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효영기자
  • 입력 2016.01.22 16:19

전세계적으로 술 좋아하기로 유명한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술은 언뜻 소주인 것 같지만 사실은 맥주다. 맥주는 출고량, 소비량, 선호도까지 다 1위다.

지난해말 농림축산식품부가 펴낸 ‘2015년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주류’ 보고서에 따르면 맥주 출고량은 2009년 196만㎘에서 2013년 206만㎘로 5.1% 증가했다. 같은 기간 희석식 소주 출고량은 93만㎘에서 90만5000㎘로 오히려 2.5% 줄었다. 국민 1인당 술 소비량도 맥주는 2010년 139.8병에서 2013년 148.7병으로 8.9병 늘어난 반면 소주는 66.4병에서 62.5병으로 3.9병 감소했다.

최근에는 수입 맥주까지 가세해 맥주 소비가 더 늘고 있다. 국내 맥주 수입은 지난 2009년 4만1492톤, 3716만달러어치에서 2014년 11만9500톤, 1억1169만달러로 5년새 양이나 액수로 300%가까이 폭증했다.

특히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유통되는 가정용 맥주 시장은 수입산의 공세가 거세다. 5년 전만 해도 국산 대 수입이 8대2 정도의 비중이었으나 최근 6대4 정도로 좁혀졌다. 빠르면 올하반기께 절반씩의 구도가 된 후 내년에는 수입이 국산을 추월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맥 폭탄주 문화’로 인해 소주와 맥주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맥주는 소주에 비해 훨씬 가격이 비싼데다 소비도 더 많이 되기 때문에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가격과 맛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산 맥주는 비싸다? 세금·가격 규제 때문

절대가격으로는 물론 국산맥주가 수입맥주보다 싸지만 수입산은 으레 비싸겠거니 생각하는 소비자들의 상대적 기준으로 볼 때 국산맥주는 늘 비싸게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국산맥주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은 수입 맥주에 비해 국산 맥주의 세금이 더 비싸고 가격규제도 더 엄격하기 때문이다.

수입맥주나 국산맥주나 주세율은 72%로 같다. 그러나 과세기준이 다르다. 국산맥주는 맥주 원가에 광고비, 판매비와 관리비, 영업비, 제조사 마진까지 더해서 나오는 ‘출고가’를 세금 매기는 기준으로 잡고 있다. 반면 수입맥주는 영업·마케팅 비용이나 마진 등이 포함되지 않은 단순 수입가격에 관세(약 15%)가 붙은 ‘수입신고가’가 세금 매기는 기준이다.

이렇게 되면 대략 국내 맥주업체의 맥주 355㎖ 한캔당 주세는 395원이 붙지만 수입맥주의 주세는 212~381원이다. 출발선이 차이 나는 만큼 수입 맥주의 가격경쟁력이 높다.

맥주에는 주세만 있는 게 아니라 주세의 30%만큼 교육세가 붙고 이를 합친 액수에 10% 부가가치세를 더한다. 제조원가를 100으로 했을때 국산 맥주의 최종 출고가는 212.96으로, 맥주 소비자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53%에 달한다. 주류업계에 따르면 국산 맥주에 붙는 세금이 일본(43.8%)이나 영국(33.1%)에 비해 높고 독일보다는 100배 이상 높다고 한다.

더욱이 국내 주류는 출고가 이하로 팔 수 없도록 할인판매를 엄격히 규제하지만 수입맥주는 자율적으로 이윤을 책정할 수 있으니 가격 규제가 거의 없다. 수입맥주가 4캔을 묶어 1만원에 파격 세일을 할수 있는 이유다. 한캔당 3000원대, 4000원대가 가격표가 붙어있어도 개당 2500원에 얼마든지 팔수 있다.

앞으로 자유무역협정(FTA) 적용이 확대돼 관세율이 더 인하될수록 국내 맥주업계는 더 불리해진다. 현재 유럽산 맥주에는 15%, 미국산 맥주에는 17.1%의 관세가 붙는데 FTA에 따라 미국산의 경우 오는 2018년1월1일부터, 유럽산의 경우 오는 2018년 7월1일부터 수입관세가 0%로 된다.

