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10.18 06:00

현대차와 철저히 독립 적극적인 해외시장 출시 필요
고급브랜드 육성이 영업이익 악화의 해법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인 ‘제네시스’가 안방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해 출시한 G70도 매달 1000대 내외의 꾸준한 판매량을 보이고 주력차종인 G80은 올해에만 벌써 3만대 가까이 팔아치웠다. 하지만 제네시스 브랜드가 가야할 길은 아직 너무 멀다. 

현대차는 지난 2015년 11월 제네시스 브랜드를 출범시키고 럭셔리 브랜드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제네시스’는 제네시스 브랜드에 편입돼 ‘G80'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 직후 현대차의 기함이었던 에쿠스의 후속으로 ’EQ900(해외명 G90)'이 출시됐고 지난해 가을엔 중형세단인 ‘G70'까지 시장에 선보였다. 중형-준대형-대형으로 이어지는 세단 라인업을 구축하면서 ’브랜드‘로서의 구색을 갖춘 셈이다. 

안방인 한국에서의 성적은 나쁘지 않다. G80을 통해 ‘제네시스는 고급브랜드’라는 인식이 심어지면서 자연스럽게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 주요 수입차 브랜드와 고급차 시장에서 대등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제네시스 브랜드는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국내에서 총 4만4563대를 판매했다. 이 가운데 G80이 2만8314대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G70은 9870대, EQ900은 6379대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BMW 520d가 7533대 팔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무적인 성과다.

하지만 제네시스는 아직 출범 초기인 만큼 넘어야할 산이 한 두 개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고급브랜드로서의 이미지 구축이다. 기존 현대차와의 차별화가 미흡한 점이 고급화 전략에 마이너스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주요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은 제네시스와 같은 고급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폭스바겐은 아우디, 토요타는 렉서스, GM은 캐딜락, 포드는 링컨, 닛산은 인피니티 등이다. 

이들 브랜드들의 공통점은 기존 대중브랜드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능과 디자인은 물론 판매망까지 완전히 차별화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네시스의 롤모델로 꼽히는 렉서스의 경우 첫 출범 당시부터 토요타와 사업부가 분리돼 떨어져 나왔다. 이미 30여년 전인 1989년 출범한 렉서스는 기존 토요타 공장에서 차량이 생산됐지만 판매법인은 별도로 세웠다. 덕분에 렉서스는 ‘일본차는 싸구려 소형차’라는 해외시장의 인식을 바꾸는 공을 세우고 현재 프리미엄 브랜드로 안착했다.

하지만 제네시스는 출범 3년이 지난 현재도 현대차와의 결속고리를 끊어내지 못했고, 여전히 현대차의 판매망에서 팔리는 중이다. 그나마 올해 1월이 되어서야 제네시스 전용 전시장인 ‘제네시스 강남’이 서울에 들어섰다.

제네시스의 주력모델 G80 (사진제공=현대자동차)
제네시스의 주력모델 G80 (사진제공=현대자동차)

제네시스의 디자인 역시 현대차를 연상하게 한다는 평가도 지배적이다. 차량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좌우하는 그릴만 봐도 제네시스의 ‘크레스트 그릴’이 현대차의 ‘캐스캐이딩 그릴’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아직 해외시장 판매가 지지부진하다는 점이다. 현재 제네시스가 판매되고 있는 해외시장은 사실상 미국뿐이다. 고급차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중국이나 대표적인 고급차 시장인 유럽에는 출시조차 하지 않았다.

유일한 해외시장인 미국에서도 제네시스 판매량은 썩 좋지 못하다. 현대차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미국에서 판매된 제네시스는 총 8909대가 전부다. 특히 주력차종인 G80은 1월 1243대로 최고치를 찍은 이후 매달 판매량이 급감해 지난달엔 불과 303대 밖에 팔리지 못했다. 기함인 G90 판매량 역시 지난달 115대에 머물렀다. 특히 가장 최근에 출시한 G70은  미국 현지 딜러들과의 갈등으로 제대로 판매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제네시스를 시승해보면 주행성능과 편의사양, 디자인, 고급감 등 전체적인 상품성은 동급의 수입차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 제네시스는 평소 알던 한국차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아주 잘 빚어졌다. 고급 수입차 브랜드와 계급장을 떼고 붙어도 충분히 승산이 있을 만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뜻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제네시스의 상품성을 유럽, 중국 등 주요 시장 소비자들이 경험해볼 기회가 없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특히 제네시스가 지금처럼 ‘내수형’으로 남는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럭셔리카’로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판매되는 차량의 라인업이 극히 적은 것도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현재 세단 라인업 3종을 보유하고 있는 제네시스는 2020년까지 총 3종의 모델을 추가할 계획이다. 앞으로 소형SUV와 중형SUV, 그리고 스포츠쿠페까지 연달아 출시할 예정이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내놓을지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총 725만1013대를 판매해 완성차 시장 판매 5위를 기록했다. 폭스바겐과 르노닛산, 토요타, GM에 이은 상위권 성적이다. 하지만 현대차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4.7%에 불과해 고급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9.7%)와 BMW(9.1%) 대비 절반 수준이다. 현대차의 영업이익이 떨어지는 이유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소형차가 주력제품인 탓이 크다. 
  
따라서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 향상과 수익성 개선을 위해서라도 제네시스의 활약은 대단히 중요하다. 높은 상품성을 앞세워 해외시장에 적극 이름을 알렸던 렉서스의 사례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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