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8.10.28 06:40

"前 대표 스탠 게일, 자기 돈 9억원 넣고 1300억원 배당받아"
개인세금 대납 요구 등 생떼…잇단 약속 위반으로 결국 쫓겨나

송도 전경 사진 (사진제공=포스코건설)
2017년 8월 하늘에서 찍은 송도 모습 (사진=포스코건설)

고(故) 노무현 대통령 시절 우리나라를 전 세계 일류 기업의 동북아 거점으로 키우기위해 도입한 제도가 경제자유구역이다. 2003년 8월 국내 최초로 인천국제공항과 항만을 포함하여 송도, 영종, 청라국제도시에 걸쳐 총 123.65 ㎢ 일대가 인천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개발된 곳이 송도국제도시였다. 면적은 53.36㎢으로 개펄을 메워 조성했다. 이 곳에 첫 삽을 뜬 곳은 여의도 면적의 2배에 달하는 송도 국제업무단지(574만㎡)이었다. 

그렇지만 외국인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투자환경을 제대로 개선하지 못한 가운데 개발을 주도했던 한미 합작법인 대주주의 전횡이 계속된데다가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국내 부동산 규제 등으로 국내외 투자가 장기간 위축되면서 2014년말까지 국제비즈니스 허브도시로 개발한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송도의 핵심으로 약 24조40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하기로 했던 송도 국제업무단지(International Business District)는 미국인 대주주가 생떼를 부리면서 최근 3년여간 멈췄다. 다행히 지난 9월 새로운 글로벌 투자자가 영입되면서 가까스로 정상화의 기반을 마련했다. 지난 3년여간 송도IBD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헤쳐본다. <편집자 주>

2004년 송도 개발 초기 모습 (사진제공=포스코건설)
2004년 송도 개발 초기 모습 (사진=포스코건설)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송도IBD는 2001년 인천시와 미국의 부동산 시행회사인 게일인터내셔널(이하 게일), 포스코건설이 국제업무단지(IBD)개발 양해각서를 맺은데 이어 2002년 게일과 포스코건설이 합작계약서를 체결하면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됐다. 당시 국내 건설시장은 침체기에서 겨우 벗어난 상황이어서 포스코건설보다 시공능력이 상위에 있던 주요 건설사들은 위험성을 이유로 참여를 꺼렸다. 건전한 재무구조와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던 포스코건설은 인천시의 끈질긴 러브콜 끝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외국인 투자자를 우대하는 경제자유구역 특성상 합작기업의 경영권은 게일로 이미 결정돼 있었다. 게일의 최고경영자이자 오너인 스탠 게일은 자기 돈 9억원과 모건스탠리로부터 빌린 147억원 등 총 156억원을 출자, 합작법인인 송도국제도시개발유한회사(NSIC) 지분의 70.1%를 확보했다. 포스코건설의 지분은 29.9%에 그쳤다. 물론 스탠 게일이 NSIC 대표이사 겸 회장으로 경영권을 행사했다. NSIC 5명의 이사 중 3명을 게일 회장이 임명했다. NSIC는 사업을 위해 별도로 세운 개발대행사인 GIK(게일인터내셔널코리아)를 운영했다.

NSIC와 우리은행과의 파이낸싱 계약식 모습 (사진제공=포스코건설)
2003년 파이낸싱 계약식에서 연설 중인 스탠 게일 회장 (사진=포스코건설)

송도IBD는 컨벤션센터와 동북아무역타워, 국제학교, 국제병원, 센트럴공원, 주거및 상업업무시설, 쇼핑몰, 문화센터및 기반시설 등을 조성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이다.  게일은 당초 외국에서 자금을 끌어오겠다고 밝혔지만 외자 유치는 무위로 끝났다. 송도 사업의 진행을 위해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NSIC는 개발할 땅을 담보로 은행권에서 약 2조4300억원을 대출받았고 이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은 지급보증을 섰다. NSIC가 채무를 갚지 못할 경우 포스코건설이 모든 금액을 대위변제해야했다. 대신 포스코건설은 빚 보증을 선 규모에 해당되는 만큼 시공권을 확보했다. 6개 패키지로 구분,금융회사에서 대출받아 2015년 상반기까지 사업목표의 70% 가량을 완공했다.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됐던 12년동안 게일은 송도에 글로벌 회사를 유치하는데에도 실패했다.  

순항하는듯 했던 송도IBD사업은 뜻밖의 암초를 만난다. 게일 회장이 향후 미국에 내야할 세금으로 알려진 팬텀택스(phantom tax)이었다. 그는 NSIC를 비롯해 미국에 여러개 만들어놓은 부동산 개발회사를 개인유한회사로 미국 정부에 등록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여기에는 그럴법한 사정이 있다. 원래 부동산 개발사업이란 시행 초기에 부지 매입과 기초 공사 등으로 손해를 보다가 성공적인 분양이 이뤄지고 시공이 본격화되는 후반기에 접어들면 수익이 발생한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게일 회장이 법인유한회사가 아닌 개인유한회사로 운영한 것은 한 회사의 적자를 이유로 다른 흑자 회사에서 내야할 세금을 줄일 수 있는 '마이너스 크레딧'(Minus Credit) 제도를 활용하려고 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 제도를 통해 성공적인 절세를 해온 것으로 여겨지는 게일 회장은 2015년 8월경 미국 국세청으로부터 수천억 원대의 개인 세금이 부과될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NSIC 대주주로서 2003년이후 1300억원 가량의 배당금을 받고도 엉뚱하게도 포스코건설에게 자신의 세금을 내줄 것을 요구했다. 포스코건설은 배임 등의 법률적 문제를 감안, 거부했다.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게일 회장은 2015년 7월 이미 NSIC 이사회 승인을 거쳐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인· 허가를 획득한 E5블록 주상복합과 F20/25블록 공동주택사업 등 신규 사업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송도IBD사업을 볼모로 삼고 벼랑 끝 협상에 나선 것이다.

