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11.04 07:00

싼 연료비와 세금혜택 장점 사라지고 SUV 열풍 겹치면서 판매 급격히 추락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기아자동차의 MPV 모델인 카렌스가 19년 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카렌스는 카니발과 카스타 등 MPV 형제모델들과 함께 외환위기 시절 기아차를 일으켜 세웠지만 극심한 판매 부진에 결국 비운의 순간을 맞이하게 됐다. 

카렌스의 10월 판매대수는 총 1대. 지난 7월 생산이 중단된 이후 사실상 마지막 물량이 소진된 셈이다. 올해 카렌스의 월간 판매량은 200대를 간신히 넘는 수준이었다. 가장 많이 판매됐던 지난 6월에도 230대 팔린 것이 전부다.   

기아차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첫 출시된 3세대 카렌스의 누적 판매대수는 21만4906대다. 1999년 첫 출시된 1세대가 44만5898대, 2세대가 42만1769대씩 팔린 것에 비교하면 절반에 불과한 실적이다. 

반면 1세대 카렌스는 처음 선보였을 때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기아차의 ‘효자’로 자리매김했다. 상대적으로 값 싼 LPG 연료를 사용한 데다 승합차로 인정받아 자동차세금도 매우 저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는 경차에도 달리는 옵션이지만 당시만 해도 ‘고급 옵션’이었던 열선시트, 듀얼에어백 등도 적용해 상품성까지 높았다. 이 덕분에 출시 2년차인 2000년에는 국내 자동차 순위 3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1세대 카렌스는 경제위기로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소비자들의 니즈를 정확히 읽은 '똘똘한 차'였던 셈이다.    

지난 1999년 첫 출시된 1세대 카렌스. (사진=기아자동차)
지난 1999년 첫 출시된 1세대 카렌스. (사진=기아자동차)

지난 2006년 출시된 2세대 카렌스 역시 1세대의 ‘대박’ 흐름을 이어갔다. 2006년터 2012년까지 판매된 2세대 카렌스는 전작과 달리 중형차인 로체 플랫폼을 사용해 훨씬 넓어진 실내공간으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했다. 준중형급의 세피아를 기반으로 제작했던 1세대 카렌스에 비해 차체가 큰 것은 물론 파워트레인까지 모두 변경한 것이 주효한 것이다.

하지만 2세대에 이어 2013년 출시된 3세대 카렌스는 문화적·시대적 변화의 희생양이 됐다. 기아차에 새로 영입된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피터 슈라이어의 영향으로 디자인은 매우 세련된 모습으로 진화했지만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진 못했다. 

카렌스가 급격히 힘을 잃은 이유는 카렌스만의 장점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가장 큰 원인은 세제 개편으로 7인승 차량이 승용으로 분류되면서 자동차세가 크게 오른 점이다. 7인승 자동차는 지난 2000년부터 승합에서 승용으로 분류돼 3단계에 걸쳐 세금이 인상됐다. 이에 따라 2007년부터는 기존 6만5000원이던 세금이 52만원(2000기준)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게다가 매우 저렴했던 LPG 가격은 꾸준히 치솟았다. 실제로 LPG(액화석유가스) 가격은 리터당 847.3원에 판매되고 있다. LPG자동차는 연료 특성상 휘발유 대비 연비가 낮은 점을 고려하면 유류비 이점이 사라진 셈이다. 실제로 카렌스 휘발유 모델의 복합연비는 리터당 9.0에 불과하다.    

지난 7월 생산이 중단된 3세대 카렌스. (사진제공=기아자동차)
지난 7월 생산이 중단된 3세대 카렌스. (사진제공=기아자동차)

또 최근 높은 연비의 디젤엔진이 큰 인기를 끌었다는 점도 카렌스의 입지를 약화시켰다. 특히 카렌스 디젤모델은 1700를 달고나와 2000 디젤엔진을 주력으로 내세운 쉐보레 올란도에게 철저히 밀렸다. 가격과 크기의 차이가 없는 두 차종 가운데 엔진배기량이 높은 올란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국내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SUV 열풍도 카렌스를 단명하게 한 중요원인이다. 카렌스는 가격대와 공간 활용능력이 비슷한 소형SUV와 준중형SUV들에게 설 자리를 완전히 내줬다. 특히 유행에 민감한 국내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안팔리는 카렌스보다 인기많은 SUV를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올란도에 이어 카렌스까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이제 7인승 MPV는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기아차는 카렌스의 후속모델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하니 영원한 이별인 셈이다.  세단이나 카렌스보다 수백만원씩 비싼 SUV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것을 보면 괜히 씁쓸해진다. 국내 자동차 시장의 발전과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위해서라도 경쟁력 갖춘 MPV 모델이 하나쯤은 나와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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