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8.11.17 06:45

슬라이드 레버 누르면 소리로 시간 알려줘

까루셀 리피티션 미닛 (사진=블랑팡 홈페이지 캡처)
까루셀 리피티션 미닛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6시 방향에 까루셀이 있다. 시작과 리셋 버튼을 누르면 시간을 측정하던 초침이 다시 0으로 돌아가 다음 시간을 연속 측정할 수 있는 플라이백(flyback) 크로노그래프도 장착하고 있다.
(사진=블랑팡 홈페이지 캡처)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고급시계(high horology) 제작자로 성공하려면 꼭 익혀야한다는 6개 컴플리케이션(complications)이 있다. 

컴플리케이션이란 기계식 시계에서 시간과 분,초침 이외로 갖고 있는 기능을 일컫는 말이다. 
첫 번째가 음향학의 정수를 담고 있는 미닛 리피터(minute repeater)이다.

두 번째는 오늘밤 뜨는 달의 모습을 보여주는 문 페이즈(moon phase)이다.

세 번째는 시간을 나눠 측정할 수 있는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split-second chronograph)이다.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두 개의 초침이 같이 회전한다. 스톱 버튼을 누르면 한 초침은 서고 다른 초침은 계속 돌면서 두 개의 기록을 측정할 수 있다.

네 번째가 긴 달과 짧은 달,윤년까지 스스로 계산해 월과 날짜, 요일을 알아서 표시하는 퍼페추얼 캘린더(perpetual calender)이다. 이어 시계를 아주 얇게 만드는 울트라 씬(ultra thin) 기술 , 그리고 뚜르비옹(tourbillon)이다.

이런 기능 중 상당수는 실제 필요성이 낮다는 비판을 받거나 착용자에 따라 아예 잊혀지는 수모를 당할 수 있다. 특히 시간의 경과를 기록하는데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 크로노그래프는 관리 부담만 초래하는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 핵심 컴플리케이션 하나가 추가될 때마다 시계 가격은 크게 뛰어오른다. 자신의 기호에 따라 신중히 골라야한다.

초기 시계들은 기온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 물질들로 제작된데다 관련 기술 수준도 낮아 정확성이 떨어졌다. 주민들에게 기도할 떄가 되었다고 알리거나 공동체의 주요 행사를 알리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그뒤 고강도의 재질을 사용한데다 디자인과 설계기술이 발전하면서 정확성과 아름다음이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잡게 됐다.

시계전문가인 라이언 슈미트(Ryan Schmidt)에 따르면 18세기 유럽의 거리는 흐릿한 가스 램프로 조명을 한 탓에 램프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회중시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영국의 주택들은 19세기 중후반까지 야간에 불을 켜지 않았다.

이처럼 암흑 속에서 소리를 통해 시간을 알 수 있도록 개발된 것이 차이밍(chiming) 컴플리케이션이다. 소리가 나는 공(gongs)과 공을 두드려 소리를 내게하는 망치 기능을 하는 해머(hammers)로 구성됐다. 차이밍의 기본 원리는 시계가 시간을 파악한뒤 해머로 공을 치도록 하는 것이다. 일련의 복잡한 절차를 수행하려면 여러 부품들이 정교하게 작동해야한다.  

차이밍 컴플리케이션은 리피터(repeater)와 소네리(sonnerie:자명종)로 구분된다. 리피터는 시간을 알고 싶을 때 슬라이드 레버를 누르면 소리로 알려준다. 이른바 온 디맨드(on demand) 방식으로 작동된다. 소네리는 이와는 달리 미리 지정된 간격마다 시간을 알려준다.

리피터가 소네리보다 보다 많이 보급된 편이다. 리피터 중에는 레버나 푸시버튼으로 작동되는 모델도 있다. 슬라이드 레버가 작동되면 독립 메인스프링(seperate mainspring)을 감아주면서 내부에서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초기에는 해머와 벨(bells)을 장착했지만 이제는 공과 해머를 사용한다. 공은 얇고 길게 늘어졌으며 단단한 막대로 보면 된다. 무브먼트의 둥근 둘레를 따라 휘어진 형태로 자리잡는 경우가 많다. 통상 맨아래 부분에 위치하지만 때론 위부분에 놓여지기도 한다. 한쪽 끝으로만 무브먼트에 붙어 있다. 해머는 두개의 카운터 스프링(counter-springs) 옆에 있다.  청아하면서도 깊고 분명한 소리를 낼수록 고급으로 평가받는다. 

