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12.12 17:13

신차 개발, 디자인 등 핵심요직에 외부 인재 임명…"기업 경쟁력 강화 차원"

알버트 비어만(왼쪽) 사장,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 토마스 쉬미에라 부사장, 지영조 사장, 이상엽 전무.
알버트 비어만(왼쪽) 사장,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 토마스 쉬미에라 부사장, 지영조 사장, 이상엽 전무.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그간 ‘순혈주의’를 고집하던 현대자동차그룹이 정의선 수석부회장 체제 강화와 맞물려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외국인 등 외부 인재를 적극 영입해 요직에 앉히는 큰 폭의 인적쇄신은 미래에 대한 위기감이 배경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에 따라 현대‧기아차의 연구개발은 물론 디자인과 상품기획 등 핵심 분야들을 모두 외국인들이 이끌게 됐다. 

현대차그룹은 12일 사장단 인사를 단행하고 주요 부서와 계열사들의 수장들을 대대적으로 ‘물갈이’했다. 특히 이번 인사를 통해 현대‧기아차의 연구개발본부장에 새로 임명된 외국인 임원이 눈에 띈다. 현대‧기아차가 연구개발본부장 자리에 외국인을 앉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3년 사이에 현대‧기아차의 중요한 자리마다 ‘순혈’이 아닌 외국인 임원들이 전진배치되고 있는 모습이다. 

현대‧기아차의 연구개발본부를 이끌게 된 알버트 비어만 사장은 지난 2015년 BMW에서 넘어온 세계적인 고성능차 전문가다. BMW의 고성능차 개발총괄책임자였던 비어만 사장은 3년 전 현대‧기아차로 영입된 후 차량성능담당을 맡아 '고성능 N' 개발을 진두지휘해 왔다. 비어만 사장은 앞으로 연구개발본부에서 현대‧기아차의 신차 개발을 총괄하게 될 예정이다.

비어만 사장은 BMW의 고성능 버전인 'M' 시리즈 등 30여 년간 고성능차를 개발해왔다. 비어만 사장은 짧은 시간동안 현대‧기아차와 제네시스의 주행성능을 크게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올해 초 사장으로 승진한데 이어 이번에 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지난 10월 승진한 토마스 쉬미에라 부사장도 현대차의 고성능사업부를 이끌어 온 핵심 인재다. BMW M 북남미 사업총괄 출신인 쉬미에라 부사장은 지난 3월 현대차에 합류한 이후 고성능차 및 모터스포츠 사업의 상품, 영업, 마케팅을 담당하는 고성능사업부장을 맡아왔다. 지난 10월부터는 상품전략본부장을 맡아 자율주행, 커넥티드카, 전동화 등 신기술에 대한 개발 방향성을 정립하고 있다.

또 지난해 11월에는 BMW에서 근무하던 고급차 플랫폼 기획 전문가인 파예즈 라만 상무가 현대차로 들어왔다. 제네시스 아키텍처개발실장을 맡은 라만 상무는 플랫폼과 패키지 개발 부문에서 30년간 축적한 경험을 살려 제네시스와 현대차의 플랫폼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비어만 사장과 쉬미에라 부사장을 비롯한 현대‧기아차의 외국인 임원들이 신차 연구개발의 핵심 축이 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스타 디자이너들이 최근 현대‧기아차로 집결하는 모양새다. 지난 2016년 6월 현대‧기아차에 입성한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 전무는 벤틀리의 외장 및 선행디자인을 총괄헸던 디자이너다. 다양한 최고급 럭셔리카를 디자인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기아차와 제네시스의 디자인 경쟁력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아 지난 10월 전무로 승진했다. 

또 현대‧기아차의 디자인 최고 책임자 역시 외국인인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이 맡고 있다. 현대차그룹 디자인경영담당으로 자리를 옮긴 피터 슈라이어 사장의 뒤를 이어받은 동커볼케 부사장은 현대차의 차별화된 디자인 구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1월 초 기아차에 합류한 올렉 손 중국기술연구소 디자인담당 상무는 PSA그룹에서 고급차브랜드 DS시리즈와 중국 현지모델 디자인을 총괄한 인물이다. 기아차는 앞서 영입된 피에르 르클레어 기아스타일링담당 상무와 함께 중국 소비자 취향에 맞는 현지 전략모델의 디자인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현대차 역시 지난해 6월 폭스바겐그룹의 중국 디자인 총괄이었던 사이먼 로스비를 중국기술연구소 현대차 디자인 담당 상무로 영입했다. 중국 소비자들의 기호를 10년 가까이 연구해온 로스비 상무는 중국 자동차 디자인 업계의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현대차그룹 양재동 사옥. (사진제공=현대자동차)
현대차그룹 양재동 사옥. (사진제공=현대자동차)

이 밖에도 현대차는 지난 9월 폭스바겐의 브랜드체험관 '폭스바겐그룹 포럼'의 총책임자인 코넬리아 슈나이더를 현대차의 고객경험본부 내 스페이스이노베이션담당 상무로 영입했다. 20년 이상 브랜드 전문가로 근무해 온 슈나이더 상무는 현대차 전반의 대고객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한 단계 끌어 올려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또 현대‧기아차는 해외기업의 외국인 임원 뿐만 아니라 국내 외부 인재도 적극 영입하면서 외부인에게 높았던 문턱을 단숨에 허물고 있다. 지난 10월 현대‧기아차는 인공지능을 전담하는 신설조직 ‘AIR Lab’에 네이버랩스 출신의 김정희 이사를 영입했다. AIR Lab을 총괄하는 김 이사는 고객경험 혁신, 미래차 개발, 모빌리티 서비스 등 현대차그룹의 6대 AI 전략과제를 전담한다.

특히 지난해 삼성전자에서 현대차로 넘어온 지영조 전략기술본부장도 이번 사장단 인사를 통해 1년 만에 사장으로 승진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직접 챙기는 것으로 알려진 전략기술본부는 현대차의 ‘미래 먹거리’인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을 개발하는 부서다. 지 사장은 전략기술본부에서 스마트시티, 모빌리티, 로봇, AI 등 현대차의 핵심과제를 수행하게 된다. 

이번 사장단 인사를 통해 전략기획담당 사장으로 승진한 공영운 홍보실장도 순혈이 아닌 문화일보 출신이다. 공 사장은 지난 2006년 현대‧기아차에 입성한 후 홍보실을 책임져 왔던 인물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순혈주의를 깬 파격 인사는 연구개발 혁신과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라며 “전문성과 리더십이 검증된 실력 위주의 글로벌 핵심 인재를 중용해 미래 핵심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인사”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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