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11.20 05:50

이항구 산업연 연구위원 "광주형일자리는 지역이기주의…미래차 투자할 때"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소형SUV 코나가 생산되고 있다. (사진=현대차)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소형SUV 코나가 생산되고 있다. (사진=현대차)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광주광역시와 현대차 간의 ‘광주형 일자리’ 투자협상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광주시의 무리한 정책으로 국내 자동차산업이 공멸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군산, 창원 등 기존 자동차공장들이 수요 감소로 문을 닫거나 생산량을 줄이는 상황에서 또 다시 공장을 늘리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공장신설이 아닌 신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로 국내 자동차산업을 살려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19일 오전 광주광역시의회 본회의에서 “광주형 일자리는 광주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시작됐지만 이제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린 중차대한 과제가 돼 이 일의 성공이 더욱 절실해졌다”며 광주형 일자리를 성공시키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이 시장은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한국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저성장, 양극화, 삶의 질 저하 등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노사상생의 일자리 모델”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이 같은 광주시에 행보에 현대차 노조는 물론 전문가들도 심각한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눈 앞의 당면과제인 ‘일자리 창출’에만 매몰돼 자동차 산업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는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19일 뉴스웍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지역 이기주의 정책인 광주형 일자리는 철회돼야 한다”며 “광주형 일자리에 쏟아부을 7000억원이 있다면 어려움에 빠진 국내 4600여개 협력사에 1억5000만원씩 긴급자금을 제공하는 편이 낫다”고 비판했다. 이 연구위원은 지난 2013년말 광주시로부터 광주시의 최대 역점시책인 ‘자동차 100만대 생산기지 조성사업’에 대한 연구용역을 의뢰받았던 전문가다. 2015년 3월에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주최한 ‘소득주도 성장과 광주형일자리‘ 토론회에 참여해 친환경차 및 부품 생산기술개발, 고부가가치 특수목적차기술개발 등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연구위원은 광주시가 꿈꾸는 ‘자동차 100만 생산기지’라는 말부터가 말이 안된다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그는 “광주에 공장을 둔 기아차는 2012년 SUV 생산을 위해 기존 50만대에서 62만대 규모로 생산능력을 늘렸는데 또 100만대로 확대한다는 것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욕심”이라며 “연구용역 당시에도 생산물량 확대가 아니라 부품소재산업을 육성해야한다고 주장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또 다시 광주형 일자리가 추진되고 있는데 이는 광주시장의 정치적인 치적쌓기에 가깝다”며 “현재 어려움에 빠져있는 국내 자동차산업은 몸집을 줄여야하는데 오히려 생산능력을 10만대 늘리려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기아차 광주공장은 판매부진으로 지난해 47만대 수준에 그쳐 생산능력의 75% 수준에 머물렀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는 이보다 2만대 가량 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 연구위원은 광주형 일자리가 벤치마킹한 독일과 미국사례는 광주시의 추진방안과 차이가 많다고 지적했다. 독일 폭스바겐의 아우토5000은 기존의 유휴시설을 이용해 새로운 인력을 고용했고, 미국 GM 역시 생산설비와 기존인력을 대폭 줄인 뒤 새로운 인력을 충원할 때 기준임금제를 실시했다는 설명이다. 반면 광주형 일자리는 올해 폐쇄된 한국지엠 군산공장과 폐쇄위기인 창원공장 등을 외면한 채 정치적 목적에 기반해 추진되는 중이다. 수요감소로 일감부족에 허덕이는 기존 자동차공장들을 살리는데 주력해도 모자를 판에 10만대 규모의 공장신설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이야기다.     

특히 그는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주장을 다양한 논리로 뒷받침했다. 현대차 노조와의 단체협약에 따라 현대차는 다른 시설에서 기존 차량을 생산할 수 없다. 따라서 새로운 모델을 개발해야 하지만 신차개발에는 최소 3년 이상 소요돼 사람을 뽑아도 생산할 모델이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숙련된 기술이 없는 신입직원을 대상으로 교육이 필요해 운영비가 더 늘어나는 데다 품질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이 연구위원은 이어 “광주형 일자리의 신규법인은 판로와 브랜드가 전혀 없어 자체적인 차량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현대차의 신차를 외주로 받아 생산한다면 기아차 모닝을 생산하는 동희오토와 똑같은데 이는 골칫거리만 추가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그는 공장신설이 아닌 미래차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로 국내 자동차산업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대차는 전기차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고 있고 자율주행차는 실력이 없다”며 “미래차 기술은 6개월 뒤처지는데 6년 늦어지는 게 현실”이라고 우려했다. 이 연구위원에 따르면 미국은 현대차의 자율주행차 기술력을 세계 14위권으로 보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판매량이 5위권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뒤떨어진 순위다. 현대차는 자율주행차의 핵심기술인 소프트웨어와 센서 부문에서 약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광주시와 현대차 간 광주형 일자리 투자협상은 당초 국회 예산심의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15일까지 협상을 마칠 계획이었지만 현재까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현대차는 단체교섭 5년 유예와 특근비를 포함한 임금안을 요구하는 반면 광주시는 노동계를 의식해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협상기간은 현재 무기한 연장된 상태다. 하지만 내년 예산심의 법정기한이 다음달 2일인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 2주 안에 협상을 끝내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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