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1.25 10:52
합정동에서 바라본 한강과 건너편 여의도다. 노량진은 물 건너는 길목, 즉 나루에 관한 사유와 감정이 담겨 있는 지명이다.

마땅한 설명이 없다. 이 지명에 관해서도 말이다. 해오라기가 많아 그를 가리키는 한자 鷺(로, 노)를 사용했다는 설명이 있고, 강이나 바다를 사이에 둔 땅이라는 뜻에서 우리말 식으로 한자를 전용한 량(梁)을 붙였다는 얘기가 있다. 앞의 해오라기를 가리키는 鷺(로)라는 글자 대신에 ‘드러내다’ ‘이슬’의 새김이 있는 露(로)를 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어쨌든 지금은 해오라기의 鷺(로)를 쓴다.

노량진을 순우리말로 ‘노들강변’이라고도 부른다고 하지만 이 역시 뜻이 분명치 않다. ‘노들’의 앞 글자 ‘노’가 해오라기라는 의미의 한자 鷺(로)라는 설명도 있다. 그 해오라기가 거니는 ‘들판’이라는 점에서 ‘노들’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데, 확정적으로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순우리말 지명에서는 ‘돌’ ‘도’가 자주 보인다. 해안가 지명에서 특히 자주 눈에 띈다. 우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불세출의 명장 이순신 장군이 적을 맞아 싸웠던 명량(鳴梁)과 노량(露梁)이 있다. 아울러 통영의 사량(蛇梁)과 견내량(見乃梁) 등이 있다. 앞의 명량과 노량은 우리 식 지명으로 부를 때는 ‘울돌’과 ‘노돌’이다.

‘울돌’은 ‘울돌목’이라고도 적는데, 육지와 육지 사이를 빠져나가는 바다의 폭이 좁게는 294m까지 좁아져 물살이 매우 빠르고, 그 까닭에 해류의 소리도 높다. 그래서 ‘울다’라는 뜻의 한자어 ‘명(鳴)’을 붙였을 것으로 본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마지막으로 물리쳐 대승을 이루면서 장렬하게 전사한 露梁(노량)의 이름은 바다를 건너는 배들의 모습이 이슬과 같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 바다를 건넌 뒤 돌아보니 건네준 배들이 이슬처럼 사라졌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어쨌거나 우리 한자 지명에 梁(량)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으면 순우리말로 ‘돌’이나 ‘도’로 부르며, 바다나 강을 낀 지역으로 사람이 그곳을 건너는 ‘나루’의 뜻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들강변 봄버들~”로 시작하는 노래 속 서울의 노량진 또한 그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곳 역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이 건너는 나루의 하나였을 테다. ‘노량’의 뒤에 친절하게도 ‘나루’의 의미를 지닌 한자 진(津)이 붙었으니 말이다.

땅을 밟으며 길을 가도 사람은 언젠가 물의 가로놓임과 마주친다. 요즘에야 현대식 공법으로 철교와 콘크리트 다리를 척척 놓아 통행에 불편이 없지만, 사정이 이만 못했던 옛 시절에는 그 강과 하천이 늘 문제였다. 잔잔하고 얕은 물길이야 그저 걸어 넘어갈 수 있지만, 깊고 물길 센 강과 하천은 자칫 잘못하면 그곳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천연의 장애(障碍)다.

그래서 육로(陸路)를 가다가 큰 강이나 하천을 만나면 두려움에 떤다. 그 모습은 조선 후기에 명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도 잘 드러난다. 하룻밤에 하천 아홉을 건너면서 지은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라는 문장이 그렇고, 만주벌판과 베이징(北京)에서 열하(熱河)를 오가며 겪은 고생담도 생생하다.

그래서 육로를 오가는 고충보다는 물길을 건너는 고생이 심했다. 예전, 아주 예전에도 늘 그랬던 모양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루’를 찾는가 보다. 물길이 거세지 않고, 땅과 땅 사이를 흐르는 강이나 하천의 폭이 좁으며, 사람과 말 또는 재물 등을 안전하게 실을 수 있는 배가 있는 그런 나루 말이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問津(문진)’이라는 단어가 나왔던 모양이다. 그 유래는 공자(孔子)다. 그가 여러 나라를 떠돌던 시절 길을 가고 있었다. 정황으로 볼 때 길을 헤맸던 모양이다. 제자를 시켜 밭을 갈고 있던 두 늙은이에게 길을 물었다. 세속의 번잡함을 멀리 하고 자연에 묻혀 살던 은자(隱者)였다.

그러자 두 은자는 공자의 제자에게 거꾸로 묻는다. “네게 길을 묻게 한 사람이 누구냐?”는 식이었을 것이다. 그러자 공자의 제자는 스승의 이름을 댔다. 두 늙은이는 길을 물은 사람이 춘추시대의 혼잡함 속에서 그나마 좋은 ‘길’을 찾고자 했던 공자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딴청을 피운다. 그리고 끝내 길을 가리켜 주지 않는다. 공자는 그 얘기를 듣고 깊은 탄식을 한다.

이 問津(문진)이라는 단어는 결국 ‘길을 묻다’라는 뜻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왜 하필 ‘나루’를 뜻하는 ‘津(진)’이라는 글자가 붙었는지 주목할 일이다. 옛 시절의 불편하기 짝이 없었던, 그래서 심지어 사람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물길의 험악했음을 떠올리면 답이 나온다.

그렇게 길을 묻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인생의 성장기에, 때로는 인생의 숙성기에, 또는 인생의 말년에도, 나아가 사람이 생을 다하기 전까지도 그 길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겸허한 마음으로 길을 헤쳐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풍파가 많고 늘 위험이 도사린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안전한 환경 속에서도 사람은 길을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나는 제 길을 바르게 가고 있는가’ ‘누구에게 다음 길을 물어야 하나’ ‘내 앞에 선 사람이 가리키는 길은 옳은가’…. 이런 상념은 많을수록 좋다. 갈래가 많고 복잡해 제 길을 놓치기 쉬운 인생은 미로(迷路)와 다름이 없다. 올바른 길을 가도록 깨우칠 이 그 누군가. 노량진을 건너면서 떠올려보면 좋은 주제다.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저, 책밭, 2014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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