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12.04 15:42

기아차 광주공장 생산여력 14만대…10만대 공장 신설 '웬 말'
군산경제는 파탄…유휴시설 사용한 '아우토5000' 돌아봐야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진통을 거듭하던 '광주형 일자리' 협상이 내년도 국회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사실상 타결됐다. 운영 주체인 광주광역시와 투자자인 현대자동차가 핵심 쟁점이었던 적정 근로시간과 임금에 대한 접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양측은 5일 오전 잠정합의안에 대한 추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문제는 광주형 일자리가 지역 간 대결양상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 공장이 있는 울산시와 광주형 일자리를 유치하려는 광주시는 상호 지역 실업률이 심각하다며 연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지난달 30일 현대차 울산공장 노조사무실을 방문해 “2012년부터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인구가 줄고 있는 광주는 지난해도 8100여명이 떠났고 안타깝게도 이 가운데 66%가 20~30대”라며 현대차 노조의 협조를 호소했다. 

반면 하부영 노조지부장은 “광주형 일자리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보면 광주형 일자리는 출발 자체부터 지역간 감정을 악화시킨다”며 “울산은 데이터 상으로 광주시보다 실업률이 더 높고 현대중공업 사태 이후 울산시민들이 많이 떠난 상태”라고 맞받아쳤다. 

이는 광주형 일자리가 우리나라 제조업 전체의 체질 개선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특정지역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것으로 변질됐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광주시는 이미 들어서 있는 기아차 공장조차 연간 생산물량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에 따르면 기아차는 지난 2012년 광주공장의 기존 생산능력이었던 50만대에서 12만대를 늘려 62만대 체제로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광주공장에서 한 해 동안 생산되는 자동차는 48만대 수준에 불과하고 올해는 이보다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시장의 수요 감소로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데도 오직 ‘지역 일자리’만을 위해 10만대 규모의 새로운 공장을 짓겠다는 발상을 놓고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이 “광주형 일자리는 대규모 적자를 남긴 채 실패한 영암 F1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7000억원의 예산을 퍼붓고도 일감이 없어 결국 문을 닫게 될 우려가 있다는 이야기다.   

광주형 일자리가 벤치마킹한 독일의 ‘아우토5000’은 새로운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대신 기존의 유휴설비를 사용하면서 위험을 크게 줄였다. 쓰지 않는 시설에서 자동차를 만들고, 기존 노동자 대비 월급을 20% 낮춰 5000여명의 실업자를 고용한 것이 아우토5000의 핵심이다. 새로운 공장을 짓겠다는 광주형 일자리와는 시작부터 차이가 큰 셈이다. 

자동차 산업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면 지난 2월 문을 닫은 한국지엠 군산공장을 활용해야 명분과 실리를 얻을 수 있다. 공장 폐쇄로 지역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른 군산을 외면하고 광주에 공장을 신설하겠다는 발상이 과연 온당한가. 더 늦기전에 광주시가 '지역이기주의’에서 벗어나 통 큰 결단을 내렸으면 한다.

특히 앞서 이용섭 광주시장이 “울산도 울산형 일자리 모델을 발굴해 추진하면 적극 지원하겠다”고 언급한 것도 상당히 우려스럽다. 국내 지역경제는 심각한 내수부진에 시달리고 있어 현재 고용상황에 만족할 만한 지자체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형 일자리 이후 각 지자체마다 대규모 일자리를 내놓으라며 달려들면 정부가 이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국내 제조업의 ‘고임금 저효율’ 문제는 당장은 어렵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노사 간 대타협으로 풀어야할 문제다. 지자체 주도로 저임금의 새로운 공장을 만든다고 해서 노동구조가 유연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 저임금 노동으로 일자리를 활성화하겠다면 특정지역에 공장을 새로 지을 것이 아니라 공장폐쇄로 지역경제가 고사상태에 빠진 군산부터 살리는 것이 순서다. 숲을 보지 못한 이기적인 정책은 영암 F1처럼 부메랑이 돼 돌아올지 모른다. 광주 지역경제는 물론 국가 기간산업인 자동차 산업 전체를 망쳐버린 뒤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