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문병도 기자
  • 입력 2019.01.21 19:00

박제근 IBS 부연구단장, 정현식 서강대 교수, 박철환 서울대 교수 공동 연구팀


삼황화린니켈은 전이금속인 니켈(Ni) 원자와 인(P)과 주기율표 상 산소와 같은 족에 속하는 황(S) 세 개를 결합된 2차원 물질이다. 155K(절대온도) 이하에서 반강자성 정렬이 나타나고 단일층으로 만들면 자성 원자층 물질이 되는 신기한 물질이다. <그림제공=기초과학연구원>

[뉴스웍스=문병도 기자] 물리학에서 차원은 물질의 성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두께나 높이의 개념이 사라진 2차원 세상에서 일부 물질은 낮은 온도에서 양자역학의 지배를 받는 ‘기묘한 물질’로 탈바꿈한다. 기묘한 물질은 고체, 액체, 기체 등 우리가 기존 알고 있던 상과는 매우 다른 새로운 상태를 말한다.

박제근 기초과학연구원(IBS) 강상관계 물질 연구단  부연구단장(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팀은 정현식 서강대 교수, 박철환 서울대 교수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그동안 이론으로만 예측돼 온 기묘한 물질의 특징을 세계 최초로 실험으로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주변 쇠붙이를 끌어당기는 자석을 가열해 온도를 매우 높이면 자성을 잃고 보통의 쇠붙이처럼 변한다.

이런 ‘자성 상전이’현상을 입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세 가지 모델을 만들었다.

그 중 XY모델은 가장 독특한 특성을 가져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XY모델은 원자의 스핀이 2차원 평면 위에서 시계 바늘처럼 360도의 방향성을 가진다는 모델이다.

2016년 노벨 물리학상은 XY모델을 따르는 2차원 물질의 자성 상전이 현상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세 명의 과학자에게 수여됐다.

1970년대 처음 제시된 이 이론을 실험적으로 구현한 사례는 드물다. 단원자 두께의 얇은 자성 물질을 구현하는 것이 힘들고, 이런 얇은 물질이 가지는 미세한 자성을 측정할 수 있는 실험장치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XY 모델의 독특한 자성 상전이 현상을 실험으로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삼황화린니켈(NiPS3)을 이용해 단일층 자성물질을 제작했다.

삼황화린니켈은 층상구조를 가진 물질로 점착테이프를 반복해 붙였다 떼어내며 원자 한 층 두께의 시료를 만들 수 있다. 삼황화린니켈은 인접한 스핀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정렬돼 특정 온도 이하에서만 자성을 띠는 반강자성체다.

수 마이크로미터 두께를 가진 얇은 시료의 자성을 관찰하기 위해 연구팀은 라만 분광법을 활용했다. 이를 활용해 원자층의 개수에 따른 자성 변화를 관찰한 결과, 수 원자층 두께의 시료에서 관찰되던 자기 상전이가 단일 원자층 시료에서는 나타나지 않음을 확인했다.

덩어리 형태의 삼황화린니켈은 155K(-118.15℃) 이상의 온도에선 반강자성 정렬이 풀리는 자성 상전이 현상이 나타났다.

단 2개 층으로 이뤄진 시료 역시 유사했다.

단일층 시료는 실험에서 측정한 가장 낮은 온도인 25K(-248.15℃)에서도 자성 상전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2016년 노벨물리학상의 주요 내용인 XY모델을 따르는 물질을 2차원 소재로 제작했을 때, 자성상전이를 가질 수 없다는 KT이론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셈이다.

공동연구팀은 2016년 아이징 모델의 자성 상전이 현상을 실험으로 증명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연구에서 XY모델까지 증명해낸 만큼, 향후 하이젠베르크 모델의 검증까지 완료하면 2차원 자성 물질이 갖는 다양한 물리 현상에 대한 모든 비밀을 국내 연구진의 손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박 부연구단장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달을 관측하는 도구를 개발해 지동설이란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낸 것처럼, 이론을 실험으로 증명하는 과정에서는 인간이 예측하지 못했던 중요한 발견이 이뤄진다”며 “이번 연구는 2차원 원자층 물질의 자성현상에 대한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한 것으로 향후 자성 반도체, 스핀전자소자 등의 개발에도 응용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21일에 온라인 게재됐다.

박제근(왼쪽부터) 부연구단장, 정현식 교수, 박철환 교수 <사진제공=I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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