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0.25 17:44
여름 한 철을 아주 시끄러울 정도로 장식하는 매미의 모습이다. 차가워진 날씨에는 뚝~ 울음을 멈춰 사람들은 그 모습에서 제대로 할 말 하지 못하는 이의 이미지를 읽는다.

‘차가워진 날(寒)의 매미(蟬)’라는 뜻이다. 만물의 기운이 왕성하게 자라나는 여름을 역시 왕성한 울음소리로 채우는 녀석이 매미인데, 놈들은 공기가 차가워지는 가을 무렵이면 울음소리가 완연하게 줄어든다. 가을은 아마도, 이 매미들이 울려대는 소리와 함께 오는가보다.

요즘 가을이 길에 밟히기 시작한다. 처서가 지나면서 먼 하늘 자락을 떠돌기만 하던 가을의 기운이 엊그제 대지를 적신 비로 인해 길에 내려앉아 그 위를 부지런히 다니는 사람들의 발 아래 조용히 몸을 묻는다.

더위 지나면 차가움이 온다고 했다. 한자로 적으면 서왕한래(暑往寒來), 또는 한래서왕(寒來暑往)이다. 더위가 가서 추위가 오는 것인지, 아니면 추위가 다가와 더위가 몸을 비키는 것인지는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가는 것이 있으면 앞에서 다가오는 그 무엇이 있다. 세상은 오고 가는 것의 갈마듦이라는 현상의 연속이다.

매미라는 녀석은 추위에 닿아서야 그 왕성했던 여름날의 울음소리를 멈춘다. 더위에 잠 못 들었던 그 많은 여름날의 밤, 사람의 원성을 제법 받았을 매미는 가을에 들어서면서 울음소리를 줄이다가 마침내 쓸쓸함의 정조(情調)까지 읊조린다.

울음을 멈추면 ‘차가운 날의 매미가 입을 굳게 닫는다’는 뜻의 성어를 쓴다. 噤若寒蟬(금약한선)이다. 입 닫는(噤) 모습이 마치(若) 차가운 날의 매미(寒蟬) 같다는 뜻이다. 그 울음소리가 쓸쓸하게 들리는 것은 寒蟬凄切(한선처절)이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처량하고 슬프게(凄切) 귀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이런 매미에 사람들의 엉뚱한 오해가 닥친다. 차가워진 날 울음을 멈추는 매미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지도 못하고 비겁하게 입을 닫는 사람’을 풍자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차가운 계절이 품은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제 울음소리를 낮춘 매미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가을은 밖으로 번짐보다는 안으로 끌어들임의 계절이다. 곡식과 과일은 가을이 오면 성장의 기운을 멈추고 안으로 더 내밀하게 자신을 숙성시킨다. 그런 점에서 가을은 수렴(收斂)의 계절이다.

매미가 외려 현명할지 모른다. 안으로 착실하게 거두면서 다가올 추위에 대비하는 모습이 미물(微物)로 치부하기에는 어딘가 섭섭하다. 장외로까지 싸움의 마당을 뻗은 대한민국의 정치권은 이 가을의 문턱에서 매미 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볼 일이다.

 

<한자 풀이>

寒(찰, 추울 한): 보통은 날씨에 관한 형용이다. 차다, 춥다의 새김에서 추위로 몸을 떨다의 의미도 얻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관한 형용도 있다. ‘한미(寒微)한 집안 출신’이라는 표현이 그 예다.

蟬(매미 선): 매밋과의 곤충을 총칭한다. 동사로는 잇다, 연속하다라는 새김도 얻었다.

噤(입 다물 금): 입을 닫다. (문 등을) 닫다의 새김도 있다.

凄(쓸쓸할 처, 찰 처): 쓸쓸하다, 처량(凄凉)하다, 슬프다. 풀 등이 무성한 모습을 표현할 때도 쓰인다.

 

<중국어&성어>

知了 zhī liǎo: 매미의 별칭이다.

噤若寒蝉(蟬) jìn ruò hán chán 사실 매미는 가을이 깊어지면 죽는다. 매미 소리가 끊기는 이유다. 한여름에 소란스러웠던 매미 소리가 가을이 깊어질수록 숨을 죽이는 현상을 두고 사람들은 ‘할 말도 못하는 사람’에 비유하지만, 어디까지나 매미에 대한 오해다. 자주 쓰이는 성어다.

寒蝉凄切 hán chán qī qiè: 가을 깊어 소리가 작아지다가 없어지는 매미 소리에 관한 형용. 깊어지는 가을날의 쓸쓸한 분위기를 표현할 때 쓰인다.

寒来暑往 hán lái shǔ wǎng: 더운 여름 지나고 가을이 다가오는 때를 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더위와 추위의 갈마듦, 즉 세월의 흐름을 말할 때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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