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12.08 05:50

이항구 "현대차,고통 분담하고 노동 유연성 갖춘다면 모든 산업 뒤따를 것"
"노사 대타협과 신산업 육성이 살 길… R&D 인력 육성 통해 미래차 준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소형 SUV 코나가 생산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소형 SUV 코나가 생산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는 국내 자동차산업을 구하고 일자리를 늘리려면 저임금의 ‘광주형 일자리’가 아니라 노사 간 대타협과 신산업 육성이 해법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임금 수준이 훨씬 높은데도 자동차 산업에서 일자리가 늘고 있는 독일과 미국의 사례에서 배울 점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7일 뉴스웍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해당사자 간 신뢰가 깨진 광주형 일자리는 더 이상 언급하지 말고 수면 밑으로 가라앉혀야 할 때”라며 “일자리 정책은 특정 지역에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국내 경제 전체를 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형 일자리’를 추진하고 있는 광주광역시는 지난 5일 노사민정협의회를 거친 협상안을  제시했지만 현대차는 “투자 타당성 측면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수용을 거부했다. 현대차는 광주시가 협상과정에서 주요 협의내용들을 수차례 수정하고 입장을 반복하면서 상호 간 신뢰를 잃었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현재 광주형 일자리 투자협상은 잠정 보류된 상태다. 

광주시가 현대차와의 협상에서 입장을 여러 차례 바꾼 것은 또 다른 이해당사자인 노동계를 설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광주형 일자리 협상단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이 “광주 완성차공장이 차량 35만대를 생산할 때까지 단체협약을 유예한다”는 잠정합의안 내용을 문제삼자 광주시는 노동계 입장만을 반영한 수정협상안을 내놓으면서 진화하는데 급급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단체협약을 유예하는 조항이 없다면 투자가치가 크게 떨어진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연구위원은 이 같은 잡음이 반복되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를 재추진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내 자동차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고비용 저생산’ 문제는 현대차에서만 심각할 뿐 다른 완성차업계와는 거리가 멀다”며 “5만여명의 직원들이 근무하는 현대차 노사가 고통을 분담하고 노동의 유연성을 갖춘다면 국내 모든 산업이 따라가는 선순환 구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 연구위원은 독일 폭스바겐 사례를 언급하며 노사 간 대타협과 신산업 육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기준으로 독일 폭스바겐의 인건비 비중은 15.1%로 15.2% 수준인 현대차와의 차이가 거의 없다”며 “그런데도 폭스바겐의 고용이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은 노사 간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에 따르면 독일 자동차업계 엔지니어링 인력은 지난해 10만명을 돌파했지만 우리나라는 3만명 수준이다. 특히 독일 자동차업계가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금액은 연간 49조원 규모에 달하지만 우리나라는 7조3000억원 수준으로 독일에 크게 못 미친다. 

이 연구위원은 “자동차 산업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부품산업과 신산업을 적극 육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미국의 경우 신산업의 핵심인 전기차 관련 연구인력만 10만명에 달하지만 우리는 1만명도 되지 않는 실정”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그는 광주형 일자리 같은 하드웨어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모빌리티 관련 소프트웨어 육성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억지로 저임금 생산직을 늘리기보다 고임금의 연구개발 인력을 적극 육성해 미래차 산업에 대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또 ‘고비용 저생산’으로 대표되는 자동차 산업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미국 GM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연구위원은 “GM은 파산 이전 시기인 지난 2003년 이중임금제를 도입해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며 “결국 2009년에 파산신청을 하긴 했지만 2014년까지 11년 간 이중임금제를 운영하며 위기를 극복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자동차 산업도 인원 및 임금 감축 등으로 위기를 극복한 후 경기가 회복됐을 때 다시 보상해줘야 한다는 게 이 연구위원의 주장이다. 

실제로 4년마다 임단협을 체결하는 미국 GM의 임금은 지난 2015년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단 이를 위해선 노사 간 깊은 유대와 신뢰구축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당장은 고통을 분담하더라도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돌려주겠다는 확실한 시그널을 줘야한다는 뜻이다.

이 연구위원은 끝으로 “우리나라는 고용보다 실업이 더 큰 문제”라며 “실업자를 구제해주고 노동의 유연성도 부여해 줄 수 있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