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8.10.13 06:00

'쿼츠위기'에 스와치로 대응···디자인과 기능 혁신 통해 경쟁력 제고

뚜르비옹 까루셀 (사진=블랑팡 홈페이지)
뚜르비옹 까루셀 (사진=블랑팡 홈페이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전세계 럭셔리 자동차 시장에서 독일 회사의 명성이 높은 것처럼 고급 손목시계(Fine Watch) 시장에서 스위스 업체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스위스 브랜드는 파텍필립을 비롯, 블랑팡,브레게,예거 르쿨트르,자케 드로,율리스 나르당,위블로,태그호이어,롤렉스 등 10여개가 넘는데 반해 독일 브랜드는 랑에 운트 죄네,글라슈테 오리지날(스위스 스와치 그룹 인수) 등 몇개 되지 않는다.

6시 시침 밑에 'SWISS MADE'라고 새겨져 있다면 정확성과 내구성, 고전미를 갖춘 것으로 알려진 스위스 시계산업의 전통을 담고 있다고 봐도 된다. 현재 저가 손목시계를 장악한 중국이 따라올려면 한참 멀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본조차 명품 시계 브랜드를 갖고 있지 못한 상태다.  
 
2017년 시계산업의 수출액은 200억 스위스 프랑으로 스위스산업통계상  3위를 기록했다. 제약 화학산업이 990억 스위스 프랑으로 부동의 1위를, 기계 전자 금속 산업은 320억 스위스 프랑으로 2위를 차지했다. 가장 큰 도시인 취리히나 제네바, 바젤, 로잔, 수도인 베른은 물론 관광명소인 루체른 등 어느 곳을 가더라도 중심 상가엔 시계판매점이 몰려 있다.  

통상 고급 시계는 태엽이 풀리는 힘으로 작동한다. 자동차의 핵심이 엔진이라면 손목시계는 무브먼트(Movement)이다. 시침과 분침 등을 움직이게 하는 무브먼트에서도 ETA, Ronda 등 스위스 전문제조업체 제품의 명성과 가격이 가장 높다.

무브먼트는 용두를 매일 손으로 감아줘야 하는 매뉴얼 와인딩(또는 핸드 와인딩) 방식과 시계를 차고 다니면서 흔들리는 힘으로 에너지를 얻는 셀프 와인딩 방식으로  구분된다. 셀프 와인딩 방식의 시계를 통상 오토매틱(Automatic) 시계라고 부른다.  기계식 시계는 이 같은  무브먼트를 장착한 제품이다.

전문 시계 제조회사가 아닌 유명 럭셔리 브랜드의 패션시계는 대부분 스위스 무브먼트를 사다가 쓴다. 일본 무브먼트도 우수하지만 대개 중저가 시계에 사용된다.       

1600년대 중반부터 기계식 시계의 종주국 행세를 해왔던 스위스는 1970년대부터 소위 '쿼츠(Quartz) 위기'에 처했다. 어지간한 기계식 시계보다 정확성이 높은 데다 가격도 저렴한 쿼츠 시계로  공략했던 일본 세이코와 시티즌, 홍콩 업체 등에 밀려 1980년대까지 근 20년간 숱한 업체들이 부도를 맞고 문을 닫거나 팔렸다. 

이런 상황에서 스와치(Swatch)의 창업자인 고 니콜라스 하이에크의 제안으로 스위스 시계 업계는 1983년 저렴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초박형 쿼츠시계 시리즈를 스와치(스위스워치의 준말)라는 독립 브랜드로 내놓으면서 상황을 역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패션 감각이 빼어난데다 가격도 싸고 30M 방수 기능까지 갖춘 스와치 제품은 불티나게 팔렸다. 스위스 업계는 다양한 라인의 쿼츠시계를 구축한뒤 기계식 손목시계의 경쟁력을 강화한데다 중국 등 신흥국에서의 수요 증가 덕분에 위기에서 탈출했다.

