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8.10.06 06:00

다양한 기능과 미, 브랜드 인지도 높여야 명품

레인 드 네이플 (사진=브레게 홈페이지)
레인 드 네이플 (사진=브레게 홈페이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종족 유지를 위한 유전자의 보전은 생명체의 본능이다.  피부와 피부를 맞대면서 이성에게 성물질을 방출하고자 하는 성욕 자체를 잃는다면 끔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만의 고유한 유전자를 보다 많은 암컷에서 퍼뜨려 후세에 전달하기위한 수컷 간 투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봄에 깃털을 활짝 편 공작이 우아하게 걷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관찰할 수 있는 곳이 경기도 용인 글렌로스 골프클럽이다. 다가서도 급히 피하지 않는다. 수컷은 번식기를 맞아 동그란 무늬가 점점이 박힌 윗꽁지덮깃을 부채 모양으로 벌리고 암컷에게 접근한다. 나를 배우자로 선택해달라는 몸짓이다.   

사람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아름다운 여성이나 멋진 남성을 보면 끌리게 된다. 용모와 몸매, 신장 등 신체 조건이 빼어난 남자나 여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도토리 키재기식 경쟁에서 몰고 온 승용차나 의복, 장신구 등으로 타인의 값어치를 판단하기 마련이다.  

장신구를 착용하는 동기는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고 싶다는 본능에 따른 것이다. 자신의 신분이나 지위를 표시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결혼반지를 통해 기혼자임을 알리고 뱃지를 통해 자신이 속한 집단을 보여준다. 남성은 예복에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자신의 권위를 자랑한다. 

이성 간에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연수입이나 주택 보유 여부 등을 물어보긴 쉽지 않다. 여성은 귀고리와  목걸이, 팔찌, 브로치 등을 이용하는데 익숙한 반면 남성의 장신구는 손목시계와 넥타이 핀, 구두 정도로 국한된다. 

시계 전문가인 김영보 YB인터내셔날 대표는 "한때 전 세계 럭셔리 소비재의 최고 시장이 중동 국가이었던 이유는 그들의 전통 복장에서 노출시킬 패션 아이템 중 시계와 팔찌가 자신의 몸값과 기호, 취향을 과시하기 편리했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신고 있는 고가 구두나 들고 다니는 명품 가방의 브랜드를 타인에게 자랑하기는 쉽지 않다. 상대방이 그런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다 관련 정보를 갖고 있어야만 전달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손목시계는 커피를 마시거나 화이트셔츠를 살짝 걷어올리면서 슬쩍 드러내기 용이하다. 특히 남성에게 장신구로서 손목시계의 효용성이 높은 이유다.  디자인이 단조롭고 고급 기능도 별로 없는데도 롤렉스(ROLEX)가 예물시계로 여전히 인기가 높은 것도 모든 사람에게 브랜드가 알려진데다 가성비도 좋다는 평가 때문으로 풀이된다.  

클래식 컴플리케이션즈(classique complications) 3795(사진=브레게 홈페이지)
클래식 컴플리케이션즈 3795(사진=브레게 홈페이지)

사실 누구나 갖고 다니는 휴대폰만 보면 가장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수백만 원에서 수억 원을 주고 중고가 시계를 사려고 할까. 시계의  디자인과 스타일을 통해 자신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남과는 뭔가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은 물론 스스로 즐기기 위해서다. 승용차가 대표적인 빅 럭셔리 (Big Luxury Item) 제품이라면  시계는 스몰 럭셔리 제품 (Small Luxury Item)의 전형이다.

대체로 승용차보다 값이 싸지만 예외도 적지않다.  중력으로 인해 시계가 늦어지거나 빨라지는 현상을 억제하는 뚜르비옹(Tourbillon)이 들어간 스위스 시계를 사려면 대략 1억원 이상을 지급해야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상위 1% 집단에 포함된  VIP라는 점이 부수적으로 알려지기를 기대한다.  깊은 바다에서 잠수할 수 있을 정도로 방수 기능이 뛰어난 시계를 찬 사람은 스쿠버 다이빙이나 요트 세일링 등  해양스포츠를 즐길 정도로 건강하면서도 경제력도 갖췄다는 점을 과시하고 싶다는 속내를 지녔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마리 앙투아네트 당델 워치 (사진= 브레게 홈페이지)
마리 앙투아네트 당델 워치 (사진= 브레게 홈페이지)

시계 제조 및 판매업자들은 인간이 태생적으로 남과 비교하기를 좋아하는 존재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뛰어난 기능과 아름다움을 갖춘 데다 사후관리도 매끄러운 시계를 개발하고 브랜드의 인지도까지 높인다면 한정판을 명분 삼아 원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매겨도 잘 팔린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 마케팅에서 활용하고 있다. 
 
반대로 낮은 가격을 책정하면 자칫 상품의 질과 브랜드의 품위, 이미지가 동반 추락할 위험에 처한다는 점도 모르지 않는다. 고가 시계 세상에선 높은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확보했다는 것이 매출 증대로 직결되지 않는다.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은 셈이다.  고급시계가 본연적으로 갖고 있는 허와 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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