윤호중 옛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해 국감에서 “수입맥주업계가 수입원가 자체를 낮게 신고하는 방식으로 저가 공세를 펼치는 데다 앞으로 FTA로 관세까지 철폐되면 국산 맥주는 산업 기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입맥주도 글로벌 호갱? 현 제도상 적정가격 검증 불가

수입맥주는 국내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 1+1 또는 4개묶음 1만원 등 거의 1년 내내 할인행사를 하고 있지만 결코 이 가격이 싸지 않다는 조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은 최근 해외 13개국의 수입 맥주 소비자가격을 조사한 결과 하이네켄 캔맥주 판매가는 2106원, 밀러는 2203원으로 13개국 가운데 두 번째로 비싸다고 밝혔다. 13개국 중 한국이 2위로 비싼 하이네켄은 브랜드 원산지인 네덜란드(729원)에 비해 2.9배 비싸다. 미국 맥주인 밀러 역시 미국(960원)에 비해 약 2.3배 비싸다. 일본 아사히, 중국 칭다오 맥주의 서울 가격도 조사대상 도시 중 세 번째로 높았다. 아사히맥주는 한국이 이탈리아, 스페인보다, 칭다오맥주는 한국이 스페인, 캐나다보다 비쌌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 지리적으로 가까워 운임비용 등이 높지 않은데 왜 다른 나라보다 비싼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왔다.

수입맥주는 할인행사 가격을 적용하더라도 외국에 비해 저렴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자시민모임 관계자는 “일부러 가격을 높게 책정해놓고 소비자들에 할인해주는 것처럼 인지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고 말했다.

수입맥주는 국산맥주와 달리 출고가격 신고제도가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유통가격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판매가격을 적정가격의 최고 10배 가까운 고가로 책정한 후 30~45%의 파격적인 할인이라며 소비자들을 현혹해도 검증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전문가들은 “수입맥주에 대해 국산맥주와 마찬가지로 출고가격 신고의무를 부여하고 할인판매 제한 규정을 둬야한다”며 “과도한 권장소비자가격 설정 및 과다할인 판매를 규제해야 부문별한 수입을 막고 거래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산맥주는 맛없다? 성분 기준 외국보다 낮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기자가 몇년전 ‘한국 맥주가 대동강맥주보다 맛없다’는 기사로 한국에 맥주 맛 논란을 촉발시킨 이래 국산맥주는 맛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소비자들은 한국 맥주보다 수입 맥주가 국가별로 맛이 다양하기 때문에 찾고 있다고 항변한다. 업계 전문가들도 ‘라거 맥주’ 위주인 국산맥주에 비해 수입맥주가 다양한 맛으로 소비자 취향을 충족시켜주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라거는 비교적 낮은 온도로 발효시킨 현대식 맥주로 맑은 황금빛이 나며 보관하기 좋다. 유럽 맥주에 많은 에일은 비교적 높은 온도로 발효시킨 전통식 맥주로 짙은 빛깔과 풍부한 맛과 향을 지녔다.

일각에서는 수입산보다 국산맥주가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맛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맥주를 제조하는데 필요한 맥아나 홉 등 성분에 대한 국내 기준은 외국보다 낮다. 독일의 경우 맥주의 맥아함량을 100%로 규정하고 있는데 반해 국내 주세법에는 10%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는 것.

지난해 하반기 국산맥주업계가 정부에 맥주 수입사들의 가격 할인 규제를 요청하자 정부가 수입맥주의 할인 제한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소비자들이 “이번엔 정부가 맥주가격까지 통제하느냐”며 이른바 ‘맥통법’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소비자단체인 컨슈머워치는 “수입맥주와 경쟁을 회피하고 가격통제를 건의한 국산맥주 업계에 분노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컨슈머워치는 “그동안 국내 맥주 시장이 2~3개 기업 과점체제로 유지되다 보니 국산 맥주업체들이 맥아, 홉 등 가격이 비싼 원재료를 외국경쟁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넣고 더 저렴한 공법으로 제조해 맛이 없었기 때문에 국내 소비자들이 수입 맥주를 선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비에 국경이 무너진지 오래인 만큼 국산맥주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수입맥주와 당당하게 경쟁하라고 촉구했다.

결국 소비자들은 더 맛있거나 혹은 더 싸거나 자신의 선택기준에 맞는 상품을 고르기 마련이다. 제조업체들은 더 맛있는 맥주 개발에 주력해 수입업체들에 대응하고 정부는 세금부과체계를 개선해 공정한 가격경쟁을 하게 해주면 판단은 소비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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