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준영 기자
  • 입력 2018.12.25 07:30
22년째 서비스를 진행 중인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 (이미지제공=넥슨)
22년째 서비스를 진행 중인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 (이미지제공=넥슨)

[뉴스웍스=박준영 기자] 90년대 말 인터넷의 발달, PC방 보급, 국민 PC 사업을 통한 '1가정 1PC' 시대 도래 이후 한국 게임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바람의 나라', '리니지' 등 온라인 게임이 대거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발전이 이뤄졌다.

2009년 '아이폰 쇼크' 이후 모바일로 기반을 옮긴 한국 게임산업의 발전 속도는 더 빨라졌다.

'2017년 연간 콘텐츠산업 동향분석보고서(한국콘텐츠진흥원)'에 의하면 지난해 한국 게임산업의 매출은 12조 2403억 원으로 국내 콘텐츠산업 전체의 11%를 차지했다. 매출 증가율은 12.4%로 콘텐츠산업 중 가장 높았으며 수출액도 전체 콘텐츠 수출액의 56.7%에 달했다.

업체들의 성장세도 두드러졌다. '3N'으로 불리는 넷마블·넥슨·엔씨소프트는 2017년 각각 2조 4248억 원, 2조 2987억 원, 1조 7587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총 6조 원을 돌파했다. 올해 역시 3N은 지난해 못지 않은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한국 게임산업의 규모는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힐 정도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14일 발간한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 2018년 연간호'에 따르면 한국 게임산업은 2018년 10월 기준으로 57억 6400만 달러(한화 약 6조 4885억 원)를 기록, 중국과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글로벌 상위 10개국 게임산업 규모. (사진제공=한국콘텐츠진흥원)
2018년 글로벌 상위 10개국 게임산업 규모. (이미지제공=한국콘텐츠진흥원)

◆매출은 늘었지만 영향력은 줄었다

지금까지 드러난 수치만 보면 한국 게임산업에 장밋빛 미래가 보장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시장은 세계 4위 규모지만 정작 '글로벌 매출 상위 10대 게임 기업' 순위에 한국 기업은 단 하나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짐을 의미한다.

중국의 텐센트가 101억 8900만 달러(한화 약 11조 4748억 원)로 1위를 기록했으며 소니, 애플, MS, 액티비전 블리자드, 넷이즈 등이 뒤를 이었다. 중국(2개)과 미국(5개), 일본(3개) 업체들이 10위권을 독차지했다. 이번 결과는 주식 공개 기업에 한해 2018년 1·2분기 공시된 매출 집계로 산정됐다.

내수 시장 지배력 역시 예전 같지 않다. 현재 한국 게임의 주요 무대인 모바일에서도 해외 업체의 거센 공세에 조금씩 자리를 내주고 있다. 모바일 양대 마켓 구글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 매출 순위를 살펴보면 상당수의 해외 모바일 게임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PC 온라인 게임 역시 라이엇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 블리자드의 '오버워치' 등 외산 게임이 몇 년째 PC방 점유율 1위를 독점 중이다.

2018년 글로벌 상위 10개사 게임 매출 예상치. (이미지제공=한국콘텐츠진흥원)
2018년 글로벌 상위 10개사 게임 매출 예상치. (이미지제공=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 게임을 대하는 해외 업체의 자세도 달라졌다.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게임을 수입하는 것에 집중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구매력이 높은 한국 시장을 직접 공략하는 데 초점을 맞춰 사업을 진행한다.

한국은 인구수가 많지 않지만 개개인의 구매력이 높고 스마트폰, 인터넷 환경 등 전반적인 인프라가 뛰어나다. 해외 업체 입장에서는 매출을 올리기 좋은 환경이다. 실제로 한국은 지난해 인구수 대비 매출액이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인 것으로 파악됐다.

한 해외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우수한 한국 게임을 구매해 자국에서 서비스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한국 시장 진출이 당면 과제"라며 "눈에 띄는 한국 게임 신작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전반적인 기술력이나 게임성에서 우리가 뒤처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반부터 흔들리는 게임업계

게임업계 전반적으로 최근 성적이 그리 좋지 않다. 지난 3분기 '3N' 중 넷마블은 매출 5260억 원, 영업이익 673억 원으로 전년동기대비 각각 9.6%, 39.8% 감소했다. 엔씨소프트 역시 매출 4038억 원, 영업이익 1390억 원으로 44%, 58% 줄었다. 넥슨이 유일하게 상승세를 기록했지만 이는 '던전앤파이터'의 중국 로열티가 큰 영향을 미쳤다.

모바일 게임업계 터줏대감 게임빌도 2016년 4분기 이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고전 중이다. 게임빌은 전년동기대비 매출은 9.3%, 영업이익은 80% 감소했다.

파티게임즈는 지난 10월 상장폐기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며 넷게임즈, 드래곤플라이, 위메이드, 액션스퀘어, 조이맥스 등 게임업계 상장사 중 10여 개가 넘는 업체가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18년 12월 24일 구글플레이 최고 매출 앱 순위. 해외 게임 업체와 연관된 게임은 붉은 색으로 표기했다. (이미지제공=구글플레이)
2018년 12월 24일 구글플레이 최고 매출 앱 순위. 해외 업체와 연관된 게임은 붉은 색으로 표기했다. (이미지제공=구글플레이)

인력 유출도 심각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행한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2년 9만 5051명이었던 게입업체 종사자는 2016년 7만 3993명으로 줄었다. 2014년부터는 매년 약 6~7000 명씩 이탈하고 있다.

여기에는 해외 업체에 비해 적은 연봉과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을 지키기 어렵다는 점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노조가 설립되고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게임업계 근로자가 야근, 주말 근무에 시달리며 자기 생활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까지 게임업계는 고속 성장을 이뤘지만 내부 발전은 정체된 것이 사실"이라며 "게임업계도 이제 내부를 돌아봐야 한다. 직원을 쥐어짠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기반이 흔들리면 더이상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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