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10.24 05:00

충전기 수 모자라 대기하기 일쑤…충전시간 놓고 운전자간 입씨름하기도
"고속도로 충전 인프라 확대는 물론 충전속도 향상 위한 노력도 필요"

서울양양고속도로 가평휴게소에서 니로EV의 충전을 기다리는 SM3 Z.E. (사진=박경보기자)
서울양양고속도로 가평휴게소에서 니로EV의 충전을 기다리는 SM3 Z.E. (사진=박경보기자)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여기 전기차 충전소인데요, 충전하신지 30분 넘었는데 제가 좀 쓰겠습니다” 서울양양고속도로 내린천휴게소에서 전기차를 충전하다가 걸려온 전화다. 

우리나라 1세대 전기차인 르노삼성차의 SM3 Z.E를 타고 1박 2일간 강원도를 여행하는 내내 차량을 ‘충전’하는 일은 그야말로 스트레스였다. 총 500여km를 주행하며 4번을 충전하는 동안 다른 전기차 운전자와 충돌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특히 장거리 주행으로 충전 수요가 많은 고속도로 충전소는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내린천 휴게소에서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충전소로 향하니 이미 BMW i3 운전자는 내 차의 충전을 중지하고 자신의 차량에 커넥터를 물렸다. SM3 Z.E는 AC3상 단자를 사용하고 BMW i3는 DC콤보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 대의 충전기가 여러 전기차를 한 번에 충전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앞 차량이 충전을 중단해야 새롭게 충전을 시도할 수 있다. 아직 80%도 충전되지 않았지만 뒷차가 기다리면 30분이 매너라는 말에 조용히 충전소를 떠났다. 

목적지인 속초에서는 다른 운전자와 제법 크게 언성을 높였다. 무려 11대의 충전기를 갖고 있는 속초 이마트를 여유로운 마음으로 찾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10대의 충전기가 있던 4층 주차장에는 SM3 Z.E 전용인 AC3상 단자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아있는 1대의 충전기를 찾아 헤매다 3층 주차장 구석에서 한국전력이 운영하는 충전기를 겨우 찾았다. 하지만 이미 충전기를 차지한 차량은 아이오닉 일렉트릭. 

충전 상태를 확인해보니 90% 이상 충전돼 있는 데다 윗층에는 충전기가 10대 모두 비어있어 운전자에게 정중하게 양보를 부탁했다. “충전 많이 하신 것 같은데 제차는 이 충전기만 사용가능한데요, 실례지만 윗층에서 이용해주시면 안될까요?”라고 부탁하자 “젊은 사람이 좀 기다려”라는 말만 돌아왔다. 내린천휴게소에서 충전을 얼마 하지도 못했는데 강제적으로 쫓겨났던 일이 억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결국 꼼짝없이 아이오닉이 완충될 때까지 15여분간을 기다려야 했다.  

충전를 시작하자마자 옆으로 다가온 아이오닉 일렉트릭. (사진=박경보기자)
충전를 시작하자마자 옆으로 다가온 아이오닉 일렉트릭. (사진=박경보기자)

전기차를 이용하며 겪었던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들어선 가평휴게소의 충전기는 이미 니로EV가 차지하고 있었다. 35분쯤 기다리자 운전자가 나타났고, 이어 충전기를 차에 물리는 순간 아이오닉 일렉트릭이 곧장 내 뒤에 줄을 섰다. 이후 15분쯤 지나자 그 뒤엔 볼트EV가 다가왔다. 내 차의 충전 수준은 아직 50%도 되지 않았는데 대기자들이 몰려오자 강한 압박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집에 복귀해 다시 차량을 반납하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그냥 떠날 수는 없는 일. SM3 Z.E의 완충시 최대주행거리가 213km인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충전을 시작한지 30분 가량이 흐르자 옆과 뒤에서 대기하던 아이오닉 일렉트릭과 볼트EV는 자취를 감췄다. 기다림에 지쳐 다른 충전기를 찾아 떠난 듯 했다. 니로EV의 충전시간과 내차의 충전시간을 합해 가평휴게소에서 소비한 시간은 총 1시간 20분이었다. 

이 밖에도 차량을 수령하자마자 장거리 주행을 위해 찾았던 동네 공영주차장 충전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이 충전하고 있어 충전기를 확인하자 운전자가 차량에서 급히 나와 충전기를 내게 양보했다. 의도치 않게 상대 운전자에게 압박을 준 셈이다. 이 일련의 상황들은 불과 1박 2일 동안 벌어진 일이다.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는 국내서 올해에만 2만대 판매를 돌파하는 등 매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14년부터 본격 보급되기 시작한 전기차는 올해까지 누적판매량 5만대를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충전 인프라와 충전방식이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전국의 전기차 충전기 수는 지난 9월 기준으로 7232곳에 불과하고 급속충전기는 절반 수준이다. 매년 늘고 있긴 하지만 일본,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주요국이 1만곳을 훌쩍 넘는 것과 비교하면 아직 턱없이 모자르다. 

급속충전 방식으로 완충까지 총 1시간 30분 가량이 소요됐다. (사진=박경보기자)
급속충전 방식으로 완충까지 총 1시간 30분 가량이 소요됐다. (사진=박경보기자)

게다가 급속충전을 하더라도 약 80%를 채울 때까지 1시간 가량의 시간이 소요된다. 특히 순서를 기다리기라도 한다면 충전에 소요되는 시간은 두 배로 늘어난다. 뿐만 아니라 차종마다 충전단자가 다른 탓에 내차에 맞는 충전기가 아니라면 충전은 그림의 떡이다.

특히 반드시 충전기가 필요한 고속도로 휴게소의 상황이 대단히 우려스럽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전국 고속도로휴게소 195곳 가운데 아직 21곳이 전기차 충전소가 없고 충전기를 1기만 운영하는 곳도 63곳에 이른다. 매번 충전할 때마다 전쟁을 치르는 전기차 운전자들을 위해서라도 충전 인프라 확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충전소 설치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사용편의를 위해 충전소 운영 및 제조사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충전기 제조사들이 충전방식을 표준화해 충전 커넥터를 통일하는 것은 물론 충전용량 확대와 급속충전기술의 고도화도 필수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충전하는 데 한두 시간씩 걸리는 일이 잦다면 활활 타오르던 전기차 시장은 한계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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