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1.27 10:48
먼 바닷길을 가는 배가 남기는 거품이다. 부력을 바탕으로 동력을 곁들여야 배는 먼 물길을 무사히 건널 수 있는 법이다.

물에 뜨는 모습이나 행위, 그 반대로 물에 가라앉는 일을 함께 이를 때 부침(浮沈)이라는 말을 쓴다. 보통은 물에서 이뤄지는 모습이나 일이지만 그 환경은 그저 물에 그치지 않는다. 공기 중에서도 마찬가지고, 인생살이라는 개념적인 공간에서도 뜨고 가라앉음은 늘 있는 법이다.

그래서 이 말은 자주 사용한다. 앞 글자 浮(부)의 초기 형태는 물가에서 어린아이의 머리를 누군가 잡고 있는 모습이라고 푼다. 따라서 이 글자의 새김은 어른이 아이에게 헤엄치는 방법을 가르치는 뜻이었으리라고 추정한다. 그로부터 물에 뜨다, 떠오르다 등의 의미로 발전했을 것이다.

뒤의 글자 沈(침)은 ‘심’으로도 읽는다. 사람의 성(姓), 땅의 이름 등으로 읽을 때다. 중국에서는 ‘가라앉다’의 뜻일 경우 沉(침)으로 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글자를 잘 쓰지 않는다. 원래의 모습이 흥미를 끈다. 물에 소를 거꾸로 빠뜨리는 모습으로 푼다. 물에서 제사를 지내는 의례의 한 가닥이었다는 풀이다. 아울러 사람을 물에 빠뜨리는 모습으로도 등장한다. 형벌을 집행하는 장면이었으리라는 추정이다. 그로부터 이 글자는 빠지다, 가라앉다, 빠뜨리다 등의 새김을 얻었다고 본다.

물에서 뜨고, 공기 중에서 떠오른다고 반드시 좋지는 않다. 사람의 성격이 붕 떠있으면 어딘가 불안하다. 부박(浮薄)이라는 단어가 대표적이다. 늘 떠다니면서 경박하게 행동하는 사람의 성격을 표현하는 말이다. 부유(浮遊)하는 인생도 그렇다. 정처 없이, 하는 일 없이 이리저리 거닐기만 하는 삶이 뭐가 좋을까.

가라앉는 일은 우선 경계 대상이다. 그러나 때로는 바닥에 제대로 내려앉는 일도 중요하다. 사람의 성격에서도 침착(沈着)함이 부박함보다는 낫다. 내세울 게 별로 없으면 조용히 있는 게 낫다. 침잠(沈潛)이 그런 경우다. 그렇다고 우울함에 깊이 빠져드는 침울(沈鬱)은 따를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국가나 사회의 분위기는 가라앉음보다 떠오름이 낫다. 먼 바닷길을 가는 커다란 배는 물의 부력(浮力)을 바탕으로 동력을 곁들여 앞으로 나아간다. 부력과 동력이 충분하면 배는 먼 물길을 무사히 건넌다. 부력이 커도 배에 구멍이 생겨 물의 받치는 힘을 온전히 이용치 못할 경우에 배는 가라앉는다.

내려앉는 침하(沈下) 현상이 벌어져도 적절한 대응을 통해 배를 수리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조금 잠겨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인 침체(沈滯)도 마찬가지다. 내려앉다가 결국은 물에 꼴깍 잠겨버리는 침몰(沈沒)의 상황이 최악이다.

대한민국의 이름을 단 배는 지금 어떤 상황일까. 침하(沈下)의 조짐을 보인 지 제법 오래다. 물의 부력은 사용치 못하고 그에 감겨 나아감이 원활치 못했던 침체(沈滯)도 요즘 부쩍 눈에 띄는 현상이다. 이러다가 정말 침몰(沈沒)할 수도 있는 것일까.

형용사로 등장하는 침침(沈沈)이라는 말이 퍽 귀에 익다. 눈이 침침하고 귀가 침침하다. 그렇게 오감의 능력이 가라앉는 사람의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저녁 무렵 대지를 덮는 땅거미의 분위기를 이를 때도 등장한다. “모색(暮色)이 침침하다”고 할 때다.

경제는 가뜩이나 어려운데 정쟁은 가을걷이 논바닥의 허수아비처럼 늘 버티고 섰다. 이제 키를 쥐고 운행하는 조타(操舵)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느낌이다. 이곳저곳 벌어진 틈새로 물이 스며들어 엔진의 열기까지 식히는 정도라면 과연 과장일까.

 

<한자 풀이>

浮 (뜰 부): 물에 뜨다. 떠다니다. 떠서 움직이다. 가볍다. 근거가 없다. 진실성이 없다. 덧없다, 정함이 없다. 넘치다. 높다. 지나치다1. 은혜 갚음을 받다. 행하다.

沈 (잠길 침, 성씨 심): 잠기다. 가라앉다. 빠지다. 원기 등을 잃다. 오래다. 오래되다. 침울하다. 막히다. 무겁다. 숨다. 늪. 진흙. 호수.

薄 (엷을 박, 동자기둥 벽, 풀이름 보): 엷다, 얇다. 적다. 야박하다. 싱겁다. 맛없다. 깔보다, 업신여기다. 척박하다. 가까워지다. 숲. 대그릇. 동자기둥(벽).

 

<중국어&성어>

浮云(雲)蔽日 fú yún bì rì: 뜬구름이 해를 가리는 모습을 일컫는다. 황제와 임금 등 리더를 주변의 간신이 둘러싸서 의사의 정확한 결정, 아래위의 소통 등을 막는 경우를 가리킨다. 시문에 많이 등장한다.

随世沉浮 suí shì chén fú: 세속의 흐름을 따라 올랐다가 가라앉다. 자신의 주관 없이 세간의 의견이나 습속 등을 그대로 좇는 행위. 与(與)世沉浮도 같은 뜻의 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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