스위스가 독일과 일본 등의 추격을 따돌리고 명품시계에서 철옹성을 쌓고 있는 것은 다이얼에 남은 작동시간 (Power Reserve) 등 흥미로운 인디케이터(Indicator)를 장착하고 매우 수준 높은 마무리를 제공하는데다 인체공학적 디자인 도입, 다양한 기능 탑재, 혁신적인 소재 채택 등 각종 혁신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매력을 제공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세계 최대의 시계 제조 컨소시엄으로 전 세계 시계 산업을 쥐락펴락하는 스와치그룹 산하 20여 개  브랜드 중에서 브레게와  블랑팡은 초고가 시계다.  국내에서 주로 팔리는 가격대는 3000만원에서 5000만원 수준이다. 가장 싼 제품도 1000만원대 후반이다. 혼수용으로 국내에서 많이 팔리는 롤렉스보다 훨씬 비싸다. 다이아몬드가 박힌 남성용 롤렉스 콤비모델은 1800만원대, 다이아몬드가 없는 콤비모델이 1500만원 수준이다. 전 세계 부유층들이 가격 대비 성능에 못지않게 전통과 명성. 브랜드 파워를  중시하다보니 이같은 가격대가 형성된 셈이다. 

아스트론 GPS 솔라(사진=세이코 홈페이지)
아스트론 GPS 솔라(사진=세이코 홈페이지)

매년 3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시계박람회에 스위스 업체 다음으로  대형 부스를 꾸미는 국가가 일본이다. 세이코는 세계 최초로 저전력 GPS 수신기를 이용해 전 세계 어디에서나 GPS 위성으로부터 착용자가 위치한 타임존과 시각, 날짜, 요일 정보를 자동 수신하는 시계를 내놓았다. 시티즌은 정기적으로 전지를 교환해야한다는 쿼츠시계의 개념을 아예 바꾸었다.  태양은 물론 형광등이나 책상의 라이트 같은 작은 빛으로도 시계를 작동시키는 '에코 드라이브'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런데도 이들 업체 시계의 평균 단가는 스위스 일류 시계회사보다 훨씬 낮다. 

시티즌의 에코 드라이브 원은 세계에서 가장 앏은데다 광발전 기능까지 갖춘 무브먼트를 탑재했다. 불과 1.0mm 두께의 무브먼트에 85개의 부품을 집어넣고  여간해선 마모되지 않는 신소재를 채택하면서 아름다움을 뽐낸다. 시티즌은 홈페이지에서 세금을 제외하고 40만엔에 판다고 밝히고 있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국내에서 692만원 가량에 살 수 있다.

                                                    

에코 드라이브 원 (사진=시티즌 홈페이지)
에코 드라이브 원 (사진=시티즌 홈페이지)

세이코의  아스트로  GPS 솔라 SSE055J는 현재 착용자가 있는 곳의 시각과 원래 있었던 곳의 시각을 알려주고 2100년까지 날짜를 고칠 필요가 없는 퍼페추얼 달력(Perpetual Calender), 서머타임 기능까지 갖췄지만 국내에서 182만원 수준에서 팔린다.          

만약 스위스 기계식 시계가 퍼페추얼 달력 기능을 보유했다면 얼마나 부를까. 1년에 한번 날짜를 조정해야 하는 애뉴얼 달력(Annual Calender)를 갖춘 까르띠에 시계를 한국에서 사려면 최소 4830만원을 줘야 한다. 애뉴얼 달력은 퍼페추얼 달력보다 한수 아래 기능이다.                                                      

정기적으로 적잖은 돈을 들여 점검받고 수리받는다면 자식은 물론 손자와 손녀에게까지 물려줄 수 있다는 기계식 시계에 대한 믿음과 환상도 꾸준한 구매를 불러오는 핵심적인 매력이다. 후발 주자가 좀처럼 넘기 힘든 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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