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10.11 06:00

'시정명령' 개혁위 권고안 존중한다더니 "직접고용 명령한적 없다"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고용노동부가 현대‧기아차의 비정규직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팔을 걷어 붙였지만 허장성세(虛張聲勢)에 빠진 모양새다. 빈수레가 더 요란하다더니 오히려 논란만 키울 뿐 정작 실질적으로 해결된 것은 없다시피 하다. 급기야는 노사 간 중재안을 내놓고도 정작 “직접고용 지침을 내린 것은 아니다”라며 오락가락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쯤 되면 고용부가 정말 문제를 해결할 의지는 있는지 의심스러워진다.

최근 퇴임한 김영주 고용부 전 장관은 물러나기 전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문제를 퇴임 전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김 전 장관은 재임기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현대·기아차의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꼽았다. 하지만 정작 공은 후임자인 이재갑 장관에게 넘어간 상태다. 김 전 장관은 현대‧기아차의 케케묵은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임기 내내 호들갑을 떨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현대‧기아차의 불법파견 문제는 벌써 14년째 이어온 노동계의 최대 현안 중 하나다. 그간 고용부가 이 문제 해결에 소극적으로 대처해 온 덕분에 현대‧기아차의 노사관계는 곪을 대로 곪은 상황이지만 여전히 고용부는 뒷짐만 진 형국이다.

고용부는 지난 2004년 현대차 사내하청 9234개 공정을 불법파견으로 판정한 이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현대차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법원에 낸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은 2010년과 2015년 대법원, 그리고 2017년 2월 10일 서울고등법원까지 연달아 원고가 승소했다.

특히 고용노동 행정개혁위원회 역시 지난 7월 31일 '직접고용 시정명령 등 적극적인 조치를 고용부에 권고했다. 당시 개혁위는 법원이 2007년부터 자동차업종 사내하도급에 대해 불법파견이라 판단했는데도 고용부가 대법원 확정판결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방치하고 확정판결 이후에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못을 박았다. 권고안에는 고용부의 불법파견 사건처리 지연과 검찰의 부당한 수사지휘에 대한 내용도 담겼다.

이 같은 권고안을 의식했는지 고용부는 지난 7일 현대‧기아차 비정규직지회와 원청 노사 등 당사자들을 만나 중재한 뒤 최종 중재안을 내놓았다. 고용부의 중재안에 따라 사측과 정규직 노조, 비정규직지회는 대등한 지위에서 교섭하고 필요 시 사안에 따라 사측과 비정규직지회는 조만간 직접교섭을 실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고용부는 스스로 ‘노동적폐’를 청산하겠다며 1년 넘게 가동했던 개혁위의 권고안 이행에 대해서는 아리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중재안이 알려지자 주요 매체들은 잇따라 “고용부가 불법파견에 대해 직접고용을 명령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보도했지만 고용부는 곧장 “우리부가 비정규직지회와 다시 교섭하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자료를 냈다.

특히 중재안은 개혁위의 권고를 존중한다는 그간의 입장을 재확인한 결과라는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개혁위의 권고를 따른다면 현대‧기아차에 즉각 시정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이를 부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고용부가 시급히 해야할 것은 '중재안' 발표보다 '권고안' 이행이다. 

업계를 취재해보면 현대차그룹은 스스로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정규직이었다면 받았어야 할 임금을 소급해서 줘야하는 등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인건비 부담이 수천억원 규모에 이르기 때문이다. 최근 기아차는 남아있는 비정규직 인력을 정규직으로 돌리겠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그 속엔 ‘소송 취하 조건으로 신입채용’이 숨어있다. 그간 근무했던 근속년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당사자들이 반발하고 있어 오히려 노사갈등의 새로운 뇌관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고용부가 직접 나서서 대법원 판결과 개혁위 권고를 반영해 시정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행동’ 대신 ‘구호’만 난무하고 있는 형국이다.

자동차업계에 만연한 비정규직 불법파견은 우리 노동환경의 병폐 중 병폐다. 자동차 생산라인의 컨베이어벨트에 올라 정규직과 똑같은 조립공정을 수행하지만 현대차 소속이 아닌 탓에 쉽게 해고되기 일쑤고 임금과 복리후생 격차도 매우 크다. 지난 14년간 고용부가 이를 눈감아왔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재갑 신임 장관이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 등 차별없는 공정사회를 국정목표로 전면에 내건 만큼 고용부도 이젠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줄 때다. 이미 확실한 답이 나와 있는데도 우유부단하게 결단을 못 내린다면 그것만큼 무능력한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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