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양민후 기자
  • 입력 2018.12.29 08:35

美·日 연구결과 "청소년에게 자살 유발 하지 않는다"
"10~16세 자녀 복용후 이틀간 철저히 지켜봐야"

(사진제공=로슈)
(사진제공=로슈)

[뉴스웍스=양민후 기자] 독감치료제 ‘타미플루(성분: 오셀타미비르인산염)’를 복용한 중학생이 이상행동을 보인 뒤 추락사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해당 약의 안전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타미플루는 항바이러스제다.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해 증상을 줄여주고, 합병증을 예방해준다. 1999년 길리어드가 개발한 뒤 로슈에 기술이전(기술료 400억원)한 의약품으로 국내 허가는 2000년에 이뤄졌다.

의약품시장 조사기관인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타미플루의 2018년 3분기 국내 누적 판매액은 120억원으로 독감치료제 가운데 1위였다. 2위는 한미플루(한미약품)로 53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특허가 만료되면서 국내 제약사 52곳에서 163개의 복제약을 출시해 판매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타미플루 부작용 신고 건수는 2012년 55건에서 크게 늘어 2017년 164건, 올해(9월 기준) 206건으로 집계됐다. 그동안 보고된 주요 증상은 구토·설사·어지러움 등이었다. 환각 관련 부작용은 총 12건이었고, 불안증세는 6건이었다. 해외연구에 따르면 타미플루의 돌발행동 유발 가능성은 0.5%였다.

타미플루 부작용 중에서도 국민이 우려하는 것은 청소년의 돌발행동이다. 환각·환청 등을 유발해 극단적인 행동을 한 사례는 심각성 면에서 일반 약물부작용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타미플루 복용자의 이상행동, 국내외서 여러 차례 보고

부산 연제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전 6시께 부산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A(13)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특이한 외상이 없어 추락에 의한 장기 손상으로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A양은 전날 독감으로 타미플루를 처방 받아 복용한 뒤 환각 증상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학교생활과 교우관계가 원만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상행동에 따른 추락사는 타미플루의 부작용에 의한 것으로 강하게 추측되고 있다.

타미플루를 복용한 청소년이 이상행동을 보인 뒤 사망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에는 11세 남자아이가 해당 약을 복용한 뒤 이상증세로 21층에서 추락해 사망한 선례가 있었다. 2009년에는 경기 부천에서 남자 중학생이 타미플루를 복용한 뒤 환청증세를 호소하며 6층에서 투신해 전신에 골절상을 입기도 했다.

올해 초 미국 인디애나주에서는 16세 소년이 독감으로 타미플루 복용을 시작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유족에 따르면 소년은 평소 정신건강에 문제가 없었다.

특히 일본에서 이런 사고가 많았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항바이러스제 복용자의 이상행동 발현 사례는 모두 54건이었다. 이 가운데 38건은 타미플루와 관련 있었다. 흡입하는 형태의 독감 치료제 ‘리렌자로타디스크’(제약사: GSK)와 ‘이나비르(Inavir, 다이이찌산쿄)’를 투약한 10대가 건물에서 추락사한 사례도 2건 보고됐다.

◆연구팀 “타미플루와 이상행동, 연관성 없다”

타미플루의 안전성 문제가 끊임없이 대두되자 이에 대한 실제 검증이 이뤄졌다.

시카고 일리노이의대 제임스 안툰 교수(소아과)팀은 지난 4년간(2009~2013년) 미국에서 독감 유행시기에 자살 관련 행동을 한 18세 이하 청소년 2만1047명의 의료기록을 들여다봤다. 이들 가운데 독감으로 타미플루를 복용한 청소년은 251명이었다. 연구팀은 이들 타미플루 복용군과 복용하지 않은 독감환자 그룹(162명)을 대상으로 ‘환자-교차연구(A case-crossover analysis)’를 진행했다.

