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1.29 15:04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조선 20대 왕 경종의 묘역인 경릉의 모습이다. 석관동과 이웃한 월계동의 이름 중 한 글자씩 떼서 만든 역 이름이 석계다. <사진=문화재청>

석관동(石串洞)과 월계동(月溪洞)의 경계에 있어 둘 안에서 한 글자씩을 따와 지은 역명이다. 석관동(石串洞)은 이곳 동네의 남서쪽에 있는 천장산(天藏山)의 지맥을 따라 검은 돌이 차례 때면 상에 오르는 경단 꿰어 있는 것처럼 늘어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돌(石)과 곶이(串)가 합쳐진 구성이다.

이곳 석계(石溪)역에서는 우선 돌을 가리키는 石(석)에 주목하는 것이 좋겠다. 다음 역이 바로 월계(月溪)라서 다음 글자 溪(계)를 풀기도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석수(石水)라는 역에서 이 石(석)이라는 글자와 다시 만난다. 그때 글자에 담긴 여러 가지를 설명해 볼 요량이다.

그러나 공백(空白)으로 이 역을 넘기자니 쑥스럽다. 그렇다고 내용 없는 말로 채우기도 민망하다. 따라서 이 역에서는 유명한 시 한 수를 읊고 가기로 하자. 석회(石灰)를 예찬한 시다. 중국 명(明)나라 때 청렴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우겸(于謙)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제법 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게 ‘두 소매에는 바람뿐(兩袖淸風)’이라는 일화다. 때는 명나라 영종(英宗, 1435~1449) 연간이다.

이 무렵의 명나라 조정은 무기력에 부패가 만연했다. 지방에 나가 있는 관리들이 수도를 들를 때면 상관에게 열심히 돈과 재물을 바쳐 자신의 환로(宦路)를 탄탄하게 다져야 했다. 우겸도 마찬가지였을지 모른다. 지금의 산시(山西) 지역의 최고 지방관이었으나 수도 베이징에 들르면서 당시의 권력자였던 환관에게 잘 보여야 했다.

우겸은 우선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뭐라도 가져왔겠지?”라고 물었단다. 그러자 우겸이 대답한 게 위에 적은 내용이다. “내 두 소매에는 바람만 있다”는 말이다. 조선도 그랬지만, 중국 관리의 복제(服制)도 웃옷에는 큰 소매가 나있다. 그곳에 작은 벼루와 붓, 그리고 다른 물건들을 넣었다. 그 안에 가득 들어있는 것은 깨끗한 바람뿐이라는 대답이었다.

그가 석회를 노래한 시 ‘석회음(石灰吟)’에는 우겸 스스로가 어떤 태도로 인생을 살았는지 잘 드러난다. 그 석회라는 것 역시 수많은 광물 자원의 하나이자, 아주 혹심한 불로 다뤄진 뒤에야 좋은 상품으로서 제 노릇을 할 수 있는 광석이다. 우선 우겸이 그를 어떻게 노래했는지 내용을 들여다보자.

 

천 번 만 번 두드려서야 깊은 산 속에서 나오니 千錘萬擊出深山

뜨거운 불에 태워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烈火焚燒若等閑

뼈와 살이 뭉개져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니 粉身碎骨渾不怕

사람 사는 세상에 청백함을 남기기 위함이리라 要留靑白在人間

 

千萬(천만)은 우리가 잘 아는 글자다. 천 번 만 번을 가리킨다. 錘(추)는 ‘저울’의 새김이 우선이지만, ‘망치’ 또는 ‘망치질’ ‘망치 등으로 때리다’의 뜻도 있다. 擊(격)이라는 글자도 ‘때리다’의 뜻이다. 따라서 千錘萬擊(천추만격)이라고 하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때리다’는 의미다. 그런 뒤에 아주 깊은 산(深山)에서 나온다(出). 석회가 광석으로부터 쓰임새가 있는 상품의 지위를 얻는 과정을 얘기했다.

뜨거운 불(烈火)에서 타고(焚) 또 타(燒)도 그것을 마치(若) 아무 일 없다는 듯(等閒)하는 석회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어 몸(身)이 가루(粉)로, 뼈(骨)가 부스러기(碎)로 변해도 전혀(渾) 두려워하지(怕) 않으니(不), 사람 사는 세상(人間)에(在) 깨끗함(靑白)을 남기(留)고자 함이니라(要)의 엮음이다.

우겸이라는 인물이 석회라는 물체를 두고 읊은 일종의 영물시(詠物詩)다. 공무(公務)를 다루면서 닥치는 많은 난관에서도, 자신의 몸과 영혼이 죄다 깨어지고 없어지더라도, 늘 깨끗함을 유지하겠다는 일종의 맹세를 담은 시다. 본문에는 석회석의 색깔에 빗대 청백(靑白)이라는 글자가 쓰였지만 이는 후대에 오면서 청아하고 깨끗함을 나타내는 청백(淸白)으로 풀어져 자리를 잡는다. 우리가 곧고 청렴한 관리를 부를 때 등장하는 청백리(淸白吏)라는 단어는 아마 이와 관련 있을 테다.

그는 시에서 보여준 자신의 뜻대로 깨끗함과 공정함으로 일관했다. 후에 모함에 빠져 결국 억울한 죽음을 맞았지만 지방관으로서의 인정(仁政)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기개로 중국 역사에서 흔치 않은 청백의 관리로 이름을 남겼다.

석회(石灰)는 무르기가 일반 암석에 비해 심하다. 그럼에도 돌은 돌이다. 단단하고 굳센 돌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지는 물체다. 좋은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공정함을 유지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돌을 닮아야 한다. 길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함부로 찰 일이 아니다. 그 미덕을 떠올리면 더 그렇다.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저, 책밭, 2014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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