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9.01.01 10:04

안보전략연구원, 김정은 신년사 분석... '완전한 비핵화' 첫 언급
문재인 "국민 삶에 도움되도록 돌이킬수 없는 평화로 만들겠다"

(사진=TV조선 칼무리)
(사진=TV조선뉴스 캡쳐)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사진)은 1일 오전 9시부터 30분간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송된 신년사에서  "조선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완전한 비핵화로 나가려는 것은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불변한 입장이며 나의 확고한 의지"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라는 단어를 육성으로 언급한 것은 집권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과  2차 정상회담 직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핵무기와 핵위협 없는 평화의 터전'을 언급하는데 그쳤다. 비핵화 의지를 미국과 국제사회에 보다 강도를 높여 재확인한 것이다.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것, 이는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한다"며 미국을 상대로 으름장을 놓았던 지난해 신년사와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그는 신년사에서 △새로운 미·북 관계 수립 △항구적이고 공고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백히 밝혔다. 그는 "나는 앞으로도 언제든 또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반드시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2차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희망을 분명히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사상 첫 미·북정상회담 등에서도 자신의 입으로는 '비핵화'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새해 벽두에 북한 주민 2500만여 명이 시청하고 학습해야할 신년사에서 이같이 강조한 것은 미·북 관계 개선을 통한 북한체제 안전 보장이 대미협상의 최종 목표임을 공표한 것으로 풀이된다. 달리말해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나왔던 비핵화 내용을 뛰어넘는 수준에서 비핵화를 언급한만큼 북한도 새로운 대의명분이 없는 한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되돌아 가기는 힘들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른바 비핵화의 '비가역성'이 커진 셈이다.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은 요구조건이 끝내 수용되지않으면 언제든지 국면전환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미국이 세계 앞에서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무엇(비핵화 우선 원칙)을 강요하려 들고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우리로서도 부득불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동창리 등 일부 시설에 대한 폐기에 나서고 있는 만큼 미국도 정전협정 체결, 제재 완화 등 실질적인 상응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미국이 비핵화 리스트 제출만 요구하며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른 조치를 내놓지 않을 경우 비핵화 협상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공식화 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핵화와 관련, 김 위원장은 "우리는 이미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해 내외에 선포하고 여러 가지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 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의 주동적이며 선제적인 노력에 미국이 신뢰성 있는 조치를 취하며 상응하는 실천 행동으로 화답에 나선다면 두 나라 관계는 보다 더 확실하고 획기적인 조치들을 취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훌륭하고도 빠른 속도로 전진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대화 상대방이 서로의 고질적인 주장에서 대범하게 벗어나 호상(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원칙에서 공정한 제안을 내놓고 올바른 협상 자세와 문제 해결 의지를 가지고 임한다면 반드시 서로에게 유익한 정착점에 가 닿게 될 것"이라는 언급했다. 

이와 관련,김 위원장이 과거 인도나 파키스탄 처럼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행동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문정인 대통령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이날 jt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입장에서 보면 미래 핵도 중요하지만 지금 북한이 갖고 있는 핵 시설 물질 무기에 대한 검증가능한 폐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 계속 눈쟁의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지난해 남과 북이 획기적으로 관계를 개선하며 이룬 성과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하면서 남한에 당장 바라는 사항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과 미국의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중단을 요구하면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에 대한 대가와 조건 없는 재개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는 "북과 남이 지혜를 모아 불신과 대결의 최북단에 놓여 있던 북남 관계를 신뢰와 화해의 관계로 확고히 돌려세우고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경이적인 성과들이 짧은 기간에 이룩된 데 대하여 나는 대단히 만족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이) 평화 번영의 길로 나가기로 확약한 이상 정세 긴장의 근원인 외세와의 합동군사연습을 더 이상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며 "외부로부터의 전략자산을 비롯한 전쟁장비 반입도 완전히 중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채택된) 군사 분야 합의서는 무력에 의한 동족상쟁을 종식시킬 것을 확약한 사실상의 불가침선언"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불가침선언'이 채택된이후 남북이 비무장지대내  GP를 시범적으로 상호 파괴하는 등 군사적 긴장 완화 합의를 이행하고 있는만큼  북측에 대응훈련 부담을 초래하는 한미연합훈련과 미군 전략자산 전개를 멈춰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북한 지역은 물론 미군 핵무기 등 전략자산 제거가 보장되는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라는 점이 새삼 확인된다. 

