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1.29 16:46
눈이 덮여 하양이 모두를 차지한 남산의 산책길이다. 흰색은 바탕이고 근저이기도 하다. 그를 바탕으로 만든 한자 낱말이 소질(素質)이다.

소질을 적는 두 한자는 모두 ‘바탕’을 일컫는다. 아무런 가공이 가해지지 않은 천연 상태 그대로의 바탕을 가리킨다. 앞의 글자는 그래서 ‘희다’라는 새김을 얻지만, 처음부터 색깔을 일컬었던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아무 흔적도 올리지 않은 백지를 상상하면 좋다.

공자의 어록에 등장하는 성어 가운데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는 말이 있다. 가공을 거치는 게 ‘文(문)’, 그렇지 않은 것이 ‘質(질)’이다. 둘이 서로 조화를 이뤄 ‘빛나다’는 의미의 ‘彬彬(빈빈)’에 이르러야 한다는 게 공자의 주장이다. 쉽게 말하자면, 타고난 바탕과 그 위에 교육 등의 가공과정을 거쳐 잘 다듬어진 면모가 서로 잘 어울려야 ‘군자(君子)’라 여길 수 있다는 얘기다.

素質(소질)이라는 단어는 나중의 합성을 거쳐 만들어졌다고 보인다. 그러나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소박(素朴)과 질박(質朴)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별다른 꾸밈이 없어 수수한 상태를 일컫는 단어다. ‘素(소)’는 물질의 기본인 원소(元素), 핵심 부분인 요소(要素) 등의 단어를 낳았다.

그보다는 ‘質(질)’이라는 글자의 행렬이 장관이다. 이 글자의 용도는 퍽 많다. 본질(本質), 형질(形質), 물질(物質), 체질(體質)이 우선 떠오른다. 야구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질(球質)이 반갑겠고, 명품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품질(品質)이 먼저겠다. 흙의 바탕은 토질(土質)이고, 물의 그것은 수질(水質)이다. 그렇게 ‘質(질)’은 마냥 이어진다.

그러나 ‘素質(소질)’을 떠올린 이유는 어디까지나 사람의 자질(資質)이 생각나서다. 타고난 바탕에다가 일을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느냐의 능력까지 얹은 단어가 ‘자질’이다. 요즘 국정감사의 철을 맞아 으름장이나 허풍, 정파적 다툼을 보이는 우리 국회의원 나리들의 자질은 어떨까. 국정감사라고는 하지만 ‘쇼’에 가까운 한심한 작태로 일관하는 의원들이 많다. 우리는 흔히 선거를 통해 뽑은 좋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들을 ‘선량(善良)’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바탕은 양질(良質)이라고 할 수 없다. 모두 상태가 비슷해 균질(均質)인 듯 보이는데, 그 수준을 따지면 분명히 저질(低質)이다. 아무튼 국정 전반이나 청문회, 국정감사 모두에 이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니 문제가 보통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이 ‘質(질)’이라는 글자에는 ‘저당 잡히다’ ‘맡기다’ 등의 새김도 있다. 사람의 목숨 등을 담보로 누군가에게 잡혀 있는 ‘인질(人質)’이 그 용례다. ‘자질’이 ‘저질’로 보이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성질(性質)과 기질(氣質)에 국민이 인질로 묶여 있다고 적는다면 과장일까. 이 글자 쓰임새가 정말 많다.

 

<한자 풀이>

質(바탕 질, 폐백 지): 바탕. 본질. 품질. 성질, 품성. 저당물, 저당품. 맹세. 모양. 소박하다, 질박하다

素(본디 소, 흴 소): 본디. 바탕. 성질. 정성. 평소. 처음. 흰 깁. 희다. 질박하다. 넓다. 부질없다. 옳다.

資(재물 자): 재물. 자본. 바탕. 비용. 의뢰, 도움. 돕다. 취하다. 주다. 쓰다.

 

<중국어&성어>

素质(質) sù zhì: 소질

天资(資) tiān zī: 타고난 바탕.

禀赋(賦) bǐng fù: 위와 같은 뜻.

资质(資質) zī zhì: 위와 같다.

劣根性 liè gēn xìng: 사람의 가장 나쁜 근성, 혹은 그 성격의 일면.

文质(質)彬彬 wén zhì bīn bīn: 위 본문 안의 해석과 같다. (뒤에 ~然後君子 rán hòu jun zǐ를 붙여 말하기도 한다) ‘후천적인 요소와 타고난 바탕이 서로 잘 어울려야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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