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2.03 18:08
이호영 철학박사(런던대)
‘러브호텔’ 이름만 들어도 끈적끈적한 퇴폐와 불륜의 내음이 물씬 풍긴다. 최근에 인기를 누리고 있는 유명한 심리학자는 여가를 즐기지 못하는 한국사회에 “남는 것은 상업주의적인 쾌락뿐”이라고 질타한다. 그는 바로 “변두리에 가득 찬 경마오락실, 러브호텔”이 상업주의적 쾌락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오랫동안 해외에서 ‘문화심리학’을 공부한 책임 있는 ‘지성인’이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경마’나 ‘러브호텔’이 한국에서 갖는 의미는 절대 상업주의적 쾌락으로만 폄하할 수 없다. 결국 심리학자가 한 일은 책이나 언론에 대고 쓸 데 없는 ‘나팔’을 불어대 잘 놀던 사람들에게 경찰의 특별 단속 날벼락을 맞게 만든 짜증나고 몰지각한 행각이었다.

대학가에 있는 러브호텔은 생각하는 것같이 불륜의 장소만은 아니다. 갈 데 없는 불타는 연인들이 건강하고 생산적인 용도로 사용함은 물론이고, 시험 때는 기말고사 준비 방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생일 때는 파티장으로 변하는 다목적 시설이다. 심지어 지방의 러브호텔은 군대의 막사나 기밀을 요하는 시험출제를 위한 시설로 탈바꿈하는 가히 국가 ‘기간시설’이다.

간혹 외국 영화를 볼 때 좋은 ‘러브호텔’ 놔두고 ‘자기 집’에서 불륜을 저지르다 남편이 들이닥쳐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장면을 보고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외국에 나가보니 참담하게도 그들은 그 좋은 국가 기간시설인 러브호텔을 만들지 않았다. 참으로 도입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어 쓴 위스키 한잔을 털어넣으며 외국 친구들에게 답답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외국 친구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영 시원치 않았다. 자기네들은 그냥 애인과 ‘집’에 가서 ‘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헉! 집이라니! 지금껏 나를 지탱하던 ‘인륜(人倫)’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허허! 이런 천하에 무도한 놈들! 정식으로 혼인도 하지 않은 것들이 어찌 부모님께서 시퍼렇게 두 눈을 뜨고 계시는 집에서 정사를 벌이며 운우지락(雲雨之樂)을 나눈다는 말인가! 비교적 나이든 녀석들조차 결혼은 생각 없고 ‘마누라’가 아닌 ‘여친’만 노래하는 놈들이다. 아무리 인륜(人倫)의 대사(大事)인 성스런 가정과 혼인을 완고하게 외치며 광분해 봐야 쇠귀에 경 읽기였다. 그날 동방예의지국의 후예는 ‘절망’을 맛봐야했다.

그들과 달리 우리네 가정은 부적절한 유교적인 가족애와 군기만 차고 넘쳐난다. 부적절한 유교 때문에 집에서 연인과 사랑을 나눌 수 없으니 러브호텔만이 유교적 가족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방구이고 사랑과 욕망이 이루어지는 개인적인 공간이다. 러브호텔이 제공하는 개인적 공간은 사랑을 나누는 연인에게도, 집단 자살하려고 모인 사람들에게도 절박한 것이다. 결코 단순히 퇴폐나 상업주의적인 쾌락으로 매도할 수는 없는 ‘절실함’ 자체다.

러브호텔 이야기가 나오니 예전의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어느 날 깜깜한 공원 뒤편에서 여친과 열렬하게 키스를 하고 있었다. 키스도중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밖을 보니, 경찰이 빤히 차 안을 들여다보며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경고를 하는 게 아닌가. 확 짜증이 밀려왔다. 그 날 이후로 우리는 러브호텔만 이용했다는 전설이 있다.

반대상황은 한국의 코엑스KOEX 비슷한 런던의 알렉산더 팔레스(Alexander Palace)라는 전시회장의 주차장에서 겪었다. 우연히 밤중에 그곳을 갔는데, 그 넓은 야외 주차장에 차가 가득하고 카섹스로 흔들리는 모든 차창마다 뿌옇게 김이 서려 있었다. 거대하고 장엄한 행사에 온 몸에 전율이 일면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장엄함을 장식이나 하듯 경찰차가 주차장 주변을 조용히 순회하며 마약 딜러나 폭력배들을 단속하고 있었다. 절대 무례하게 창문이나 두드리는 무식한 짓은 없었다. 유교의 이상인 진실하고 아름다운 국가 본연의 대업(大業)이 장엄하게 펼쳐지는 모습이었다.

동아시아 최고의 유교 경전인 주역(周易)의 계사전(繫辭傳)에도 “사회적 관용(仁)은 드러내고, 공권력은 감추어 사용한다.(顯諸仁,藏諸用)”하였다. 이 정도는 해야 제대로 된 국가사업이고 제대로 된 유교다.(盛德大業至矣哉!)

러브호텔이 없는 영국 사회에서는 눈감아주어야 할 아름다운 불륜이나 순수한 연애 행위는 국가의 공권력이 조용히 지켜주고 있었다. 국가와 국민도 주고받는 관계다. 국가도 뭔가 해줘야 우리도 기쁘게 군대 가고 세금도 낼 마음이 솟아나는 것이다. 거꾸로 말해, 국민도 받은 것만큼만 해야 국가도 정신 차릴 것이다.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맘 둘 곳 없는 싱글,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그리움만 쌓아놓은 서러운 돌아온 싱글, 그리고 갈 데 없는 기러기들에게 경마, 러브호텔, 당구장은 한국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건전하며 건강한 ‘삶’이다. 이를 상업주의적인 쾌락이라 비난하기 이전에 우리 사회의 비인간적인 문제점을 비판해야 옳다.

상업주의적 쾌락 비판자에게 부탁한다. 제발 결혼하지 않았어도 당당하게 여자 친구와 집에서 운우지락을 나눌 수 있게 우리들의 아버지나 여친 부모 좀 설득시켜주시라. 스트레스에 파김치처럼 절어 경마장에 가지 않아도 삶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게 직장 환경과 작업구조를 바꾸도록 제언하시라. 마지막으로 경찰에게는 무례한 짓 좀 그만하라고 충고해주고, 국회의원들은 각 지역마다 카섹스를 위한 대단위 주차장 확보 및 그의 안전과 보안을 위한 ‘카섹스 특별법’을 시급하게 입안하고 통과시켜주었으면 좋겠다.

이 모든 것을 다 해준다면 러브호텔과 경마라는 ‘상업적 쾌락주의’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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