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10.26 05:50

지난 5년간 매년 1조원씩 영업익 급감…한발 늦는 경영전략이 '발목'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국내 자동차업계를 대표하는 현대자동차가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한 지난 2010년 이후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현대차가 올해 3분기 기록한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나 떨어진 2889억원에 불과하다. 시장 기대치를 훨씬 밑도는 ‘어닝쇼크’다. 

반면 같은 날 실적을 발표한 SK하이닉스는 분기 영업이익 6조원 시대를 열어젖히며 모든 부문에서 사상 최대치를 달성했다. 이날 LG전자 역시 2009년 이후 최고 성적인 영업이익 7488억원을 발표하며 샴페인을 터뜨렸다. 현대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112만1228대나 판매하고도 2000억원대의 영업이익에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현대차는 이 같은 충격적인 실적을 담은 보도자료에 ‘일시적’이란 표현을 무려 6번이나 반복했다. 월드컵 마케팅과 각종 리콜, 신기술 적용 등으로 일시적 비용이 반영됐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이 같은 급격한 영업이익 감소는 정말 일시적인 현상인걸까?  

최근 NH투자증권이 발표한 글로벌 주요 자동차업체의 지난 2분기 영업이익률을 보면 폭스바겐과 토요타는 9.41%였지만 같은 기간 현대차는 3.84%에 머물렀다. 급기야 이번 3분기에는 1% 초반대인 1.2%로 더 고꾸라졌다. 2000만원짜리 아반떼 한 대 팔아서 불과 26만원 정도 남겼다는 이야기다. 특히 국내 제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6~7%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현대차가 얼마나 장사를 못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판매량 확대에만 골몰하다보니 내실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대차는 이번 실적을 발표하면서 중국시장을 제외하면 오히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판매량이 0.3% 늘었다고 설명했다. ‘중국’만 아니었다면 더 좋은 실적을 낼 수 있을 것이란 뉘앙스다. 하지만 중국시장은 모든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장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표현은 ‘자기위안’에 가깝다. 가장 큰 시장만 뺀다면 낙제를 면할 수 있었다는 건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현대차는 지난 1976년 우리나라 최초의 독자모델인 ‘포니’를 내놓은 이후 지난 40여년간 혁신을 거듭하며 유례없는 ‘폭풍성장’을 이어왔다. 지난 2011년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높은 판매 신장률을 기록하자 현대차의 혁신을 두고 ‘현다이즘(Hyundaism)’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채 안 된 현재는 그야말로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현대차의 영업이익을 보면 지난 2013년 8조3155억원을 찍더니 매년 약 1조원씩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기록한 4조5747억원의 영업이익은 5년전보다 약 4조원이나 줄어든 수치다. 특히 올해 1분기부터 3분기까지 기록한 영업이익은 2조4170억원에 불과해 올해도 지난해보다 1조원 이상 줄어들 것이 확실시 된다.

현대차의 부진은 ‘예견된 일’이었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지금까지 ‘패스트팔로어’ 전략으로 선행주자들을 무섭게 추격해왔지만, ‘퍼스트무버’로서의 존재감은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현대차의 전략이 한 발 늦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대차는 황무지나 다름없던 국내 소형SUV시장에서 쌍용차 티볼리가 돌풍을 일으키자 2년이 지난 뒤에야 경쟁모델인 코나를 출시했다. 또 글로벌 경기 침체로 대형차급의 수요가 줄고 있는 현 시점에 대형SUV인 ‘펠리세이드’ 출시를 앞두고 있다. 적어도 3~4년 전에 출시했어야 할 차를 뒤늦게 내놓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가장 큰 자동차 시장인 중국과 미국은 SUV 차종이 강세지만 여전히 현대차는 아반떼와 쏘나타 등 세단차종을 주력으로 판매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줄기차게 강조하던 ‘품질경영’이 구호로 전락한 것도 문제다. 현대‧기아차는 미국시장에서 에어백 결함 등으로 올해에만 약 110만여대를 리콜했고, 현지언론들은 현대‧기아차의 잇따른 화재사고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안방에서는 상황이 더 좋지 않은 편이다. 차체부식과 급발진, 에어백 결함, GDI엔진 오일감소 등으로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현기차가 아닌 ‘흉기차’로 불리고 있는 중이다. 고객 신뢰가 땅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판매량이 오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지금처럼 수익성이 계속 떨어진다면 미래를 위한 투자를 기대하는 것도 어렵다는 점이다. 3분기 잠정 영업이익 17조5000억원을 기록하는 등 실적 신기록 행진 중인 삼성전자는 향후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지만, 실적이 뒷걸음질 하는 현대차의 향후 투자계획은 어둡기만 하다. 

국내 자동차 산업은 전체 제조업 고용의 12%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특히 약 7만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현대차가 나락으로 떨어진다면 우리 경제는 회복하지 못할 치명타를 입을 것이 분명하다. 현대차가 짊어진 수십만명의 생계를 위해서라도 다시 절치부심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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