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11.25 06:00

[이항구 산업硏 박사 인터뷰 ㊤] 지역에 적자만 남긴 '제2의 영암 F1' 될 것
"규모의 경제 안되고 수익성도 전무…7000억원으로 부품사 지원하는 게 나아"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사진=박경보기자)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사진=박경보기자)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정부가 추진하는 광주형 일자리가 대규모 적자를 남기고 중단된 ‘영암 F1’ 대회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지방자치단체과 일자리 창출에 급급한 정부의 안일한 판단으로 막대한 경제적 손해는 물론 자동차 산업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자동차 산업의 일자리 창출은 양이 아닌 질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만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2일 오후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세미나 직후 뉴스웍스와 만나 이 같은 분석을 내놓았다.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에서 자동차산업을 연구하는 이 연구위원은 정부와 광주광역시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무리하게 추진하는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이 연구위원은 지난 2013년말 광주시의 최대 역점시책인 ‘자동차 100만대 생산기지 조성사업’에 대한 연구용역을 의뢰받았던 전문가다. 그는 연구용역 당시 광주시에서 연간 100만대를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선을 그었지만 5년 만에 10만대 규모의 생산설비 신설계획이 또 다시 튀어나온 셈이다.

이 연구위원은 광주형 일자리에서 1000㏄ 미만의 경차 10만대나 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물량을 모두 채우더라도 수익을 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미 국내 경차 생산은 40만대에 이르지만 수요는 불과 13만대 수준”이라며 “여기에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생산될 경형 SUV까지 더해지면 광주형 일자리의 신 차가 설 자리는 없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혹시 모를 수출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이 연구위원은 “독립법인인 광주형 일자리에서 수출이 가능하려면 브랜드와 판매망부터 있어야 한다”며 “특히 소형차나 경차는 수출시장에서 중국모델에 밀릴 수밖에 없어 마땅히 판매할 시장도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연구위원은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수익성이 전혀 없는 사업모델”이라며 “약 8000억원의 예산을 낭비하고 전라남도에 막대한 타격을 입힌 영암 F1 대회와 같다고 보면 된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영암 F1 대회는 8000억원의 예산을 쏟아붓고 막대한 적자를 기록한 대표적인 예산낭비 사업으로 꼽힌다. 전남도는 지난 2010년 세계적인 모터스포츠인 F1 대회를 7년간 개최한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2013년 중단됐다. 당시 전남도는 2016년까지 계약한 한국대회가 끝나면 약 1100억원의 이득을 남길 수 있다며 큰소리쳤지만 결과는 대실패로 끝났다. 전남도는 4회 대회를 치르면서 누적적자 1902억원을 기록했고 개최권료로 내놓은 비용만 1600억원에 이른다. 

이는 무리한 사업이 가져올 부정적 여파를 고려하지 않은 채 눈앞의 ‘보여주기 식’ 행정에 치중한 결과다. 특히 시민단체들은 당시 전남도가 사업타당성이 부족한데도 F1사업을 밀어붙인 이면에는 지역 정치인들의 재임기간 중 실적 올리기가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광주형 일자리 역시 지역이기주의가 바탕에 깔린 지자체의 ‘무리수’라고 진단했다. 그는 “광주형 일자리라는 이름부터가 잘못됐다”며 “벤치마킹 대상이 된 독일의 아우토5000이나 미국의 이중임금제 같은 이름이 아닌 ‘광주형 일자리’라고 불리는 것은 광주시의 분명한 이기주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일자리 창출’과 ‘자동차 산업 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고민이 들어가지 않았으며 정치적 입지 강화와 차기 선거 효과를 노린 단체장의  ‘치적 쌓기’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 그는 광주형 일자리가 독일의 아우토5000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우토5000은 유휴설비를 이용한 반면 광주시는 가뜩이나 수요가 감소하는 와중에 공장을 신설하려 한다는 것이다. 시장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공장을 새로 건설하면 판매부진으로 ‘규모의 경제’도 안 되고 수익성도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어 이 연구위원은 “광주에 공장을 둔 기아차는 2012년 SUV 생산을 위해 기존 50만대에서 62만대 규모로 생산능력을 늘린 상태”라며 “일자리와 자동차 산업을 생각한다면 생산설비 증설이 아니라 전기차 등 미래차 산업과 부품소재산업을 육성해야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광주형 일자리에 투입될 7000억원의 예산을 차라리 위기에 빠진 4600여개의 부품사에 긴급자금을 나눠 주는 편이 낫다”며 “보쉬 같은 대형 부품업체들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 육성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범부처 차원의 부품사 지원체제를 구축해 중소·중견기업의 미래차 연구개발 능력을 집중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부품사의 기술경쟁력이 강화돼야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양질의 일자리도 창출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끝으로 이 연구위원은 “메리바라 GM 회장이 언급했듯 미래차로 향하는 자동차 산업은 향후 5년이 과거 50년보다 변화가 많을 것”이라며 "산업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려면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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