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1.25 15:59
현대 해전에서 가장 공격적인 함정인 구축함의 모습이다. 파괴의 선봉에 나서는 이 함정에 왜 한자인 구축(驅逐)이라는 글자를 붙였던 것일까.

해군의 함정 중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게 구축함(驅逐艦)이다. 이 ‘구축(驅逐)’의 우선적인 의미는 몰아내다, 쫓아내다 등이다. 말을 몰고 다니는 일이 구(驅)요, 그렇게 해서 상대를 몰아가는 게 축(逐)이다. 물론 해군 함정의 구축함이 지니는 용도가 쫓고 몰아내는 행위에만 있지 않다. 적의 잠수함과 해상 함정을 공격해서 격파하는 게 주 임무다.

영어로 ‘Destroyer’라는 공격 및 파괴형의 함정을 ‘驅逐(구축)’이라는 말로 번역을 했으니, 이 한자 단어에는 아무래도 ‘쫓아내다’ ‘몰아가다’의 의미를 한 단계 넘어선 공격적 의미가 들어있다고 봐야 한다. 옛 전쟁의 전략적 무기인 말이 적을 향해 공격을 펼칠 때 효과적인 수단이었음은 더 부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구축은 원래 전쟁 용어다. 상대를 궁지로 몰아가서 종국에는 치명적인 방법으로 없앤다는 의미를 띤다. 그에 따라 파생한 단어들은 제법 많다. 백해무익의 해충을 잡아 없애는 일이 구충(驅蟲)이요, 그런 약품이 바로 구충제(驅蟲劑)다. 해충을 대대적으로 박멸하기 위해 벌이는 일을 우리가 ‘구제(驅除) 사업’이라고 적는 이유다.

말이나 가축 등을 이리저리 잘 몰아가는 일은 구사(驅使)라고 하는데, 문장 등에서 수식어 등을 잘 섞어 사용하는 일에도 이 단어를 붙인다. “단어를 잘 구사한다”고 할 때가 바로 그 예에 해당한다. 逐이라는 글자도 우리 생활에 바짝 붙어 있다. ‘몰아서 쫓아내다’라는 의미의 축출(逐出)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제법 익숙하다. ‘손님을 쫓아내라는 명령’이 축객령(逐客令)이다. 중국을 처음 통일한 진시황(秦始皇)과 관련이 있는, 족보가 뚜렷한 한자 단어다.

대한민국 국회가 그런 ‘구축’의 작업에 나섰다. 국정원이 내란의 혐의가 있는 통진당 소속의 국회의원과 그 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 대해 수사를 벌였고, 일부 그 내용이 밝혀지면서 정치권에 몸을 들인 혐의자에게 국회가 ‘축객령’을 발동했다.

나라 안보의 초석을 뒤흔드는 요소들을 구축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혐의 내용의 정확한 입증, 실정법의 엄밀하면서도 공정한 적용에는 깊은 주의가 필요하다. 유해한 대상을 제대로 쫓아내기 위해서는 말머리를 제대로 몰아가는 일이 필요하다. 법으로 정한 절차 등을 빈틈없이 훌륭하게 ‘구사’하는 능력이 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한자 풀이>

驅(몰 구): 우선은 말을 모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어 말을 몰고 달리다, 내쫓다, 몰아내다, 축출하다의 의미도 얻었다. 승세에 올라타 말을 몰고 적진 깊숙이 들어가는 게 승승장구(乘勝長驅)다.

逐(쫓을 축, 돼지 돈, 급급한 모양 적): 쫓다, 쫓아내다가 우선적인 새김. 이어 뒤를 쫓다, 달리다 등의 의미도 얻었다. ‘차례대로’라는 의미도 있다. 축차(逐次)라고 적으면 ‘순서에 따라’의 의미다.

蟲(벌레 충)

除(덜 제, 음력 사월 여): 더하지 않고 빼는 일, 즉 ‘덜다’의 새김이다. 없앤다는 뜻도 얻었고, 면제하다의 새김도 획득했다. 버리는 일도 이 글자를 쓴다. ‘제외하다’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좋다. 벼슬자리를 주거나 관리를 그런 자리에 임명하는 일도 가리킨다.

 

<중국어&성어>

驱(驅)逐 qū zhú: 위의 풀이와 같다. 중국에서는 법률용어로도 쓰인다. 계약에 따라 물건의 소유자가 세입자를 쫓아내는 일이다.

驱车 qū chē: 차에 올라타거나, 차를 모는 일을 가리킨다.

驱虫剂(驅蟲劑) qū chóng jì: 구충제.

驱除 qū chú: ‘~을(를) 없애다’.

长驱(長驅)直入 cháng qū zhí rù: 말을 거세게 몰아(長驅) 적진 깊숙이 곧장 쳐들어가는(直入) 행위를 일컫는다. 삼국시대의 영웅 조조가 사용한 성어라고 알려져 있다. 주저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곧장 진격하는 일이다. 자주 쓰는 성어다.

逐客令 zhú kè lìng: 진시황이 중국 전역을 통일하기 전 진나라 안에 들어와 있던 외국인들을 추방코자 내렸던 명령. 나중에 역시 외국 출신인 이사(李斯)가 나서 그런 조치를 다시 검토하라는 내용의 ‘간축객서(諫逐客書)’를 올려 그를 철회토록 한다. 현대 중국어에서도 자주 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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