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8.10.19 11:45

 

서울교통공사 (사진=서울교통공사)
서울교통공사 (사진=서울교통공사)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무인화 바람으로 청년들이 취업하고 싶은 '괜찮은 일자리'는 줄어들다 못해 희귀해질 지경이다. 매출을 올려야할 이유가 아예 없는 공무원이나 영업 실적 부담이 민간 기업보다 작은 공기업이 '꿈의 직장'으로 등극한 것은 더이상 화제조차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러다보니 대기업이나 공기업 신규 채용과정에서 공정한 경쟁이 중시되지 않을 수 없다.

고위 임원의 자녀나 친인척을 신입행원으로 선발하면서 가산점을 주는 등 특혜채용했다고 은행장까지 수사를 받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당연한 조치다. 은행 특혜 채용 수사이후 서류심사와 필기시험,면접 등으로 진행되는 공개경쟁 채용은 공정성과 투명성, 객관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공채를 거치지 않고 직원을 뽑는 경우다.  특히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3D 직종은 선호도가 낮다보니 수시채용으로 진행하기 마련이다.  정규직보다 대우가 나쁜 비정규직이나 계약직 등으로 입사하는 과정에서 회사 임직원과 관련된 친인척이나 친지 등이 알음알음 입사할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예가 뒤늦게 알려진 서울교통공사 사례다. 서울교통공사는 노사합의를 통해 식당찬모나 이용사 등 일반업무직에서도 정규직으로 전환했던 것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더 큰 문제는 지난 3월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1285명 중 108명이 서울교통공사 직원의 친인척이었다는 점이다. 직원의 자녀를 비롯해 형제와 남매, 배우자, 부모는 물론 며느리와 형수·제수·매부도 있었다. 정년이 보장되는 공기업의 정규직이 된만큼 서울교통공사의 정규직 채용 여력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입사를 노리고 독서실이나 고시원에서 머리를 싸매고 공부해온 대다수 수험생들의 분노와 좌절, 실망이 얼마나 클까. 

자유한국당은 정규직 전환자 중 친인척 규모가 현재 드러난 108명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당은 서울교통공사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족 재직 현황' 조사에서 '응하지 말라'는 노조의 지침에 따라 직원 1만5000명 중 11.2%(1680명)만 참여했다고 밝혔다. 응답률이 100%일 경우 108명의 10배인 1080명이 친인척이라는 추산이 가능하다. 

서울시의 직무유기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서울시는 지난해 교통공사를 내부 점검했으나 관련 의혹을 전혀 밝혀내지 못했다. 오죽하면 민주당 김민기 의원이 "도대체 서울시 감사실에서 무얼 한 것이냐. 박원순 시장이 좀 물러진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비판까지 했을까. 이와 관련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문제가 있거나 특별히 비리가 있었다고 판단되지 않는다"면서도 "(서울교통공사) 사내 근무 가족의 비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더 큰 문제는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은 자리에 일단 비정규직으로 친인척을 입사시키는 비리가 공공부문  전반에 광범위하게 펴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안정적인 수입과 장기간 근무가 보장되는 일자리를 얻기위한 일종의 알박기와 다를바 없다.

자유한국당 박완수 의원은 인천국제공항공사 협력업체 직원 채용에서도 이런 일이 저질러졌다고 공개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작년 5월 협력업체 직원 등 비정규직 1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이후 채용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박 의원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공사 협력업체 6곳에서 총 14건의 친·인척 채용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인천공항공사 협력 보안업체 A사의 공항 업무 책임자 K씨는 작년 8월에만 조카 4명을 업체 비정규직으로 채용했다. 공사 측이 협력업체 비정규직 등 1만 명 정규직 전환 계획을 발표한 직후이자, 정부가 정규직전환 가이드를 제시한 시기다. 

박 의원은 "인천국제공항공사 감사관실에 접수된 90여 건의 제보만 확인했는데도 특수관계를 통한 비정규직 입사자가 14명으로 나타났다"며 "인천공항이 작년 5월 정규직 전환 계획을 발표한 이후 협력업체에 입사한 비정규직 인원은 1000여명에 육박하는만큼 이들을 대상으로 전수조사 할 경우, 이 같은 사례는 무수하게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될 것"이라고 말해 국민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노동자의 인권 보호 차원 등에서 원칙적으로 필요하고 대의명분도 있다. 실제 채용과정에서 공기업의 대표들이 노조의 압력에 밀린 나머지 원칙과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다보니 부작용이 쏟아지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배현진 대변인은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를 국정조사를 밝힐 것을 촉구하면서 이같이 논평했다.

"배낭에 넣은 컵라면 하나도 먹지 못하고 일하다가 처절하게 목숨 잃은 19세 청년의 비극을 감히 이렇게 악용할 수 있나. 민주노총과 특정 정당 세력이 공기업의 경영질서를 사실상 짓뭉개고 내 식구 정규직 만들기에 골몰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과연 서울교통공사만의 복마전인지 무서운 의심이 가시지 않는다. (중략) 문재인 정부와 감사원은 전체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채용비리에 대해 당장 전수조사와 감사를 실시하라. 그들만이 사는 세상이 아닌 진정한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스스로 증명하라."

서울교통공사나 인천국제공항공사 본사, 공항공사 협력업체는 앞으로 일감이 줄어들 걱정이 없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이런 곳에 내부 임직원의 친지나 친인척이 불공정하게 입사하는 것 자체가 특권이다. 대형 제조업체 노동조합 고위 간부의 자녀가 부친이 그만두기 앞서 특혜입사하는 '고용세습'이 사회문제화 되었지만 얼마나 시정되었는지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입사와 관련된 잘못을 철저히 파헤치고 제도적 방지책도 마련해야한다. 노력하지 않고 실력도 없으면서 누구 덕으로 좋은 일자리를 얻는 것도 문 정부가 혁파하려는 '적폐'다. 빚 내어가며 어렵게 학교를 졸업한뒤 취업고시 준비로 시달리는 이 땅의 청년들이 분노하지 않도록 혁파에 나서겠다면 제대로 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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