 눈치만 살피면서 통 크게 나서지 못하는 사람의 형용이다.

성호사서(城狐社鼠)라는 한자 성어가 있다. 나라를 지키는 성채 안에 숨어든 여우, 나라의 기틀을 상징하는 사직(社稷)에 자리를 튼 쥐를 가리킨다. 튼튼한 성벽 틈 안에 굴을 파서 여우 등이 생활하면 성벽은 곧 헐린다. 사직에 숨은 쥐도 마찬가지다. 쥐들이 번성하면 나라의 견고한 사직도 흔들거린다.

성채는 나라 안보의 초석이고, 사직은 민생의 토대를 이루는 정부의 기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요즘 그 사직(社稷)에 숨어든 쥐들이 화제다. 원자력 발전소의 비리는 물론이고, 나라 곳간을 책임진 고위 세무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았다고 해서 하나 둘씩 검찰에 불려 다닌다.

성채가 허물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나라의 운영을 책임진 공직자들의 부패와 비리가 끊이지 않아 걱정이다. 우리는 이제 그런 ‘사람 쥐’에 대한 혐오를 감추기 힘든 상황이다. 쥐가 옮기는 전염병의 파괴력은 매우 크다. 페스트라고 불렸던 흑사병(黑死病)은 쥐가 유럽의 근간을 흔들었던 대표적 사례다. 오죽하면 쥐로 인해 생기는 유행병이라는 ‘서역(鼠疫)’이라는 단어가 생겼을까.

때리면 잠시 숨어들었다가 곧 다시 나타나는 쥐처럼 적지 않은 공직자들이 그런 모습으로 우리 사회에 출몰한다. 그들로 인해 사직의 견고함이 흔들려, 마침내 쥐가 옮기는 대형의 역병(疫病)으로 번질까 이 한 여름이 왠지 스산하다.

 

<한자 풀이>

鼠(쥐 서): 쥐의 모습을 그린 상형의 글자.

耗(소모할 모, 소식 모): 소모하다. 쓰다, 소비하다. 없애다. 흉년 들다. 덜다. 어지럽다. 비다, 공허하다. 척박하다. 해치다.

猫(고양이 묘)

社(모일 사, 토지신 사): 모이다. 제사 지내다. 땅 귀신. 토지신. 단체, 모임. 사창(社倉: 각 고을의 환곡(還穀)을 저장하여 두던 곳집). 사학(社學). 행정 단위. 어머니.

稷(피 직): 피(볏과의 한해살이풀), 기장(볏과의 한해살이풀). 곡신(오곡의 신). 농관(農官). 빠르다. 삼가다. 합하다. (해가)기울다.

疫(전염병 역)

 

<중국어&성어>

鼠 shǔ: 쥐를 가리키는 글자. 중국 입말에서는 흔히 앞에 ‘老(로 lǎo)’를 붙여 ‘老鼠 lǎo shǔ’라고 한다.

抱頭鼠竄(抱头鼠窜) bào tóu shǔ cuàn: 앞의 두 글자는 머리를 싸매는 모습. 뒤의 두 글자는 쥐가 구멍으로 달아나 숨는 행위다. 맨 뒤의 竄(찬)이라는 글자가 구멍(穴)에 뛰어든 쥐(鼠)의 모습이다. 낭패를 맞아 급히 도망치는 모습을 쥐로 형용했다. 급한 일을 당해 마구 망가진 형태를 표현할 때 자주 쓰는 성어다.

膽小如鼠 dǎn xiǎo rú shǔ: 이리저리 눈치 살피는 쥐. 일종의 비겁함이다. 그처럼 담량의 크기가 보잘 것 없어 남의 안색만 살피는 사람에 관한 형용. 직역하자면 ‘쥐처럼 담이 작다’다.

老鼠過(过)街,人人喊打 lǎo shǔ guò jiē,rén rén hǎn dǎ: 아주 자주 사용하는 성어. 쥐 한 마리 길을 지나가니 사람들이 ‘때려 죽여라’고 외친다는 뜻. 쥐에 관한 적개심이 보인다. 사람들에게 공분을 일으킨 대상에게 군중의 분노가 몰림을 의미한다.

城狐社鼠 chéng hú shè shǔ: 뜻은 본문과 같다.

鼠目寸光 shǔ mù cùn guāng: 쥐는 멀리 보지 못한다. 안목이 짧다는 뜻이다. 겁 많은 쥐, 담량 작은 쥐의 뜻과 같다. 눈앞의 이익만을 탐내는 사람을 가리킨다.

投鼠忌器 tóu shǔ jì qì: 쥐가 그릇이나 깨지기 쉬운 집물 근처를 오가면 뭔가를 던져 그놈을 잡기가 어렵다. 그 상황에 대한 묘사다. 생각할 게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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