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11.28 11:29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28일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창업가의 길을 걷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지난 23년 간 코오롱그룹의 수장으로서 역할을 마무리하고 경영일선에서 퇴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1956년 태어난 이 회장은 고(故)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1남 5녀 가운데 외아들로,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코오롱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다가 1996년 1월 이동찬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서 그의 나이 40세에 회장에 올랐다.

그는 젊은 총수답게 격의 없는 소통경영으로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등 수많은 난관을 물리치고 그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오며 제2 도약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영자로선 껄끄러울 수 있는 노조와의 만남에 직접 나서는가 하면 대리급 직원들과의 난상 토론도 즐기며 그룹의 현안은 물론 인생 선배로서 방향타를 제시했다.

그는 코오롱의 새로운 화두를 소통이라고 할 정도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심통(心通)'을 경영철학으로 삼아왔다. 지난 4월 서울 마곡산업단지 신사옥에 입주할 당시 "새로운 60년 화두는 소통"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 회장의 철학이 저변에 깔려 있다.

퇴임식도 없이 마지막 퇴임 의사를 내비친 것도 남달랐다. 그는 이날 오전 임직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강서구 마곡동 코오롱원앤온리 타워에서 열린 성공퍼즐세션 말미에 예고 없이 연단에 올라 "내년부터 그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난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던 참석자들은 물론 생중계로 행사를 지켜보면 그룹 전 임직원들을 놀라게 하는 깜짝 선언이었다.

이 회장은 행사 후 사내 인트라넷에 서신을 올려 퇴임을 공식화했다. 서신에서 그는 "나이 마흔에 회장 자리에 올랐을 때 딱 20년만 코오롱의 운전대를 잡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3년이 더 흘렀다"며 "시불가실(時不可失·좋은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 아니면 새로운 도전의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아 떠난다"고 했다.

이 회장은 자신의 퇴임이 코오롱엔 새로운 변화와 혁신의 계기가 될 것이라도 했다. 그는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자율주행과 커넥티드 카, 공유경제와 사물인터넷 등 산업 생태계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면 살고, 뒤처지면 바로 도태될 것"이라며 "내가 스스로 비켜야 진정으로 변화가 일어나겠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제가 떠남으로써 변화와 혁신의 빅뱅이 시작된다면 제 임무는 완수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그룹을 이끌어 오는 과정에서 느낀 소회를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재벌가에서 태어난 특권도 있었지만 과중한 책임감과 부담감도 막중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저보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게 살아온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만큼 책임감의 무게를 느껴야 했고, 금수저를 꽉 물고 있느라 입을 앙 다물었다. 이빨이 다 금이 간 듯하다. 턱이 빠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그 특권과 책임감을 모두 내려놓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간 쌓은 경험과 지식을 코오롱 밖에서 펼쳐보려 한다.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롭게 창업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 그의 아름다운 퇴장과 새로운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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