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양민후 기자
  • 입력 2018.10.28 09:52
(그래픽=뉴스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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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웍스=양민후 기자] 우리가 고대하는 치매치료제는 언제 나올까.

현재 개발 단계에 있는 알츠하이머(치매) 치료제 가운데 가장 유망한 물질은 ‘BAN2401’이다. 이 약물은 일본 제약사 에자이와 미국의 바이오젠에 의해 개발되고 있으며, 치매 환자의 뇌에서 발견되는 ‘아밀로이드 베타(amyloid-β)’를 표적으로 한다. 2상 임상에서는 치매의 진행을 30% 가량 늦추는 효과를 보였고, 현재는 또 다른 임상을 예고하면서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하지만 아쉽다는 평가도 있다. 치매를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약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리셉트(Aricept, 에자이·화이자)와 같은 치매 증상 완화제가 오래 전부터 쓰이고 있는 상황에서 크게 새로울 것이 없다는 의견이다. ‘Study 201’로 명명된 2상 임상의 결과도 실망스럽다. BAN2401은 2상 임상에서 1차 유효성평가변수(시험 최우선 목표)를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최근에는 임상설계에 허점이 드러나며 약효에 대한 의문마저 커지고 있다. 

◆제약사측 “BAN2401 효과 있다···단 목표로 했던 기간에는 효능 없었다”

에자이·바이오젠은 지난 7월 25일 시카고에서 열린 국제알츠하이머협회 컨퍼런스(Alzheimer’s Association International Conference)에서 2상 임상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상 임상(이중맹검·위약대조·평행군·무작위배정)에서는 초기 치매로 진단 받은 환자 856명이 참여했다. 연구진은 참여자를 다양한 그룹으로 나누고 각각 다른 용량(2.5·5·10㎎)의 BAN2401을 투여했고, 일부에게는 위약(플라시보)을 투여하며 경과를 관찰했다. 약효를 평가하는 지표로는 뇌에 쌓인 아밀로이드 베타의 양, 인지력 감소폭 등이 측정됐다.

그 결과, BAN2401 고용량(10㎎/㎏)을 2주에 한 번씩 18개월 동안 투여 받은 그룹에게서 가장 큰 효과가 나타났다. 이들은 위약그룹보다 치매의 진행이 30% 가량 덜했다. 두 그룹의 뇌를 양전자 단층촬영(PET)으로 들여다본 결과, BAN2401을 투여한 환자가 위약그룹보다 아밀로이드 베타 누적이 적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다만 이런 효과는 해당 약물을 18개월 동안 투여 했을 경우 나타났으며, 시험의 목표인 12개월 동안에는 아무런 효능이 없었다. 이는 곧 실패를 의미한다. 심지어 BAN2401의 가장 낮은 용량(2.5㎎)은 위약보다도 인지력 저하 예방 효과가 떨어졌다.

이런 결과가 발표되자 에자이와 바이오젠의 주가는 각각 21%, 11% 급락했다.

◆“대조군(위약그룹)에 인지력 저하 빠른 환자 많았다···약효 돋보이도록 설계된 시험”

에자이의 협력사 바이오아틱(Bioarctic)은 26일(한국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임상치매회의(CTAD)에서 study201의 결과를 추가로 발표했다. 이 내용을 종합하면 BAN2401은 ‘APOE4’라는 유전자의 유무에 따라 약효 차이가 컸다.

APOE4 보유자는 해당약물로 큰 효과를 봤다. 이들은 BAN2401의 가장 높은 용량을 18개월 동안 투여 받을 경우 위약그룹보다 치매 진행이 63%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 유전자가 없는 사람은 약물을 투여 받아도 위약 그룹보다 치매 진행이 7% 덜 할 뿐이었다.

특정 유전자의 유무에 따라 약효 차이가 이렇게나 큰데, 임상시험은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실시된 것으로 드러났다. APOE4 보유자가 BAN2401 투여그룹에 10명, 위약그룹에 113명이 배치된 것이다. 

이런 불균형은 안전성 문제로 인해 발생했다. 유럽의약품청(EMA)은 “APOE4 보유자가 BAN2401 고용량을 투여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 발생이 우려된다”며 “이들을 임상시험에서 제외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시험에 끝까지 참여하면서 BAN2401을 투여 받은 APOE4 보유자는 단 10명에 불과했다.

이런 불균형에 대해 제약사측은 “약물투여군에 APOE4 보유자가 더 많았다면 약효의 지표는 더 향상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위약그룹에 APOE4 보유자가 상대적으로 많았다는 점에 대한 비평이 지배적이다. 이 유전자가 있으면 후기발현알츠하이머(Late Onset Alzheimer's Disease Dementia)로 발전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인지력 저하 속도가 빠를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인지력 저하가 빠른 환자를 대조군으로  두고 약물의 효과를 부풀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제약시장 조사업체 리링크의 애널리스트 제프리 포지스는 “두 그룹에 배치된 APOE4 보유자 수가 달라 결과에 의구심이 든다”며 “특정 유전자를 가진 사람 가운데 18개월간 약물을 투여 받은 환자 수도 너무 적어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고 진단했다. 

자산관리회사 RW베어드 애널리스트 브라이언 스코니도 “임상설계의 문제로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결과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입장”이라고 밝혔다. 

관련 전문가는 18개월 간 꾸준히 약물을 투여 받은 APOE4 보유자가 적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알츠하이머협회 최고과학임원 마리아 카리요는 “표본의 크기가 너무 작아 통계적 검정력이 제한적”이라며 “결과 해석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 결과가 발표되자 바이오젠의 주가는 3% 하락했다.

현재 에자이·바이오젠은 BAN2401의 다음 임상시험에 대한 계획을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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