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9.01.08 08:00

10.9% 올라도 표준생계비보다 50만원 부족한 최저임금
영세업체 경영난은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경제구조 변화시급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최저임금 문제를 놓고 노사 갈등이 최고조에 다다르고 있다. 경영계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위기에 내몰렸다며 노동계와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어서다. 정부는 이를 의식한 듯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개편하기로 했다. 최저임금위원회에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를 두고 결정구조를 이원화하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전문가들이 미리 구간을 설정하는 것은 노사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맞서고 있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인 노동계 의견보다 기업들의 입장을 더 반영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처럼 노사 간의 줄다리기가 계속되면서 최저임금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경영계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탓에 성장동력을 잃었다며 ‘인건비’를 경기침체의 주범으로 꼽고 있다.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 때문에 성장이 발목 잡혀 일자리 창출은 고사하고 실업률 증가와 내수침체만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에 반문하고 싶다. 최저임금이 업종별·지역별 차등 적용되거나 최저임금 인상 폭이 낮아지면 경제가 살아날 수 있을까. 

현재 한국 사회는 고임금과 저임금 노동자가 서로 편이 엇갈려 노동자 간의 대결구도로 치닫는 형국이다. 특히 대기업 노조 조합원들은 특근 등 장시간 근무에 따른 추가수당 비중이 높은데도 저임금 노동자들로부터 ‘귀족노조’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경제를 병들게 만들고 있는 원-하청 간 불공정거래 등 대기업의 ‘갑질’과 과당경쟁, 비싼 임대료와 카드수수료 등은 ‘인건비’에 가려져 있다. 영세업체들이 힘들어지는 이유는 ‘기울어진 운동장’인데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 없이 최저임금만 들먹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경영계가 주장하는 최저임금의 업종별·지역별 차등적용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의 기본정신은 노동자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차등 적용된다면 노동자 간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양극화만 심화시킬 뿐이다. 

지역별 물가 수준을 고려한다면 좁디좁은 서울 안에서도 강북과 강남을 나눠 최저임금을 다르게 매길텐가. 미국은 주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매기고 있지만 주마다 자치권이 갖고 지역별 물가 차이가 크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사정이 다르다. 이웃나라인 일본도 지자체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매기고 있지만 지방 공동화와 수도권 과밀화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특히 올해 최저임금은 아무리 올랐다고 해도 고작 월 174만5150원 수준이다. 한국노총이 발표한 표준생계비(단신가구 기준)인 225만7211원보다 50여만원이나 적다. 10.9% 오른 최저임금을 받더라도 여전히 ‘인간다운 삶’을 살기엔 버겁다는 이야기다. 160만원도 안 되는 월급으로 생활하던 저임금 노동자가 불과 17만원 정도 더 받게 된 것이 ‘경제 침체의 주범’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 기업들은 ‘인건비’로 징징거릴게 아니라 구호처럼 외치는 ‘혁신’을 실행할 때다. 동일 업종 안에서 같은 사업을 하는 기업끼리도 영업이익은 천지차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경영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한번만 삐끗해도 영영 뒤처지기 십상이다. 한 때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던 노키아·샤프·소니·코닥 등이 현재에 안주하다가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 되새겨야 한다.      

정부도 최저임금에 대한 소모적인 논란을 봉합하고 건전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최저임금을 아무리 낮게 책정하더라도 불공정한 시장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회복되기 어렵다. 특히 최저임금 결정구조 역시 진영논리와 정치적 논란에서 벗어나 노사 모두의 입장을 균형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정부와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최저임금이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해 실효성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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