그 결과, 타미플루 복용과 자살의 교차비(OR)는 0.64였고, 독감과 자살의 교차비는 0.63이었다. 교차비란 환자-대조군 연구에서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일반적으로 교차비가 1보다 크면 두 가지 사건의 연관성이 크다고 해석된다.

이런 결과에 따라 연구팀은 타미플루가 청소년에게 자살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연구는 미국 국립보건원연구원(NIH)의 지원으로 실시됐다.

일본 후생노동성도 자체 연구를 통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에 따라 올해 8월 일본에서 10~19세 청소년에 대한 타미플루 처방금지 조치는 해제됐다. 

◆국내서 유행하는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섬망 등 의식장애 유발

독감 바이러스는 유전자의 구조나 단백질의 종류에 따라 크게 A형, B형, C형 3가지로 나뉜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 초·중·고교생 사이에서 유행중인 독감은 A형 바이러스다. B형 바이러스는 올해 50주(12월 9일~12월 15일)까지 단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다.

A형 바이러스(H1N1)는 1918년 ‘스페인 독감’과 2009년 ‘신종플루(Swine flu)’ 유행을 일으킨 원인이다. 같은 유전자형의 독감은 현재 국내에서도 유행하고 있다.

스페인 독감 유행 당시 미국 정신과의사 칼 메닝거는 환자에게서 이상행동 증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최초로 보고했다. 그는 “80명 환자 가운데 16명은 섬망(환각·초조함·과다행동 등 의식장애)을 겪었고, 25명은 조현병, 그리고 23명은 다른 정신이상 증상을 보였다”고 밝혔다.

흔히 독감이라고 하면 콧물·기침 등 호흡기 감염증상만을 단편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해당 바이러스는 전신을 침범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에 따르면 독감은 혈관합병증을 초래하고,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혹은 천식 환자에게는 기존 질환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특히 바이러스 자체가 뇌를 침범하는 형태도 있다. 이런 경우 환자는 뇌수막염에 감염된 것처럼 의식이 떨어지고 여러 신경학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독감 자체가 발작과 여러 뇌염 형태의 신경학적 감염을 동반할 수 있는 것이다.

◆”추락사의 원인 불명확···타미플루 부작용에 대한 공포 조성 말아야”

국내 전문가는 이번 사건이 타미플루 복용에 대한 우려로 번져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이 전적으로 타미플루의 부작용에 의해 발생했다는 근거는 빈약하기 때문이다. 해외 연구에서는 타미플루와 이상행동 발현과의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았다. 현재 국내에서 유행하는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H1N1)가 섬망(환각·초조함·과다행동 등 의식장애)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가천대 길병원 엄중식 교수(감염내과)는 “환자가 타미플루를 복용한 이후에 발생한 상황이기에 이상반응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확정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며 “직접적인 연관성을 따지기는 힘들다”고 풀이했다.

특히 증상 조절을 위해 다른 약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항히스타민제도 신경학적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타미플루 외 다른 약과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엄 교수의 견해다.

엄 교수는 “이처럼 인과관계가 불명확한 사건으로 해당 약의 부작용만 부각돼서는 안 된다”며 “치료에 타미플루가 필수적인 환자가 약을 복용하지 않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면역저하자와 고령 환자의 경우 타미플루를 통한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폐렴이 생기는 등 임상경과가 악화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그는 “타미플루는 독감 치료에 필수적인 만큼 의사·약사가 복약지도(의약품의 명칭·용법·용량·효능·저장 방법·부작용에 대한 정보제공)를 철저해야 한다”며 “의사뿐만 아니라 약사도 처방 시 복약지도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보호자는 환자의 이상행동 발생 여부를 꾸준히 관찰해야 한다”며 “만약 충분히 호전되지 않거나 이상행동 발현 시 담당의사와 상담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강남성심병원 이재갑 교수(감염내과)는 “현재까지 타미플루 복용으로 이상행동이 나타났던 연령대는 10~16세가 많으며, 초기 이틀 사이에 증상이 가장 심했다”며 “보호자는 이틀동안 아이 곁을 떠나지 말고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해야한다”고 당부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