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12.01 07:00

법인분리 일방적 추진…산은·노조 등 이해관계자 설득이 먼저
불확실성 완전히 걷어내야 판매·신뢰회복도 가능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법인분리를 강행하고 있는 한국지엠이 ‘도행역시(倒行逆施)’의 우를 범하고 있다. 회사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일들을 제쳐두고 엉뚱한 것에 힘을 빼고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회사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는 법인분리에 앞서 이해관계자들과 합의를 생략하면서 연일 파열음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지엠은 장기적인 사업유지와 이를 위한 소비자 신뢰회복을 약속해 놓고도 정작 명분이 떨어지는 법인분리를 밀어붙이고 있다. 물론 법원이 일단 막아 세웠지만 한국지엠은 이에 불복하고 항고하기로 한 만큼 재차 법인분리를 시도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과정이 공정하고 깨끗해야 결과도 정의로울 텐데 이해관계자들을 납득시키지 못하면서 스스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지엠은 약 8000억원의 국민 혈세를 지원한 산업은행은 물론 회사의 주축인 노조에게도 법인분리가 왜 필요한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지엠은 법인분리를 추진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2대주주인 산업은행과 구성원인 노조를 철저히 배제시켰다. 한국지엠은 앞서 지난달 19일 인천 부평공장에서 임시주총을 열고 R&D 신설법인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 설립 안건을 결의했다. 당시 회사가 산업은행 이사진이 참석하지 않은 상황에서 GM 측 임원으로만 안건을 처리하자 산업은행은 이에 반발해 법원에 주총 개최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주총에서 보통주 총수의 85%에 해당하는 찬성표를 얻지 못했다며 산업은행의 손을 들어 준 상태다. 

특히 카허 카젬 사장은 지난 말리부 행사에서 기자들에게 “한국지엠에게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중요하다”며 “회사의 많은 부분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노조와 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노조는 특별단체교섭을 통해 법인분리 문제를 해결하자고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지만 한국지엠은 이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게다가 산업은행이 법인분리를 놓고 한국지엠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3자협의체를 제안한 것마저도 뿌리쳤다. 뿐만 아니라 카젬 사장은 직영 정비사업소의 외주화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노조와 합의해 놓고도 서명은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조는 “법인분리는 철수를 위한 사전작업”이라며 연일 투쟁의 깃발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노조는 법인분리 저지를 위해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며 중앙노동위원회에 두 번째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중노위는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조정중지가 아닌 행정지도 결정을 내렸지만 노조는 판례에 입각해 불법성이 없다고 보고 파업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판례에 따르면 일정한 쟁의조정 기간을 거친 파업은 불법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법인분리에 대해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대화조차 나서지 않는다면 소비자 신뢰회복과 판매회복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향후 철수를 하기 위해 법인분리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가 거둬지지 않은 상황에서 선뜻 쉐보레 제품을 구입할 소비자는 많지 않다. GM이 경영정상화 계획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줘야 판매가 늘어날 텐데 스스로 불신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노사가 힘을 합쳐 경영정상화에 총력을 다해야 할 판국에 오히려 진흙탕 싸움만 벌이고 있는 것은 누구라도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지엠은 회사의 규모를 줄이는 법인분리 계획에 대해 주요 이해관계자인 산업은행과 노조와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해야 하고 만약 설득하지 못한다면 포기하는 것이 맞다. 특히 경영정상화를 전제로 막대한 국민 혈세를 지원받고도 몸집을 축소하는 데만 급급하다면 국민과 소비자들은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호주, 인도, 남아공 등 각국에서 철수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다가 홀연히 문을 닫고 떠나버린 GM의 전적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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