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8.10.20 07:00

중력으로 인한 회중시계 오차 줄이는 장치… 회오리바람처럼 회전해 미의 극치

뚜르비옹 메시도르 (사진=브레게 홈페이지)
6시 방향에 뚜르비옹이 설치된 뚜르비옹 메시도르 (사진=브레게 홈페이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영국의 영문학자이자 소설가인 J.R.R 톨킨이 1954년부터 1955년까지 발간한 '반지의 제왕' 3부작은 현대 판타지 소설의 고전으로 명성이 높다.

악의 세력을 대표하는 사우론은 모든 종족의 운명을 결정지을 정도로 강력할 힘을 지닌 '절대반지'(The One Ring)를 만들었지만 전투에서 손가락 끝이 잘리면서 잃어버린다.

주인공인 프로도의 삼촌은 골룸(스미골)으로부터 절대반지를 뺏는다.

이 반지는 돌고돌아 프로도에게 돌아간다. 우여곡절 끝에 프로도 일행은 절대반지를 파괴하면서 사우론은 몰락하고 평화를 되찾는다.

소설과 영화를 보면 프로도는 절대반지가 가진 마성(魔性)에 괴로워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골룸도 내 것이라며 절대반지를 되찾으려고 끊임없이 시도한다.

럭셔리 시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기능을 실현시키는 부품이 바로 뚜르비옹(tourbillon)이다. 뚜르비옹이란 지속적인 회전을 통해 시계에 가해지는 중력의 영향을 상쇄시키는 장치를 뜻한다. 정확성을 높이기위해 고안된 부품이지만 끊임없이 돌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고급 기계시계 애호가들에게 절대반지처럼 소유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마스터 그랑 트래디션 뚜르비옹 실린더릭 (사진=예거 르쿨트르 홈페이지)
마스터 르강 트래디션 뚜르비옹 실린더릭 (사진=예거 르쿨트르 홈페이지)

세계에서 손목시계가 처음 나온 시기는 1810년이지만 대중화된 것은 1900년대 초반이었다. 그 이전까지 상류층 인사들은 고가의 회중시계를 사용했다. 18세기만해도 회중시계를 작동시키는 무브먼트는 온도 변화,자력(磁力), 외부충격과 마찰 등으로 회전속도가 부정확했다. 시간이 빨리 가거나 늦게 가는 약점은 이후 소재와 생산방법의 혁신으로 상당부분 개선되었지만 조끼 호주머니에 세로로 장시간 보관하면서 발생하는 중력으로 인한 영향을 해결할 묘안은 없었다.
  
발군의 아이디어를 통해 뚜르비옹을 발명한 천재는 스위스 서부에 있는 뇌샤텔에서 태어난뒤 주로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했던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Abraham-Louis Breguet)였다. 그는 1810년 6월 8일 나폴리 여왕의 주문을 받아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인 브레게 2639 시계를 제작하는등 시계 역사에 길이 남아 있는 시계 기술자다. 

브레게는 회중시계의 위치가 바뀔 때마다 중력으로 인한 오차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중력이 시계 무브먼트의 규칙성을 저해한다고 판단, 연구에 들어갔다.

브레게 홈페이지는 "브레게는 중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당 1회전을 도는 모바일 캐리지 내부에 전체 이스케이프먼트(중력에 취약한 부품 밸런스와 스프링, 레버와 이스케이프-휠)를 설치했다. 결함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면서 상호 보완 작용을 하게 되며 또한 베어링의 밸런스 피벗에 의해 접촉 지점이 계속 바뀌면서 매끄러워진다"고 기술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시계의 작동방식을 모르는 필자도 잘 이해가지 않는 설명이다. 다른 문헌을 통해 쉽게 풀이하면 시간과 관련된 부품을 한꺼번에 일정한 속도로 돌려 중력의 영향을 상쇄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브레게는 1801년 새로운 시계 조절 장치 뚜르비옹에 대해 10년 간의 특허권을 취득했다. 시계의 정확도를 개선했을 뿐 아니라 시계 산업에 고급 먹거리를 제공한 브레게는 자신의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자신의 각종 발명품을 적용하여 최고급 시계를 생산한다.  

브레게가 도면으로 발명을 했지만 뚜르비옹을 실제 제작하는 것은 극도로 까다로웠다. 4년뒤인 1805년에야 비로소 상업화되었다. 다소 신비롭고도 낯선 느낌을 주는 뚜르비옹은 1823년 브레게가 작고할 때까지 단 35개의 제품이 팔렸다고 한다. 

뚜르비옹은 통상 1분에 한 번씩 360도 회전한다. 끊임없이 작동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고 그지없다. 마치 회오리바람처럼 돌아간다 해서 이 같은 프랑스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최경량화와 초소형화라는 상반된 임무를 해결해야 하는 제작 과정의 어려움으로 숙련된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  제작, 조립해야 한다. 대부분의 시계 제조업체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물론 현재 중국 시계회사에서는 모양만 본 뜬 뚜르비옹 시계를 팔고 있지만 고전적인 뚜르비옹과 도저히 비교할수 없다.

뚜르비옹은 특유의 복잡함이 갖는 아름다움과 성능 덕분에 현재에도 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손목시계를 가볍고 얇게 만들면서 어려 기능을 추가하는 요구가 커지면서 내부 공간에서 회전과 왕복 메카니즘으로 발생하는 힘과 관성의 균형을 유지하는 작업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캐리지를 제작하여 무브먼트 조정 장치를 일정한 속도로 회전시키는 것에 럭셔리 시계제조회사들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러 기능을 갖춘 첨단 무브먼트를 스스로 디자인하고 제작할수 있느냐가 일류 시계회사가 되기 위한 첫 걸음이라면 부품의 회전속도 오차를 줄여주는 뚜르비옹 제품을 개발, 지속적으로 팔아왔다는 것은 명품 시계 브랜드로 인정받기 위한 중요한 요건이다. 통상 뚜르비옹이  장착된 명품 시계를 한국에서 사려면 1억원 이상을 내야 한다. 까르띠에 플라잉 뚜르비옹 가격은 1억850만원이다. 부유층이 아니면 엄두를 못낼 가격대에서 거래된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말이 나올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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