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10.20 05:30

국민 세금 8000억원이나 지원해 줬는데…왜 견제 못하나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드디어 터질 것이 터졌다. 지난 19일 오후 인천 부평공장에서 열린 한국지엠 임시주주총회에서 R&D 신설법인 '지엠코리아 테크니컬센터 주식회사(가칭)' 설립 안건이 통과됐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소속 조합원들이 이번 주총을 저지하기 위해 온몸으로 맞섰지만 한국지엠은 2대주주인 산업은행도 없이 안건을 기습 통과시켰다. 

한국지엠과 지엠코리아 테크니컬 주식회사의 분할비율은 1대 0.0001804이다. 한국지엠 자본금은 2167억7550만원,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 자본금은 3911만원이다. 인적븐할에 따라 생산직 1만여명은 한국지엠에, 연구직 3000여명은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에 소속된다. 

한국지엠이 법인분리를 추진하는 이유는 회사의 R&D 역량을 강화해 이쿼녹스 후속 등 한국에서 생산하지 않는 글로벌 차종까지 개발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GM본사와의 원활한 협업을 위해 R&D 부문을 독립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조는 법인분리가 향후 철수를 위한 꼼수라며 고용불안을 이유로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지난 8일 발행한 소식지에서 “법인이 분리되면 신설법인은 기본 자산규모가 작아지게 된다”며 “특히 전폭적인 신규투자와 연구개발 프로젝트가 확보되지 않으면 재무구조가 쉽게 악화돼 부실해질 수밖에 없고 이는 인력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제는 산업은행의 태도다. 한국지엠에 혈세를 8000억원이나 쏟아붓고도 2대주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채 뒷짐만 지고 있는 형국이다. GM이 한국지엠을 분할하고자 하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주주로서 주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한국지엠은 지난 4일 열린 이사회에서 생산법인과 R&D 법인을 떼어내는 법인분리 안건이 산업은행 추천 이사들의 반대에도 의결됐다. 한국지엠 이사회는 GM 이사 7명, 산업은행 측 이사 3명 등 10명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산업은행으로선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사회 의결 이후 산업은행은 법인분리시 철수와 주주권 훼손의 잠재적 위험이 있다며 인천지방법원에 한국지엠 주총 개최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어 열린 이사회에서도 한국지엠은 2대주주인 산업은행을 배제한 채 독단적으로 임시주총을 강행한 뒤 결국 법인분리 안건을 의결했다. 산업은행은 비토권을 행사해 주총 특별결의사항을 거부할 수 있지만 아예 주총에 참석조차 하지 못한 셈이다. 산업은행이 줄기차게 강조해왔던 ‘비토권’은 결정적인 순간에 써보지도 못하고 무용지물이 됐다. 

산업은행은 지난 5월 금융제공 협약 당시 한국지엠과 자산매각 등 특별결의사항에 대해 85% 이상 찬성해야 한다고 합의했다. 합의대로라면 산업은행이 전체 지분의 17%를 갖고 있는 만큼 산업은행의 동의가 없으면 특별결의를 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지엠은 이번 안건이 자산매각과 관련이 없는 만큼 ‘특별결의사항’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산업은행이 주총에 참석했더라도 비토권을 행사하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란 해석이다. 

이렇게 된 이상 산업은행은 한국지엠에 법인분리 관련 본안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켜졌다. 하지만 본안소송은 대법원 판단까지 받아야하기 때문에 사태는 장기화 국면을 맞게 됐다. 특히 한국지엠이 그 사이에 법인분리 작업을 끝낼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한국지엠이 멋대로 법인을 나누는 동안 2대주주인 산업은행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산업은행이 지원한 8000억원의 혈세는 어떻게 사용되는지, 분리된 R&D 법인에서도 똑같은 지분율을 갖게 되는지 등 알려진 것 없이 국민 불안만 키우는 모습이다. 임시주총에서 법인분리 안건이 통과된 것에 대해 “상황을 파악 중”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할 뿐이다.  

물론 한국지엠의 법인분리가 진짜 철수의 신호탄인지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국민혈세를 짊어진 국책은행으로서 단 1%의 의혹도 없도록 감시와 견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한국지엠이 거느린 수십만명의 자동차산업 종사자와 국민혈세를 보호하는 것이 정부와 국책은행의 당연한 책무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불가구약(不可救藥)의 우를 범한 뒤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