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1.28 14:52
춘추시대 유가의 사상을 확립한 공자의 초상. 그는 예의 으뜸 덕목 하나로서 '효(孝)'를 꼽았고 그를 크게 선양했다.

“아버님 전상서, 기체후일향만강하옵시고…”라고 시작하는 편지글은 적지 않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는 내용이다. 50대에 접어든 사람들은 어렴풋이, 60대의 사람들은 글자 몇몇을, 70대의 사람들은 아련한 추억에 젖는 수준으로 기억한다.

기체후일향만강은 한자로 ‘氣體候一向萬康’이다. 기력(氣)과 체력(體)의 컨디션(候)이 지금까지 줄곧(一向) 모두 평안(萬康)하신지를 여쭙는 내용이다. 대개 아버지나 어머니께 올리는 편지의 서두를 장식하는 글이다.

이 글은 한국에서 한 때 부모님이 평안하신지를 묻는 이른바 ‘문안(問安)’의 가장 보편적인 형식이었다. 한자를 부분적으로 끌어다 썼던 한반도의 문화 지형이 만든, 나름대로의 변형을 가미한 틀이었다. 우리식의 ‘안부(安否)를 묻다’의 ‘안부’와 거의 비슷한 단어다. 안부는 곧 ‘편안하신가, 아닌가’라는 뜻이다.

‘문안’의 유래를 찾으려면 유가(儒家)의 경전인 <예기(禮記)>를 뒤적여야 할 듯하다. 그 안에는 ‘문안시선(問安視膳)’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부모님이 평안(安)한지를 여쭙고(問), 드시는 음식(膳)을 살핀다(視)는 뜻이다.

이 말고도 비교적 잘 알려졌던 말은 혼정신성(昏定晨省)이다. 저녁 무렵(昏) 부모님의 잠자리를 챙기고(定), 이른 새벽(晨)에는 잘 주무셨는지를 살핀다(省)는 얘기다. 이보다는 덜하지만 동난하청(冬暖夏凊)이라는 말도 있다. 겨울(冬)에는 부모님 잠자리를 따뜻하게 하고(暖), 여름(夏)에는 (부채질 등으로) 시원하게 만든다(凊 맑을 淸의 삼수 변 글자와는 다르다)는 뜻이다.

유가에서 늘 강조해 마지않는 큰 덕목, 효(孝)의 구체적인 행동강령인 셈이다. 이렇듯 과거의 예법에서는 부모님을 받들고 모시는 의식이 퍽 발달했다. 그 때에도 불효의 자식들은 있었을 테지만, 어디 지금 같기야 했을까.

‘기체후일향만강’으로 시작하는 과거 편지글의 백미는 끝 부분에 있던 게 보통이다. 편지 말미에 ‘덧붙임’이라는 뜻의 추신(追伸)이라는 글자를 적은 뒤 “소자(小子) 열심히 학업에 매진 중이나, 보내주신 돈이 그만 떨어져…”라는 내용 말이다. 이 부분을 읽는 부모님은 ‘에구, 이 녀석이 밥이나 굶지는 말아야 할 텐데’라며 홀쭉한 주머니를 어루만졌을 것이고….

요즘 부모님이나 조부모 등 저보다 높은 가족인 존속(尊屬) 살인이 큰 뉴스다. 제 어미를 죽이고, 제 아비를 죽인다. 조부모에 대한 행패도 날로 심해진다. 이 시절에 ‘문안시선’이나 ‘혼정신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큰 사치일까. 가꾸고 다듬어진 사람의 덕성(德性)보다는 들판과 산림을 넘나드는 짐승의 흉포한 수성(獸性)이 날뛰는 사회다. 부모에게 드리는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에 이런 말 반드시 ‘추신’하자.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아버님, 어머님!”

 

<한자 풀이>

氣(기운 기, 보낼 희):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몸으로 느껴지는 기운. 기백(氣魄). 기세(氣勢). 힘, 숨, 공기, 냄새, 바람, 기후 또는 날씨 등.

體(몸 체): 몸 또는 신체. 부사적으로는 몸소, 친히 등. 형상 또는 근본(根本), 격식(格式), 물질 또는 물체. 체험하다, 체득하다 등.

向(향할 향, 성씨 상): 향하다, 나아가다. 바라보다, 대하다. 대접을 받다. 권하다. 흠향하다. 제사 지내다. 방향 등.

萬(일만 만): 일만. 대단히, 매우(또는 매우 많은), 여럿, 절대로(萬無하다-절대로 없다), 전혀, 많다.

問(물을 문): 묻다, 문초(問招)하다, 방문하다, 찾다, 알리다, 부르다, 물음.

安(편안할 안)

膳(선물 선, 반찬 선): 선물(膳物), 반찬(飯饌), 생육. 제사 때 희생(犧牲)으로 올렸던 고기. 음식. 먹다. 올리다, 드리다. 조리하다, 요리하다.

昏(어두울 혼, 힘쓸 민): 어둡다, 희미하다. 날이 저물다. 일찍 죽다. 장가들다(婚). (눈 등이) 흐리다. 어리석다 등.

定(정할 정, 이마 정): 정하다, 정해지다. 바로잡다. 다스리다. 평정하다. 안정시키다. 머무르다. 준비하다. 자다. 그치다. 이마 등.

晨 (새벽 신)

省(살필 성, 덜 생): 살피다. 깨닫다. 명심하다. 관청 또는 관아. 마을. 대궐/ 덜다 (생)

凊(서늘할 청, 서늘할 정): 서늘하다. 춥다. 차갑다/서늘하다 (정). 춥다, 차다.

 

<중국어&성어>

寒暄 hán xuān 춥거나(寒) 따뜻함(暄 온난할 훤)을 가리켰으나, 날씨를 두고 대화를 나누는 ‘인사 나누다’ 또는 ‘인사’의 뜻으로 진화했다.

问(問)安 wèn ān: 어른에게 안부를 묻는 행위.

问候 wèn hòu: 위와 비슷한 뜻. 입말에서는 자주 쓴다. 우리식으로 풀면 ‘안부를 묻다’다.

问好 wèn hǎo: 위의 问候와 같은 뜻.

问安视膳 wèn ān shì shàn: 본문에 푼 내용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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