파이낸싱 계약식에 참석한 스탠 게일 회장 (사진제공=포스코건설)
2005년 파이낸싱 계약식에 참석한 스탠 게일 회장 (사진=포스코건설)

이 뿐만 아니었다. 게일은 같은 해 9월 포스코건설과 GIK 임직원들을 업무상 배임 등으로 고소,고발을 했다. 당시 GIK는 퍼스트파크 아파트 분양수입금 중 남은 700억원을 3%대의 선이자를 떼고 포스코건설에 시공비로 지급했다. 예금금리보다 수익성이 높았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포스코건설은 사업중단으로 인한 손해가 엄청난데다 개발사업을 마무리짓기위해 1여년간의 줄다리기 끝에 게일 회장과 2016년 12월 15일 송도사업정상화를 위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여기에는 포스코건설이 게일 회장의 세금문제 해소에 최대한 협조하고, 사업 중단 등 게일 회장의 독단적 행태 재발을 방지하며, 게일 회장에게 미지급된 GIK 배당금 34억원을 지급하고, 2016년 12월 16일에 만기가 돌아오는 1조 원가량의 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인 패키지 5, 6의 리파이낸싱, 1000억 원 규모의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 PF대출 리파이낸싱에 대해 포스코건설이 지급보증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포스코건설이 이 합의를 믿고 1조원이 넘는 보증에 나서면서 NSIC PF대출의 리파이낸싱이 이뤄졌다. 그런데 게일 회장은 정작 리파이낸싱이 이뤄진 바로 다음날, 'GIK가 미지급 배당금 34억원을 즉시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송도사업정상화 합의서의 무효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법인 인감을 갖고 돌연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리파이낸싱이 안되면 NSIC가 부도날 위험에 처하자 이를 막기위해 합의서를 쓴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게일 회장은 2017년 3월 포스코건설에 추가협상을 요구했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홍콩에서 게일 회장을 만났지만 그는 2016년 12월에 맺은 합의서보다 더 무리한 조건을 요구했다. 포스코건설은 수용할 수 없었다. 이로인해 송도IBD개발은 더 깊은 늪에 빠졌다.

언제 사업을 재개할지 알수 없는 상황에서 2017년 6월 NSIC의 PF 대출금중 일부인 패키지 4(3546억원)의 만기가 닥쳤다. 계획된 사업들이 제때 진행되지 않은만큼 NISC는 대출금을 갚을 여력이 없었다. 결국 PF대출에 지급보증을 섰던 포스코건설이 3546억원을 대신 상환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게일 회장은 사업 정상화에 나서지 않고 오히려 포스코건설과 체결한 'NSIC 합작계약’과 NSIC와 GIK간에 체결한 '사업관리용역 계약’의 해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한술더떠 게일 회장은 2017년 9월 별도의 NSIC 사무실을 열고 E5블록 주상복합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렇지만 E5블록을 게일이 독자적으로 개발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송도IBD의 주거블록은 2010년 12월에 NSIC와 포스코건설이 체결한 포괄공사도급계약서에 따라 포스코건설이 시공과 설계를 맡도록 합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NSIC의 모든 사업은 5명의 이사가 참석하는 이사회에서 4명 이상이 승인해야하는데 이런 절차도 밟지 않았다.

송도IBD사업 중단이 장기화되자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본격적인 중재 노력을 벌였다. 2017년 10월 포스코건설과 게일은 인천경제청 중재로 포스코건설이 송도IBD 사업에서 짊어지고 있는 약 2조 6000억원 규모의 재무적 부담(PF 대출금 보증 약 1조4000억원, 공사비 미수금 약 7200억원, 대위변제금 약 4200억원)을 게일이 2017년 12월 11일까지 해소하는 대신, 포스코건설은 송도IBD 사업의 시공권을 반환하기로 합의했다. 이번에도 게일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포스코건설은 게일의 간청에 따라 재무적 부담 해소 이행기간을 2018년 1월과 2월 두차례에 걸쳐 연장해 줬다. 그런데도 게일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오히려 게일은 2016년 7월 공사를 완료하고 2017년 말 사용승인을 받은 '아트센터 인천'을 인천시에 기부채납하는 결정까지 미루며 인천시를 압박했다.

아트센터 인천 전경 (사진제공=-포스코건설)
아트센터 인천 전경 (사진=포스코건설)

게다가 게일은 2018년 8월에는 3년전 사업승인을 받은 F20, F25블록에 대한 주택건설사업계획마저 취하 신청을 냈다. 더이상 게일 회장을 파트너로 끌어안고 갈 수 없다고 판단한 포스코건설은 사업정상화를 위해 지난 9월 홍콩에서 새로운 글로벌투자자를 구하는데 성공했다. 2017년 패키지 1, 4의 PF 대출금 대위변제를 통해 합법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NSIC의 게일 지분(70.1%)에 대한 처분권(질권)을 실행했고 ACPG사와 TA사는 각각 45.6%, 24.5%로 나눠 인수했다. 

게일 회장의 개인 세금 문제로 시작된 송도IBD의 잔혹사는 3년여만인 최근에야 끝났다. 새로운 외국 투자자와 포스코건설은 허송세월로 상처가 커진 송도IBD를 정상궤도에 올려 놓아야 하는 힘든 임무를 수행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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