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8.11.03 06:00

한 쪽 끝 고정안해 마치 나는듯 보여…회전목마 뜻하는 '까루셀'은 사촌 격

Tourbillon-Pour-le Merite (사진=랑에 운트 죄네 홈페이지)
뚜르비옹 푸르 르 메리트. 뚜르비옹을 관찰할 수 있는 보조 초침의 조리개가 특징이다.
​​​​​(사진=랑에 운트 죄네 홈페이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뚜르비옹(tourbillon)은 기계식 기계에서 가장 구현하기 어려운 컴플리케이션(complication)이다. 

컴플리케이션이란 시간(시, 분, 초)과 날짜(요일, 날짜) 외에 다양한 기능이 더해진 시계를 뜻하는 용어이다.

호주머니에 주로 세워진 상태로 있던 회중시계의 정확성을 높이기위해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에 의해 발명됐다.

브레게는 중력의 영향에 대응하기위해 독창적이지만 적용방법은 매우 까다로왔던 해법을 제시했다.  

당시 뚜르비옹이 형형색색(形形色色) 다양해진 현 시점에서 보면 단일 축(single axis) 뚜르비옹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뚜르비옹이 나온이후 생산방식이 개선되고 부품소재의 재질도 향상되면서 기계식 시계의 정확성은 대폭 향상됐다.  

시계회사들은 1980년대 초반까지도 뚜르비옹을 완성하는데 어려움이 적지않았다. 제작에 오랜 기간이 걸려 가격도 천문학적인 수준이었다. 이처럼 희귀품이다보니 잠재 고객 기반도 심각하게 제한되었다. '쿼츠(quartz)위기'를 극복하기위해 신제품 개발에 적극 나서면서 저력을 되찾았던 1980년대 중후반 들어서야 특정 시리즈로 연속적인 제작을 할 수 있게 됐다. 1990년대 들어 뚜르비옹을 필두로 시계 내부를 훤히 드러낸 오픈워크(open work), 무브먼트(movement)에서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을 덜어내 마치 해골처럼 보이도록 한 스켈레톤(skeleton) 등 멋진 디자인까지 갖춘 시계를 경쟁적으로 내놓으면서 전 세계 부유층들은 하이 엔드 워치(high end watch) 구매에 앞다퉈 나섰다. 뚜르비옹이 초고급시계의 필수품으로 장착되면서 이른바 기계식시계의 르네상스가 온 것이다.

손목시계는 수직이나 수평등 여러 방향으로 움직인다. 엄밀히 보면 특정 위치에 고정되면서 발생했던 중력의 영향이 누적될 가능성도 매우 낮다. 이런 점 때문에 뚜르비옹은 어떤 장치가 잘못 동작되면서 시스템 전체에 확산되는 것을 막기위해 같은 장치를 여러 개 두는 덧붙임(redundancy)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종의 과잉이고 여분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실정에서도 뚜르비옹이 최고급시계의 필수품인양 여겨진데에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데다 시계의 몸값과 위상을 높이기위해 럭셔리 시계업체들이 적극적인 연구개발에 나서고 교묘하게 마케팅한 덕분이 아닌가 싶다.

트래디녀날 뚜르비옹 플래티넘 950 (사진=바쉐론 콘스탄틴 홈페이지)
트래디셔널 뚜르비옹 플래티넘 950 (사진=바쉐론 콘스탄틴 홈페이지)

바쉐론 콘스탄틴은 홈페이지에서 "뚜르비옹 시계를 구동하는 장치는 밸런스 휠,밸런스 스프링,그리고 이스케이프먼트(escapement)로 이뤄져 있고 이들을 감싸는 모빌 캐리지로 구성돼 있다. 끊임없이 회전하는 뚜르비옹은 이러한 구동부품들이 규칙적인 360도 회전을 유지하도록 하여 부품에 가해지는 중력의 영향을 중화시킴으로써 무브먼트의 정확도를 높인다. 이러한 기술력을 통해 바쉐론 콘스탄틴 뚜르비옹 시계는 극강의 정밀도를 지니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도록 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표현이다.

뚜르비옹을 구동하는 장치를 담은 뚜르비옹 케이지(cage)를 하나의 나뭇가지로 간주하고 두 손으로 잡는다고 상상해보자. 각 끝을 양 손바닥으로 붙잡는다고 할 때 우측 손은 다이얼(문자판) 부분에 연결된 다리를, 좌측 손은 무브먼트 사이드에 연결된 다리로 볼 수 있다. 이처럼 표준적이고 전형적인 뚜르비옹 케이지는 양쪽 끝이 묶여 있어 멋지게 가공된채 정교하게 회전하는 뚜르비옹을 가릴 수 있다.

이런 약점에 주목한 럭셔리 시계업체들이 개발한 것이 '플라잉(flying) 뚜르비옹'이다. 마치 뚜르비옹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인상에서 나온 말이다.미학적인 이유로 축(axis)과 연결된 메인 플레이트에 붙은 브릿지(bridge)를 제거하고 베이스(base)에서 캔틸래버(cantilever)방식으로 연결한 것이다.

원래 캔틸래버란 한쪽 끝이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아 자유로운 상태에 있는 들보(beam)를 말한다. 건축용어로는 외팔보라고 한다. 겉보기에 경쾌하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같은 길의의 보에 비해 4배의 힘을 받아 변형되기 쉽다는 약점을 갖는다.