공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소리는 낮아진다. 시를 표시할 때 사용된다. 짧으면 높은 소리가 난다. 분을 표시할 때 이용된다. 전형적인 미닛 리피터는 두 개의 공과 두개의 해머를 갖고 있다. 하나는 트레블 음(treble note)을, 다른 하나는 베이스 음(bass note)을 들려준다. 트레블은 최고음역이나 제일 높은 소리를 뜻한다. 고음부의 아이 목소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소프라노 목소리나 피콜로, 플루트 소리가 주파수가 높은 트레블의 대표적인 사례다.

반대로 베이스는 최저음이다. 남자 목소리의 베이스를 뜻하기도 한다. 악보에선 베이스 파트를 지칭한다.

두개의 음을 통해 세 개의 표시(indications)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싱글 베이스(single base)는 시를, 싱글 트레블(single treble)은 분을,두 개의 공을 동시에 울려 나오는 소리는 15분을 알려준다. 이를 각각 로우 톤(low tone), 하이 톤(high tone), 미들 톤(middle tone)이라고도 일컫는다.  예를 들어 5시32분에 미닛 리피터를 누른다면 로우 톤이 다섯 번, 미들 톤이 두 번, 로우 톤이 두 번 울린다.

리피티션 슈부렌 (사짅=F.R. Journe 홈페이지 캡처)
리피티션 수브렌 (사진=F.R. Journe 홈페이지 캡처)

해머는 눈요기가 되기도 한다. 프랑소와 폴 주른(F.P.Journe)이 제작한 리피티션 수브렌(Repetition Souveraine)은 10시 방향에 감지하기 힘들 정도로 얇은 리피터 슬라이더가 있다. 다이얼의 9시30분 방향에는 두 개의 해머 모습을 볼수 있도록 작은 구멍(aperture)도 나 있다. 

특정 컴플리케이션을 장착하려면 그만큼 부품 수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두꺼워지면서 무거워지기 쉽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기술력이다.

이탈리아의 럭셔리 브랜드인 불가리(BVLGARI)가 자랑하는 제품이 옥토 피니시모 리피티션 미닛(Octo Finissimo Repetition Minutes)이다. 불가리는 홈페이지에서 "이 믿을수 없는 옥토 피니시모 리피티션 미닛은 시장에서 가장 얇다. 단지 6.85㎜에 불과하다. 블가리의 엔지니어들은 불과 3.2㎜의 무브먼트에 모든 부품을 집어넣었다. 게다가 주목할만하게 가볍다"고 자평했다.

미닛 리피터는 태엽시계의 최고 기술로 손꼽힌다. 한시간 단위나 15분이나 10분, 심지어 분 단위로 오케스트라곡으로 편곡된 음악을 제공한다. 잠시 우울했던 착용자의 기분을 고양시켜줄 수 있다. 과장하면 천상의 음악을 들려준다는 얘기다.

클래식 미닛 리피터 736-61 (사진= 율리스 나르당 홈페이지 캡처)
클래식 미닛 리피터 736-61 (사진=율리스 나르당 홈페이지 캡처)

다만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일반적인 뚜르비옹과는 비교조차 안될 정도로 비싸다. 

율리스 나르당(Ulysee Nardin)이 홈페이지에 게시한 7개의 미닛 리피터 시리즈 중에서 가장 싼 모델(736-61) 의 소비자권장가격은 29만5000스위스프랑이다. 우리 돈으로 3억300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세금과 배송 비용을 물어야할 것이다. 이 시리즈 중에서 '웨스트민스터 카리용 뚜르비옹(Westminster Carillon Tourbillon)'까지 장착한 모델은 무려 73만5000스위스프랑에 달한다. 까르띠에(Cartier) 전 제품 중에서 미닛 리피터가 들어간 가장 저렴한 모델인 '로통드 드 까르띠에 미닛 리피터(Rotonde De Cartier Minute Repeater)'의 한국 시판가격도 4억3200만원에 달한다.

한밤 중에 전기가 나갔다. 랜턴이나 초, 휴대폰이 없다고 치자. 야광시계가 아니라면 시간 확인은 꿈도 못 꾼다. 다만 미닛 리피터가 있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다만 자산 축적에 성공한 일부 부유층 중 파인워치 애호가만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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