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양민후 기자
  • 입력 2018.11.10 07:35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뉴스웍스=양민후 기자] 향후 30년안에 인류에게 암보다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는 무엇일까.

항생제의 무분별한 사용이 야기하는 내성균(슈퍼버그)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연간 70만명에 달한다. 영국 정부가 발간한 ‘항생제 내성(AMR)’ 보고서는 항생제 사용을 줄이지 않을 경우 2050년에는 내성균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연간 1000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슈퍼버그에 의한 사망자가 3초에 1명꼴로 발생한다는 뜻이다. 이로 인한 경제적 비용도 약 100조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항생제 내성균은 적절한 대처가 없다면 향후 암보다 더 치명적인 위험이 될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즉각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증가하는 항생제 사용,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격차 더 벌어져

한국의 대응은 어떨까. 말할 것도 없이 미흡한 상태다. 항생제 사용은 늘고 있고 내성균으로 인한 사망도 1년에 40명에 달한다. 정부는 내성균 발생을 방지하는 대책을 세웠지만 실효성은 없는 실정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항생제 사용량은 2009년 26.9DID, 2010년 27.5DID, 2011년 29.1DID, 2012년 29.8DID, 2013년 30.1DID, 2014년 31.7DID, 2015년 31.5DID, 2016년 34.8DID 등으로 늘었다. 이는 2016년 기준 하루에 인구 1000명당 항생제를 처방받는 사람이 34.8명에 달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항생제 사용량은 OECD 26개국 가운데 터키(40.6DID), 그리스(36.3DID) 다음으로 많았고, OECD 평균(21.2DID)에 견줘 1.6배 많았다. 2008년 한국 사용량이 26.9DID로 OECD 평균(21.7DID)보다 1.2배 많았던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훨씬 더 벌어진 것이다.

의료기관별로는 상급종합병원을 제외한 의료기관의 감기환자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이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급종합병원의 감기환자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은 2013년 25.2%에서 2017년 13.5%로 크게 줄었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종합병원(35.8%), 병원(44.28%), 의원(39.5%) 등의 감기환자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은 여전히 높았다.

◆지난해 서울서만 카바페넴 내성균 감염자 8000명 추산

현재 국내에서는 중환자가 많은 종합병원·요양병원을 중심으로 ‘카바페넴’ 계열 항생제 내성균(CRE)이 증가하고 있다. 의학계는 CRE의 토착화로 국내 감염자 수가 증가하는 상황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카바페넴은 치명적일 수 있는 그람음성균 감염 질환 치료에 널리 쓰이고 있는 항생제다. 광범위한 병원균에 잘 듣는다 하여 '인류 최후의 보루'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카바페넴 조차 사용빈도가 잦아지면서 CRE 출현이 증가하는 추세다. 문제는 현재 CRE 감염 환자에게는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다는 점이다.

해당균은 2013년 4개 병원에서 유행했고, 이후 대형병원 중환자실 등에 잔류하면서 토착화됐다. 환자간 병상 간격이 짧은 국내병원 환경이 감염 확산의 원인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5년이 지난 현재 CRE는 공중보건에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보고된 CRE 감염자수는 8000명에 달했다. 이 중 해당균 감염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원은 모두 40명에 이른다. 감염발생 기관도 종합병원 43곳, 병원 10곳, 요양병원 23곳, 의원 5곳 등 모두 81곳으로 고르게 퍼져있다.

◆깊어가는 정부의 고민···정책 실효성에 ‘의문’

항생제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국가적 대책은 이미 시행 중이지만 실적은 미비한 수준이다. 한국은 2016년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 항생제 내성 감시체계인 ‘GLASS(Global Antimicrobial Resistance Surveillance System)’에 가입했지만 말 그대로 감시 단계에만 머물러 있을 뿐 현 상황에 대한 대책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2020년까지 항생제 사용량을 20%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 ‘2016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 대책’도 세웠다. 시행 2년이 지난 현재 감기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은 다소 줄었지만 급성상기도감염에 대한 처방률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어서 실효성은 떨어지고 있다.

정부는 또 ‘의료기관 항생제 적정성 평가’를 통해 항생제 처방률이 높은 의료기관에게는 외래관리료를 감산하고, 처방률이 낮은 기관에 대해서는 가산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5년간 평가결과를 보면, 항생제 과다 처방으로 4·5등급을 받은 의료기관의 숫자가 4년 연속 2200여곳에 이르는 등 교정 효과는 없는 실정이다.

내성균은 한 가지 항생제를 지속 사용할 경우 발생할 확률이 높다. 때문에 새로운 항생제의 사용이 내성균 예방에 필수적이지만, 국내에 도입된 신약은 최근 몇 년간 전무하다. 실제로 2014~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항생제 신약 6개 제품 가운데 국내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심지어 몇몇 제품은 국내 허가와 건강보험 적용까지 받았지만 출시되지 않았다.

◆전문가 “내성균 줄이려면 항생제 신약 도입 시급”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이재갑 교수(감염내과)는 최근 화이자 프레스 유니버시티에서 '항생제 내성현황과 해결 방안'에 대해 발표하며 “내성균 발생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새로운 항생제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2010년 이후 여러 항생제를 출시됐지만 국내에서 정식 허가된 제품은 많지 않다”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네릭(복제약)조차도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가중평균가’가 낮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가중평균가란 기존에 판매되고 있는 동일 성분 의약품의 시장 평균가격이다. 정부는 이 지표를 기준으로 신약의 가격을 매기고 있다. 하지만 가중평균가에는 오래전 개발된 모든 계열의 항생제와 제네릭 가격이 포함되기 때문에 산정되는 약가는 낮을 수 밖에 없다.

반면 제약사 입장에서는 신약 개발에 투자한 비용을 고려해 약가를 조금 더 받기를 원한다. 이런 입장 차이가 신약의 국내 출시를 막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국내 출시를 포기한 국산 신약도 있었다. 동아에스티의 새로운 항생제 '시벡스트로'는 지난 2015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3년째 시판하지 않고 있다. 반면 미국·유럽에서는 다국적 제약사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수익적인 측면을 배제할 수 없는 제약사의 입장을 생각해야 한다”며 “신약의 도입을 늘릴 수 있도록 약물의 유효성·안전성을 경제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우리나라만의 전략과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기관의 감염관리에 대해서는 ‘항생제 스튜어드쉽’ 시행이 답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항생제 스튜어드쉽는 항생제 사용시 효과는 유지하되, 원하지 않는 내성의 유도를 줄이면서 경제적인 이익도 가져오게 하는 전략 및 수행체계를 뜻한다.

이 교수는 “국내 모든 의료기관이 항생제 처방과 감염관리에 신경을 쓸 수 있도록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항생제 스튜어드쉽에 따라 항생제를 적절히 사용한 병원에게는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 내성균 발생 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