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주진기자
  • 입력 2016.02.01 11:08

공정거래위원회의 ‘순환출자 해소’ 명령에 재계에서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안 그래도 경영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순환출자 해소까지 하려면 보유한 지분을 대량으로 매각해야 하는데 시장 여건이 녹록치 않다는 것이 기업들의 입장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말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에 각각 기존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됐다며 주식 매각을 명령했다. 이로써 각각 팔아야 하는 주식 규모는 7300억 원과 4600억 원어치다. 특히 현대차의 경우는 매각 시한인 12월 31일을 정확히 1주일 앞두고 이 같은 결정이 나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현대차는 공정위 명령을 이행하지 못해 추가 제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공정거래위원회가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라고 명령할 수 있게 된 것은 2013년 12월 31일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다. 대규모 기업집단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기존의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될 경우 6개월 내에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해 2014년 7월부터 처음 시행됐다. 

이 같은 개정안이 나온 배경은 지난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치권은 순환출자를 두고 심각한 마찰을 보였고, 여권 내에서도 순환출자를 전면 금지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왔다. 결국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중재안이 나왔고 그것이 오늘날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 기존 순환출자 강화 금지’로 의견이 모인 것이다. 

기존 순환출자까지 모두 풀어야 한다는 의견에 비해서는 현행법이 온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법 역시 재계의 사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국제적으로도 우리 같은 강력한 순환출자 규제 법안을 갖고 있는 곳이 없어 글로벌스탠다드와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 상호출자 전면 금지하는 상황에서 나오게 된 순환출자

그렇다면 왜 기업들은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했고, 논란까지 일으키는 것일까? 일단 순환출자는 우리 공정거래법이 규정하고 있는 ‘상호출자제한’ 제도에서 비롯한 결과물이다. 

우리 법은 전체 자산이 5조원 이상에 해당하는 대규모 기업 집단에 대해서 계열사 간 상호출자를 완전히 금지하고 있다. 예컨대 계열사 A가 B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B는 그 비율에 관계없이 A사의 주식을 보유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현행법 순환출자 규제에 따르면, A(母)B(子)C(孫) 관계에서 C가 D주식을 10%이상 보유할 경우 D가 보유하고 있는 A의 주식에는 의결권이 없다. <자료=자유광장 블로그>

하지만 기업들은 적대적 M&A로부터 계열사를 보호하거나 재무구조를 튼튼히 하기 위해 기업 간의 결합을 보다 강하게 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상호출자제한제도를 피해 'A → B → C → A' 형태의 순환출자 형태의 결합 구조를 만들게 된다. 순환출자는 상호출자제한제도가 낳은 ‘진화적 적응’의 결과물인 셈이다. 

◆ 그렇다면 순환출자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인가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 같은 순환출자가 이른바 ‘가공의결권’, 즉 적은 지분만으로 전체 그룹을 좌우하는 폐단을 낳는다고 비판하면서 순환출자 자체를 ‘나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주주 자본주의의 기본적 속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반론을 야기한다. 

반드시 기업의 지분 전체를 소유해야만 기업을 경영하고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은 맞지 않으며, 오히려 더 많은 이들에게 주식을 매각해 배당금을 주는 것이 주주 자본주의의 장점이라는 시각이다. 실제 기업의 경영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 배당 혹은 거래 차익에만 관심이 있는 주주들 입장에서는 굳이 주식 지분에 따른 경영권을 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외국의 경우에는 적은 지분만으로도 전체 회사를 지배하고 경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수많은 제도들을 보장해주고 있다. 해외 선진국들은 차등의결권 주식을 인정하고 피라미드 구조의 기업집단 형태를 허용하고 있다. 즉, 법적으로 ‘가공의결권’을 보장하면서 보호도 해주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버크셔 헤더웨이사는 주식을 A종과 B종으로 나누어 발행, 워렌 버핏은 차등 의결권을 가진 A종 주식을 통해 전체 회사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A주식은 B주식에 비해 1만 배의 의결권을 갖는 이른바 ‘슈퍼 주식’이다. 구글 역시 창업주들이 보유한 26% 주식이 전체 78%의 의결권을 행사한다. 창업주가 가진 주식이 일반 주식에 비해 10배의 의결권을 갖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 해외 글로벌 기업 중에서도 순환출자 기업 상당수

차등의결권 등 기업 지배 수단을 보장하는 국가들에서는 애초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할 유인 자체가 없다. 굳이 복잡한 순환형 출자구조를 만들지 않아도 회사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이나 캐나다, 독일과 같은 국가의 기업들은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경우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국가에서는 순환출자에 따른 가공의결권 논란 등이 전혀 정치권에서 나타나지 않으며 순환출자에 대한 위험성이 제기되지 않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자동차회사 '도요타'의 순환출자 구조

일본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 도요타 그룹의 경우 총 11개의 계열사가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형성하고 있으며 캐나다의 에드워드 피터 브론프만 그룹(Edward &Peter Bronfman Group)은 지주회사와 순환출자가 혼합된 형태의 기업 구조를 갖고 있다. 

독일의 대표적인 금융그룹 도이치방크 그룹, 일본의 1위 기업집단인 타타그룹 등도 순환출자를 통해 전체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실제 EU 16개국의 경우에는 순환출자는 물론 상호출자에 대한 규제마저 아예 없다. 미국과 독일, 일본 역시 순환출자와 상호출자를 허용하고 있으며 다만 의결권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을 뿐이어서 사실상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출자 규제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잘만 쓰면 유용한 수단 ‘순환출자’ 허용해야

한편 재계에서는 순환출자를 보다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치열한 기업 경영 환경에서 기업을 방어하고 신규 사업에 투자를 하는 데 있어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순환출자가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방어책으로서 순환출자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내 기업집단 중 알짜 계열사를 노리는 외국계 기업이 대규모 주식을 매입할 경우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결국 더 많은 주식을 보유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처럼 기업방어를 위해 주식매입에 자본을 끌어다 쓰면 경영에 필요한 자본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이 재계의 설명이다. 

또한 기업 간 합병이나 분할,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계열사 재무구조 개선 등을 위해서도 순환출자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총수→A→B→C로 지분 구조가 이어져 있을 경우, C사의 재무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총수가 보유하고 있는 A사에 대한 주식을 C에 증여하게 되면 A→B→C→A와 같은 순환 형 고리가 만들어진다. 이런 순환출자는 C사의 기업체질을 개선하는 데 있어 유효하다는 분석이다. 

순환출자 제도를 무조건 안 좋은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오해인 만큼 재계에서는 순환출자를 폭넓게 허용하되, 선진국처럼 일정 비율 이상의 의결권을 제한하거나 혹은 미국과 같이 중과세 제도를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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