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10.12 05:50

무급휴직자 생계비 지원에 부담...특별교섭장에 사측 끌어내려는 의도
법인분리시 노조세력 줄고 조합비 지출규모는 커져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조합원들이 지난달 20일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주주총회개최금지 가처분인용 촉구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한국지엠지부)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조합원들이 지난달 20일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주주총회개최금지 가처분인용 촉구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한국지엠지부)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군산공장 폐쇄로 촉발한 한국지엠 사태가 법인분리 문제로 2라운드를 맞고 있다. 한국지엠이 연구개발 역량 강화를 이유로 법인을 쪼개려 하자 노조는 인력 구조조정을 위한 꼼수라며 강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노조가 법인분리에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시각도 내놓고 있다. 경영정상화를 위한 고통분담으로 늘어난 조합비 부담을 줄이고 노조 세력저하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는 11일 각 언론에 취재요청 공문을 발송하고 “노사 단체교섭 합의에도 없고 정부와의 경영정상화 합의에도 없는 법인분리 계획은 원천무효”라며 이 같이 밝혔다.

앞서 한국지엠은 최근 열린 이사회에서 법인분리 안건을 통과시킨 데 이어 오는 19일 주주총회를 열고 해당 안건을 최종 의결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한국지엠의 2대주주인 산업은행은 법인분리시 철수에 대한 잠재적 위험이 있다고 보고 인천지법에 주총 개최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다. 한국지엠 노조는 12일 오후 2시 인천지법 앞에서 법원의 가처분 인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특히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 신청을 내고 본격적인 파업수순에 들어갔다.

노조가 법인분리에 반대 근거로 내세운 논리는 ‘고용 불안’이다. 회사를 생산법인과 연구개발(R&D) 법인으로 분리하면 향후 철수나 구조조정, 매각, 공장폐쇄 등이 쉬워진다는 게 노조 측 입장이다. 

노조는 사측의 법인분리 계획에 대해 “경영정상화를 위해 시설투자에 사용하라고 정부가 지원한 8100억원을 삼키고 법인을 분리하겠다는 것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며 “산업은행이 반대하고 국민적 여론의 자탄을 받고 있는 법인분리는 반드시 국민적 심판으로 철퇴를 맞아 마땅하다”고 비판했다. 

반면 사측은 법인분리는 회사의 R&D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며 맞서고 있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법인분리에 대해 “현재 R&D 부문의 일감수요가 줄고 있어 한국에서 생산하지 않는 글로벌 차종까지 개발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GM본사와의 원활한 협업을 위해선 법인분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노조의 법인분리 반대에는 ‘고용불안’ 외에 또 다른 내막이 숨어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한국지엠 노사는 정부가 구조조정 대원칙으로 제시한 이해관계자들의 고통분담에 따라 양쪽 모두 반반씩 지출해 군산공장 무급휴직자 400명에게 30개월간 생계유지비를 주기로 했다. 이에 따라 노조는 매달 4억원 가량의 조합비가 추가로 소요되는데, 이를 조합원 1인당 환산하면 4만원 수준이다.   

노조는 가뜩이나 복리후생이 줄어든 상황에서 군산공장 무급휴가자를 위한 이 같은 지출이 부담스러워지자 사측과의 특별단체교섭을 통해 재협상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사측이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자 ‘법인분리에 따른 고용불안’ 논리를 앞세워 파업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중이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파업권을 얻으면 생산차질을 우려한 사측이 교섭에 응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조가 지난달 12일 사측에 발송한 ‘특별단체교섭 요구안’을 보면 ‘무급휴직자 대책마련’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요구안에는 “회사는 무급휴직자 전원에 대해 정부의 고용유지 지원금 수령이 종료되는 2018년 11월 30일 이후부터 배치전환이 완료되는 시점까지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 적정한 생계비가 지급될 수 있도록 한다”고 적혀있다. 다시 말해 무급휴직자들에 대한 사측의 생계비 지원을 늘리고 노조의 부담은 덜어달라는 요구다.   

그러나 정작 노조가 특별단체교섭 요구의 핵심 명분으로 내세운 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노사협약체결’ 특별요구다. 여기엔 각 공장별 신차투입시점부터 매 3년마다 1개 이상의 신차종 배치, 부평2공장의 중대형 SUV 신차투입 요구 등의 내용이 들어있다. 

하지만 한국지엠 노사는 올해 임단협과 정부와의 지원협상을 통해 향후 10년간의 투자계획에 대한 합의를 끝낸 상태다. 자동차업계에서 10년간의 투자계획은 상당히 장기적인 그림이라는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그럼에도 노조가 이 같은 ‘미래발전전망’을 요구하는 것은 무급휴직자 관련 요구안으로는 파업권을 얻어내기 힘들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웍스와의 통화에서 “노조가 파업하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사측은 이를 막기 위해 교섭장에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며 “노조가 중노위로부터 조정중지 명령을 받고 합법적인 파업권을 얻으려면 고용불안을 내세우는 것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무급휴직자에 대한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이 다음달 30일이면 끝나기 때문에 노조로선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중노위의 조정중지를 위한 명분으로 법인분리 반대를 삼고 이를 국정감사에서 공론화시켰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노조가 법인분리에 반대하는 이유는 또 있다. 3000여명이 근무하는 R&D 부문이 분리돼 신설법인으로 떨어져 나가면 지부를 탈퇴하고 단협을 승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이렇게 되면 조합의 규모가 크게 줄어드는 것은 물론 이합집산 등 내부적인 균열이 생길 우려도 있다. 특히 조합원 수가 줄어드는 만큼 조합비도 더 거둬 들여야하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조합원당 약 6만원 가량을 더 내야할 수도 있다. 

한국지엠 내부사정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 임단협 결과로 R&D 인력들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대부분 노조에 대한 마음이 떠난 것으로 안다”며 “법인분리 후 신설법인 인력들이 기존 단협을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한국지엠 노조 집행부는 지난 임단협 교섭 당시 자녀 학자금 지원 등 일부 조합원만 혜택을 받는 ‘선택적 복지’만 지켰다. 반면 월간 유류비 10만원 지원 등 모두에게 돌아가는 복리후생은 ‘고통분담’을 이유로 대부분 포기했다. 자녀 학자금 등은 대부분 50대 생산직 조합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상대적으로 젊은 R&D 인력과는 상관이 없는 내용이다, 

실제로 노조가 지난 6일 발행한 소식지에는 “법인분리 시 연구개발법인이 생산법인 보다 더 위험하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평소 GM이 “현재의 연구개발 인원이 너무 많다”고 밝혀왔던 것이 근거다. 하지만 여기에는 R&D 조합원들의 조합 탈퇴를 막는 것은 물론 법인분리가 되더라도 단체협약을 승계해주기 바라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지엠에는 이미 향후 10년간의 장기 운영 계획이 수립됐기 때문에 법인분리에 따른 철수는 지나친 우려”라며 “이미 신차 배정을 위한 설비투자까지 시작된 만큼 노사가 힘을 모아 경영정상화에 전력을 다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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