플라잉 뚜르비옹 (사진=글라스슈테 오리지날 홈페이지)
플라잉 뚜르비옹. 각종 컴플리케이션을 갖추었다.
(사진=글라스 슈테 오리지널 홈페이지)

이런 플라잉 뚜르비옹은 양 끝이 브릿지와 연결된 단순한 모델보다 훨씬 제작하기 힘들다. 한 쪽 끝이 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방향으로 끊임없이 회전하면서도 균형을 잘 유지해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종 부품들의 무게가 1그램도 안될 정도로 매우 가벼운데다 미세하다. 시계 장인의 입장에서 기술적으로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플라잉 뚜르비옹은 표준 뚜르비옹에 비해 뚜루비옹을 둘러싼 캐리지(carriage)의 전체 모습을 다른 장애물 없이 잘 볼 수 있다. 브랜드를 새겨넣거나 화려한 디자인을 넣기에 최적이다. 바쉐론 콘스탄틴이 제작한 뚜르비옹 캐리지는 말테의 십자가 형태로 유명하다. 회사 로고로도 사용된다. 십자군 전쟁이후 몰타섬을 근거지로 삼았던 구호기사단에서 깃발과 복장에 썼던 십자가 모양의 문장이다.  

뚜르비옹와 유사해 혼동되는 것이 까루셀(carrousel)이다. 회전목마를  뜻하는 말이다. 까루셀은 뚜르비옹보다 제작비용이 저렴하고 회전속도가 다소 느린 대안으로 창조되었다고 한다. 덴마크 출신의 시계 장인으로 영국에 주로 살았던 반 보닉센(Bahne Bonniksen)은 브레게의 뚜르비옹 원리를 응용, 중력상쇄 레귤레이팅 장치로 1892년 특허를 얻었다. 그가 제작한 까루셀 회중시계 등은 영국 그리니치 왕립천문대에서 선택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다만 보닉센이 사망한뒤 까루셀도 잊혀졌다.

시계전문가인 라이언 슈미트(Ryan Schmidt)의  설명에 따르면 뚜르비옹이 4번째 휠(fourth wheel)에 올려진 이스케이프먼트라면 까루셀은 세번째 휠에 의해 회전하는 추가적인 휠에 올려져 있다는 구조적인 차이가 있다. 이러다보니 전형적인 까루셀의 회전속도는 통상 1분에 1회전하는 뚜르비옹보다 늦어지게 된다. 

가장 순수한 형태로서 까루셀은 손목시계에서 사용되지 않는다. 아주 드문 경우에 사용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캐리지의 회전속도를 높이기위해 기어장치를 추가하면서 작동하는 모습이 뚜르비옹과 매우 유사하게 보이게 됐다.

까루셀 volant une minute (사진=블랑팡 홈페이지)
까루셀 볼랑 윈느 미뉴 (사진=블랑팡 홈페이지)

이런 측면에서 뚜르비옹의 사촌이라할 까루셀을 현대에 부활시킨 회사가 블랑팡(Blancpain)이다. 블랑팡은 쿼츠 위기의 영향이 남아있던 1989년 하단의 싱글 브리지로만 뚜르비옹 케이지를 고정한 플라잉 뚜르비옹을 내놓았다. 1998년에는 최장 8일간 착용하지 않아도 시계가 멈추지않는 자동 플라잉 뚜르비옹을 출시했다. 이 무브먼트를 이용, 블랑팡은 2008년 세계 최초로 원 미닛 플라잉 까루셀 손목시계인 까루셀 볼랑 윈느 미뉴를 의욕적으로 선보였다. 

블랑팡의 최고경영자인 마크 하이에크(Marc A. Hayek)의 지시에 따라 뚜르비옹과 까루셀을 한 시계에 결합하는 시도가 이뤄진다. 4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2013년 나온 제품이 르 브라쉬스 뚜르비옹 까루셀이다.

뚜르비옹의 경우 동력이 싱글 기어 트레인을 따라 이스케이프먼트와 케이지에 이어지는데 비해 까루셀은 3번째 휠에서 보완적인 기어 트레인이 추가된다. 블랑팡의 설명에 따르면 까루셀까지 장착되면서 인터미디어트 휠(intermediate wheel)로 분할된 양 방향의 기어 트레인 중 하나는 이스케이프먼트를, 다른 하나는 케이지의 회전속도를 직접 제어하기에 보다 효과적인 동력 전달이 이뤄지고 진폭의 불규칙성도 더 줄일수 있다고 한다. 뚜르비옹보다 새로운 부품이 추가되는데다 밸런스를 맞추는 것도 더 까다롭다고 한다.

여전히 어려운 설명이다. 보다 더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기위해 뚜르비옹에 까루셀까지 들어갔으니 가격도 뛸 수 밖에 없다. 블랑팡의 뚜르비옹 까루셀은 서울 갤러리아백화점 명품점 투명박스 안에 진열되어 있다. 뒷면을 돌려보면 내부가 보여 시계가 살아움직이는듯 하다.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을만하다.  다만 판매가격은 3억7000만원 대이다. 상위 1%가 아니라면 엄두도 못낼 가격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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