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지훈 기자
  • 입력 2018.10.20 07:00

[뉴스웍스=박지훈 기자] 신용등급이 BB이하로 자체 신용으로는 회사채를 발행하기 힘든 중소·중견기업이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금융위원회가 도입한 '신(新)유동화보증프로그램'의 지원실적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드러나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동화보증 프로그램은 여러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를 한 곳에 모은 뒤 신용보증기금의 신용보강을 통해 최상위 등급의 유동화증권을 만들어 시장에 매각, 조달한 자금을 중소기업에게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제도는 중소기업이 대출 위주의 자금조달 관행을 탈피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운용하고 있다.

일반 대출보증상품은 주로 1년 단위 단기자금을 변동금리로 지원하는 반면 유동화보증의 회사채는 3년 만기, 저리 고정금리로 자금을 공급하고 있어 최근과 같은 금리상승기에는 더욱 매력적인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은 매 3개월 단위로 사채이자를 납부하고, 만기가 되면 원금을 상환하면 된다. 만기 상환이 어려운 경우에는 최초 발행금액의 일정금액(통상 20∼30% 수준) 이상을 상환하고, 새로운 사채를 발행해 기존 사채를 상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여러모로 중소기업에게는 도움이 되는 제도다.

시계를 2016년 7월로 돌려보자. 당시 금융위는 신보가 중소·중견기업 BB이하 회사채의 45.5%를 보증해 시장에 매각하는 '신유동화보증프로그램'을 통해 2018년까지 최대 1조40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한 지원이 한 푼도 없었다는 게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의 주장이다.

당시 발표에서 금융위는 한술 더 떠 "신보가 전체 발행액의 97%를 보증하는 기존 유동화보증프로그램을 통한 회사채 지원발행 지원 물량까지 고려하면 2018년까지 최대 4조원의 발행이 가능하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신보가 기존 유동화보증프로그램을 통해 2016년이후 지난 9월까지 BB이하 중소·중견기업의 신규 회사채 발행을 지원한 규모는 530억원(16건)에 그쳤다. 상환기한이 도래한 회사채를 차환한 실적도 1140억원(45건)에 불과해 총 지원규모는 1670억원이었다. 최대 4조원이 될 것이라고 공언한 발행 지원 물량과 비교하면 4%밖에 안되는 것이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탁상공론에서 찾을 수 있다. 전해철 의원에 따르면 신보는 신유동화보증 프로그램이 논의만 되었고 실제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지원실적이 하나도 없을 수밖에 없다.

지원대상 업체를 모으기 어려웠던 것도 실적이 전무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신보 측은 “신유동화보증 프로그램은 지원 대상회사들을 50개 이상 확보한 뒤 대규모로 SPC(특수목적회사)에 넘겨 진행해야하는데 지원이 필요한 중소회사들은 산발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특정 시점에 50개 이상 회사를 한 번에 모으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신보의 해명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보면 이해할 만 하다. 하지만 이 제도를 이용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며 백방으로 노력한 중소기업들의 헛수고를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시장상황을 충분히 반영해 실현가능한 현실적인 정책을 발표하면 안될까. 설익은 대책으로 그 누군가가 피해를 봐서는 결코 안된다. 금융위는 물론 모든 정부 부처가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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