이어 김 위원장은 "우리는 개성공업지구에 진출하였던 남측 기업인들의 어려운 사정과 민족의 명산을 찾아보고 싶어 하는 남녘 동포들의 소망을 헤아려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전격 제안했다. 이어 "북남 사이의 협력과 교류를 전면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공고히 하고 온 겨레가 북남 관계 개선의 덕을 실제로 볼 수 있게 하여야 한다"며 "북과 남이 굳게 손잡고 겨레의 단합된 힘에 의한다면 외부의 온갖 제재와 압박도 그 어떤 도전과 시련을 민족 번영의 활로를 열어나가려는 우리의 앞 길을 가로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근로자 월급에서 떼어가는 수입이나 금강산관광 허용에 따른 현금을 포기하면서까지 남북경협의 불씨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에 명시된 것처럼 한국과 미국이 우선적으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성의'를 하루 빨리 보여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선 개성공단이라도 대북제재 예외로 인정받아 재가동에 들어간뒤 미북 협상 진전에 따라 남북경협을 단계적으로 확대시키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기도 하다.  

문정인 외교안보특보는 이날 연합뉴스TV와의 인터뷰에서 "그 대목에서 상당히 놀랐다. 단순히 조건이 없을 뿐 아니라 대가없이 재개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성공단의 경우는) 북한 노동자에게 임금을 안 줘도 좋다는 이야기일 것이고, 토지사용료를 포함해 사용료도 그렇다"며 "금강산 무료관광도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 특보는 "북한에서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재개하자고 하는데, 우리가 현금뭉치를 바로 북한에 줘야해서 대북제재 결의안 위반이라 어렵다고 하니 무료로 와보라는 것"이라며 "그런 것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연구와 검토를 하고 북한의 의견도 물어보고, 대북제재위원회와 협의도 해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평화체제 전환을 위한 다자협상도 제안했다. 그는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밑(하)에 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도 적극 추진해 항구적인 평화보장 토대를 실질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초적 신뢰를 쌓자는 차원에서 미국에 요구했던 '종전선언' 논의와 더불어 남북한과 미국은 물론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이 모두 참여해 보다 확실한 체제 안전 보장의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국가정보원 산하 씽크탱크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이날 배포한 ‘2019년 김정은 신년사 특징 분석’ 자료에서 "중국을 평화체제 협상의 당사자로 인정하고 향후 '2+2 협상 구도' 추진을 시사한 것"이라며 "남북이 주도해 미중을 평화체제 협상으로 견인하자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고 분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부총장은 "김 위원장 신년사의 키워드는 평화와 경제로 압축할 수 있다"며  "북측이 6·12 북·미 싱가포르 합의 이행과 관련해 미국의 선행 조치가 더딘 점에 불만을 표시한 점은 일종의 압박 메시지이지만 '새로운 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불만 표출)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도 해석된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짙은 남색 바탕에 줄무늬 양복, 푸른색 넥타이를 맨 차림으로 집무실의 가죽 소파에 앉아 1만3,000자 분량의 신년사를 낭독했다. 단상 기립이 아닌 집무실에 앉아서 발표하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이날 청와대는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올해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는 남북관계의 발전과 북·미 관계의 진전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본다"며 "김 위원장의 확고한 의지는 새해에 한반도 문제가 순조롭게 풀리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새해 신년사에서 "국민들이 쌓아놓은 평화의 길을 아주 벅찬 마음으로 걸었습니다. 평화가 한분 한분의 삶에 도움이 되도록 돌이킬수 없는 평화로 만들겠습니다"며 남북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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