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태기 교수
  • 입력 2018.10.25 06:00
김태기 단국대 교수
김태기 단국대 교수

◆ 직장을 잃어도 좋다? 노동을 흔드는 세계화

세계화가 경제 전쟁이 되었다. 미국의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회사가 관세 때문에 공장을 유럽으로 옮긴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격노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무리하게 관세까지 부과한 트럼프 대통령이 실망할 만하다. 미국은 기업이 해외로 나가지 않고 외국 기업이 미국으로 오도록 법인세를 대폭 인하했고, 난폭할 정도로 이민 규제를 강화하고 무역전쟁도 불사하면서 다른 나라를 압박했다. 멕시코 및 캐나다는 물론 한국과 맺은 기존의 FTA(무역자유협정)을 수정하고 유럽과 중국 제품 수입에 대해 관세를 대거 부과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은 미국 근로자들의 태도다. 직장을 잃게 된 할리데이비슨 근로자들이 파업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고 공장 이전을 저지하기는 커녕 정반대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경제를 살리니까 다른 직장을 찾으면 된다면서 오히려 지지한다고 나섰다. 대통령이 국익을 내팽개치고 노조가 툭하면 파업을 벌이는 한국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세계화는 소련 붕괴 후 미국이 내세운 새로운 국제질서다. 덕분에 유럽은 독일, 아시아는 중국이 가장 큰 혜택을 보았다. 미국도 서비스 수출 급증으로 이익을 봤지만 일자리는 그렇지 못했다. 고임금 일자리는 늘었지만 중산층 일자리는 격감했다. 기업이 해외 아웃소싱을 늘리면서 미국 일자리의 1/4은 해외로 유출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트럼프 대통령을 당선시키고 세계화 정책을 수정하게 만들었다. 미국이 당초 세계화 정책을 추진할 때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따른 글로벌 아웃소싱의 확대였을지 모른다. 기업의 해외진출은 정보의 장벽 등으로 고정비용이 들고 위험도 수반하기 때문에 일자리 유출이 심각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세계화 초기 단계에는 주로 고생산성 대기업이 해외로 나갔고 저생산성 기업은 남아 일자리 유출이 심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디지털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달라졌다.

◆ 글로벌 아웃소싱, 글로벌 고용관계

글로벌 아웃소싱은 노동력이 나라를 떠나지 않아도 일자리를 이동시킨다. 디지털기술의 발전이 글로벌 아웃소싱 시대를 열면서 세계화의 중심을 재화의 교역에서 일감의 교역으로 이동하게 만든 것이다. 디지털기술 덕분에 국내 기업은 외국에 살고 있는 근로자와 고용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 고용관계도 글로벌화 된 것이다. 글로벌 고용관계는 사용자는 선진국, 근로자는 개발도상국가에 사는 특징을 보인다. 세계화로 생산물과 자본이동이 급증해도 노동력 이동은 훨씬 작고 세계 인구의 3%만이 태어난 나라의 밖에서 사는 이유다. 글로벌 아웃소싱 시대의 글로벌 고용관계는 인터넷 기반 구직·구인 플랫폼으로 더욱 확산되고 있다. 구인 기업과 구직 근로자의 중개기능이 글로벌 차원으로 발전해 중개회사는 임금총액의 10%를 받는 대신 외국에 있는 근로자에 대한 작업배정이나 업무지시는 물론 언어가 다른 사용자와 근로자가 소통하도록 지원한다.

◆ 기회를 차버린 한국의 노동, 세계화의 역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경제 전쟁을 선포했다. 미국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한미FTA 폐기를 주장했다. 재협상을 통해 한미FTA를 유지하게는 되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철강이나 자동차 등 특정 품목에 대해 관세 등으로 한국에게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주력 산업은 일거에 위기에 빠지고 대량실업도 불가피하다. 한국에게 좋았던 세계화는 끝났고 험난한 세계화가 온 것이다. 한국은 세계화 초기 단계에 수출확대로 이익을 보았다. 한미FTA 덕분에 자동차산업이 급성장해 현대기아차는 세계 3대 자동차메이커가 되었고 자동차부품산업의 경쟁력도 올라갔다. 뿐만 아니라 한국보다 인건비가 오히려 싼 미국에 공장을 만듦으로써 경쟁력을 상실한 울산 등의 공장을 유지하고 고용불안도 막을 수 있었다.

