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지훈 기자
  • 입력 2019.01.08 18:54

"높은 대출금리…지점장 영업력으로 성과 채우는 실정"
"페이밴드 전면 도입되면 고객들도 금리 손해볼 수밖에 없어"
"경력인정 차별받았는데…'고액연봉자'란 언론플레이에 배신감"

국민은행 노조는 8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임금피크제 1년 연장, 페이밴드 제도 폐지 등을 주장하며 총파업에 나섰다. (사진=박지훈 기자)
국민은행 노조는 8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임금피크제 1년 연장, 페이밴드 제도 폐지 등을 주장하며 총파업에 나섰다. (사진=박지훈 기자)

[뉴스웍스=박지훈 기자] 8일 KB국민은행 임직원의 10명 중 4명 가량이 19년만에 열린 총파업에 참가했다. 무기계약직 직원과 신입행원부터 지점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급에서 이날 경영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은행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진행된 총파업에 참여한 임직원 수는 8000여 명이었다. 임직원 1만8000여 명의 약 45%가 참여한 셈이다.

◆“금리 경쟁력 없이 대출 영업 압박”...지점장들도 뿔나

통상 은행 지점장은 경영진과 행원들 사이에 위치한 특성상 ‘친(親)사용자’ 편으로 인식돼 왔다. 직장인으로서 성공한 자리에 앉아 후배들의 부러움을 받는 지위이기도 하다. 대다수 지점장들마저 파업 국면을 계기로 경영진을 성토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A 지점장은 “그동안 은행권에서 노조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L0직급과 신입행원부터 그 위 지점장에 이르기까지 윤종규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에 대한 불만이 쌓인 끝에 이번 파업이 단행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직원들의 파업 배경이 윤 회장의 ‘단기 성과주의’에 있다고 지목했다. A 지점장은 “윤종규 회장이 취임 후 높은 예대마진을 달성하면서 리딩뱅크 지위를 되찾아 온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국민은행은 금리 경쟁력보다 지점장들의 영업력에 의지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지점장 역량과 함께 은행의 금리 경쟁력 또한 갖춰져야 하는데, 국민은행의 대출 금리는 3.9~4% 초반대로 다른 은행보다 높은 편"이라며 "타행과의 경쟁이 어려워 지점장들이 고객에게 거의 손바닥을 빌 듯이 영업해 성과를 채우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지점장이나 팀장이 인사이동을 하면 인맥 때문에 비싼 금리를 부담하던 고객은 금방 타행으로 대환해갈 것이고, 또 다음 지점장을 쥐어짜는 시스템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업 압박뿐 아니라 경영진의 인사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B 지점장은 “윤 회장은 2004년 국민은행 부행장에서 물러난 것이 노조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 때문에 노조 상임 딱지가 붙은 인사들이 타행과는 달리 부행장이나 상무 등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있으며, 경영진은 측근 인사를 중심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종규 회장은 2004년 9월 국민은행이 국민카드를 흡수합병할 때 법인세를 회피할 목적으로 대손충담금 1조2664억원을 쌓지 않고 부정회계로 결산했다는 혐의로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3개월 감봉 중징계를 받은 바 있다. 이후 윤 회장은 한 달 뒤 부행장직에서 물러났다.

◆"페이밴드(직급별 호봉 상한제) 전면 도입 시 고객들도 금리 손해"

이번 파업에는 신입행원들도 상당수 참가했다. 자신들에게만 적용된 페이밴드 제도를 전면 폐지하는 데 힘을 모으기 위해서다. 페이밴드는 성과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연봉을 지급하는 제도로, 진급에 필요한 근속연수를 채우더라도 성과부진으로 승진을 하지 못하면 임금 인상을 제한한다. 이 제도는 윤종규 회장이 은행장을 겸임하던 당시 직원의 생산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도입을 추진했으나 노조의 반대로 신입행원에 우선 적용됐다.

2017년 입사한뒤 이번 파업에 참가한 한 행원은 “입행에 목말랐던 신입들은 호봉제가 적용되는 선배들과 달리 페이밴드를 적용받는 것에 대해 불만을 낼 수 없었다”며 “이번에 경영진이 페이밴드를 전 직원을 대상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힘에 따라 신입과 선배들이 폐지에 힘을 합치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신입행원은 “승진의 근거가 되는 성과는 고객에게 자금을 빌려줄 때 얼마나 더 높은 금리를 받는지, 은행 수신 과정에선 고객에 얼마나 더 적은 금리를 제공하냐에 따라 달린 것”이라며 “은행권 직원들이 높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파업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페이밴드 적용 확대를 반대하는 이번 파업은 고객의 주머니 사정과도 무관하지 않다”며 부정적인 인식의 환기를 요청했다.

◆경력 인정 차별 받던 LO(무기계약직) 직급도 파업 참여

L0직급의 직원들도 경력 인정 차별 등으로 불만이 치솟은 상태다. L0직원은 창구에서 입출금 업무를 주로 처리하던 직원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신설된 직급으로 대부분이 여성이다.

국민은행은 문재인 정부 들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침에 발맞춰 비정규직을 L0직군에 포함했지만, 이들이 비정규직 상태에서 1년 근무했다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3개월만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파업에 참여한 L0직급 직원은 “은행권 직원이라고 하면 고액연봉자로 인식되지만, 근속 연수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저임금을 받는 여성 행원들이 다수”라며 “오랜 기간 은행에 충성하며 근무했지만 ‘귀족노조’, ‘고액연봉자’라는 언론플레이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편, 허인 국민은행장은 지난 7일 총파업을 하루 앞두고 담화문을 발표하며 페이밴드에 대해 노조와 시간을 두고 의논하고 L0직원들에 대한 대우 개선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논의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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