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지훈 기자
  • 입력 2019.01.28 05:20

[뉴스웍스=박지훈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대기업의 중대한 탈법·위법 행위에 대해 국민연금을 통한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의지를 밝히자 때 아닌 ‘색깔론’ 공세가 등장했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가지고 기업을 길들이려는 ‘연금사회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는 야당 대표의 지적이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도록 해 국민의 재산을 늘려주겠다고 정부는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이를 핑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기업의 경영을 간섭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야당과 보수 언론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진보정권의 반시장주의적 첨병으로 격하하고 있지만, 우리보다 제도를 먼저 도입한 금융선진국에선 효과를 보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먼저,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는 그동안 단순히 주식을 보유했던 기관투자가가 투자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일종의 지침이다. 집사(Steward, 기관투자가)가 주인(주주)에게 집안일을 부탁받았으니 최선을 다해 주인의 자산을 운용할 수 있도록 할 일을 지정해 놓은 것이다. 이사회에서 찬성이나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동시에 그 결과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등을 한다.

가까운 일본 사례부터 살펴보자. 일본 아베 내각은 보수적인 지배구조로 인한 자국 기업가치의 저평가와 해외자금 유입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지난 2014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제도 도입 후 상장기업 중 자기자본이익률(ROE) 10% 이상 기업이 전체의 1/3로 도입 전 1/4 수준보다 늘었고, 복수의 독립사외이사를 선임한 상장기업도 크게 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적인 연기금 일본 GPIF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채택하면서 기관투자가에 책임투자 바람을 불어 일으킨 결과다. 이 같은 선순환으로 아베 내각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OECD 제26차 기업지배구조위원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미국의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 공무원퇴직연금 캘퍼스(CalPERS)도 굵직한 성과를 보였다. 미국은 2018년부터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지만, 캘퍼스는 그보다 앞선 1980년대 중반 이미 기업지배구조 등에 대한 의결권 행사와 주주관여를 활발하게 해왔다.

2004년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었던 월트디즈니의 마이클 아이너스 회장을 몰아내며 주식가치를 안정시켰고, 씨티그룹과 코카콜라 경영진 교체를 시도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애플에 주주과반수가 찬성해야 이사 선임이 가능하도록 하는 다수결의제 도입을 요구해 관철시키기도 했다. 캘퍼스의 주주권 행사로 해당 주식들이 상승랠리를 탔음은 물론이다.

국내외 투자전문가들 역시 우리나라 연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실행된다면 보수적인 지배구조에 따른 오너리스크를 줄이고 배당성향을 확대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즉, 한국 증시 가치가 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의결권 자문기관 ISS도 한국기업 주삭의 저평가 원인을 보수적인 기업지배구조에 있다고 평가한다. 물론 국민연금이 청와대나 여당 등의 압력에 밀려 스튜어드십 코드를 '정치적으로' 집행한다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미 선진 금융시장에서 검증된 제도를 애써 색깔론이나 기업 압박용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국제 흐름에 역행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오히려 당초 도입취지처럼 스튜어드십 코드가 잘 작동된다면 그동안 기업 오너와 경영진의 거수기 노릇에 그쳤다는 오명을 받았던 국민연금이 책임투자자로 나서면서 보다 자본친화적인 모습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존재의의와 효과를 부정하는 목소리에 묻히기 보다는 우리나라 경제 구조와 상황에 맞게 어떻게 세부적으로 적용할 지를 놓고 진지하게 논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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