한미FTA, 한국에게 축복이지만 노동계는 기회를 차버리려고 했다. 노동계는 극렬하게 반대했다. 좌파 시민단체와 연대해 총파업으로 저항했고 현대기아차노조는 여기에 앞장섰다. 좌파 시민단체는 일반 사람들이 한미FTA를 반대하도록 미국 소를 광우병으로 프레이밍(framing)하는 등 선동하고 가짜 뉴스도 만들었다. 이러한 노동계가 돌변했다. 한국에게 불리한 한미FTA 재협상에 대해서 조용하다. 노동계와 가까운 정권이라서 그런지 태도가 바뀌어 파업은 물론 좌파 시민단체의 반대 성명도 찾기 어렵다. 노동계가 세계화를 이념과 정치적 잣대로 봤다는 의미다. 또한 세계화에 반대하는 좌파 민족주의의 허술한 논리가 바닥이 나버려 우파 국익우선주의 앞에 맥을 못 춘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 한국, 외화내빈의 세계화

세계화가 본격화되면서 한국은 부메랑을 맞고 있다. 외화내빈! 수출증가 때문에 외형상 승자로 보이지만 내용을 보면 그렇지 못하다. 수출의 고용유발 효과가 뚝 떨어지면서 성장률은 낮아지고 소득 양극화가 커졌다. 제조업 대기업부문은 이익을 봤지만 고용비중이 격감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화에 전면 나선 중국이 한국 자본의 진출에 힘입어 급성장하는 동안 한국의 제조업은 경쟁력을 키우지 못했다. 결국 중국의 추격을 받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서비스업 중소기업 부문은 세계화에서 고립되어 더 낙후되었다. 고용비중이 커졌지만 생산성증가는 제자리걸음 했고 저임금의 덫에 빠졌다. 정부는 서비스 중소기업의 세계화는 포기하고 내수산업 보호정책에 매달렸다. 세계화에 역주행하는 소극적인 서비스 중소기업 정책이 경쟁력과 일자리의 질을 떨어뜨린 것이다.

놀랍게도 1990년대 이전에는 중소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이 대기업보다 높았다. 1980년대 후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대기업이 연 평균 8.6%인데 20-99인 중소기업은 12.4%였다.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대기업의 1/2 이하로 벌어졌지만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격차는 2/3정도였다. 세계화가 시작된 1990년대 이후 경제의 서비스화와 함께 중소기업은 숫자와 고용이 증가했지만 혁신에 실패했다. 세계화에 대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대응이 달랐다. 1997년 외환위기로 대기업은 구조조정을 통해 생산성을 높였고 그 이후 해외로 본격 진출해 중소기업과의 격차를 벌렸다. 대기업이 외주와 하청을 정비하고 글로벌화 하면서 중소기업과의 직접적인 거래관계는 줄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기술이나 인력지원 등이 줄면서 고립화 되었다. 정부는 이에 따른 공백을 중소기업의 혁신이 아니라 지원과 보호 강화로 채웠지만 실효성이 없었다.

정부 지원과 보호의 이면에는 규제가 있다. 한국 정부는 세계화 정책=FTA 체결=수출 확대라는 단순 사고에 빠지고 세계화=탈규제는 망각했다. 규제가 강화되면서 자본은 한국을 대거 떠났다. KOTRA 조사(2018)를 보면 국내 소재 외국인 투자기업 4개 중 1개만이 한국의 경영환경에 만족하며 노무(1위)와 규제(2위)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규제는 특히 서비스업의 투자환경을 악화시켰다. 놀랍게도 자본의 해외유출은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의 유출이 훨씬 많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2018)에 의하면 2008년~17년 사이 한국에서 해외로 빠져나간 투자금액은 같은 기간 한국으로 들어온 외국인 투자보다 3배 많다. 80년대에는 외국인 직접투자금액 대비 해외직접투자 금액의 배율이 0.7배, 90년대에는 0.9배로 들어오는 금액이 많았지만 2000년대 이후 급격히 증가해 1.9배, 2011년~17년에는 2.9배가 되었다. 2017년 경우 자본 유출은 서비스업이 제조업보다 4배 가까이 많다. 세계화에 역행하는 규제가 자본과 일자리를 해외로 떠나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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