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2.05 10:20
삶은 희비의 이중주다. 기쁨이 깃들면 슬픔도 찾아든다. 다사다난한 인생의 여정에서 기쁨을 구하려는 사람의 마음은 늘 간절하다. 복(福)은 사람의 염원이 모이는 글자다.

경상도 사투리에 ‘대끼리’라는 말이 등장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짱~’이다. 아주 좋은 것, 훌륭하기 그지없는 것, 대단하게 좋은 것, 말로 형용키 어려울 정도로 좋은 것…. 그래서 흐뭇한 말이다. 단지 발음에 된소리 ‘끼’가 들어가 속어의 느낌을 풍기므로 맘껏 말하기가 좀 뭐 하지만.

이 말 ‘대끼리’의 정체는 대길(大吉)로 보인다. 우리 설이나 입춘이 다가오면 대문에 걸어두는, 그래서 우리에게 어딘가 눈에 익은 한자 표현 말이다. 바로 ‘입춘대길(立春大吉)’이다. 입춘은 새해를 맞이해서 처음 다가오는 절기(節氣)다.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그 절기의 첫째에 해당하니 곧 새해의 시작과 다름이 없다. 이 입춘이라는 절기가 올 때 사람들은 ‘크게 복을 받으라’는 뜻에서 ‘立春大吉(입춘대길)’ 네 글자를 큼직하게 써서 대문 등에 내다 붙인다.

그 ‘대길(大吉)’이 된소리 섞인 ‘대끼리’로 전화했으리라는 짐작은 충분히 이유가 있다고 보인다. 사실이지 이 세상은 세파(世波)라고도 적고, 나아가 풍파(風波)와도 동의어다. 세상(世)에 몰아닥치는 끊임없는 물결(波), 바람(風)에 이는 물결(波), 그래서 늘 문제가 생기고 아픔이 다가오는 게 세상살이다.

바람이 자고, 그로써 물결이 함께 누우면 좋은 세상이다. 바람이 불어 거세게 일어나는 물, 즉 풍랑(風浪)이 잦아들면 좋다. 급히 솟구치는 물결, 즉 격랑(激浪)이 일지 않으면 저 먼 곳을 향해 움직일 수 있다. 바다길, 물길, 수로(水路)에 빗댄 세상살이의 갖가지 모습이다.

땅으로 난 길 또한 마찬가지다. 위험이 도사린 그악스러운 산길, 우리는 이를 험준(險峻)이라고 부르고 적는다. 살아가면서 돌아가기에는 너무 높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퍽 위험한 산이 있다. 우리는 그를 태산준령(泰山峻嶺)이라고 한다. 실제 중국에서 따온 태산(泰山)은 높지는 않지만, 평야에 우뚝 서서 크고 우람한 산이라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어쨌든 인생이 향하는 길에 그런 크고 우람한 산, 그리고 높고 험한 준령(峻嶺)이 버티고 서 있으면 골치 아플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넓게 길게 뻗어 있는 탄탄대로(坦坦大路)가 좋지 않은가. 그 길에 부는 바람, 내리는 비까지 적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우리는 그런 행운을 마음속으로 빈다. 그 바람이 모아지는 글자가 ‘吉(길)’이다. 그 반대는 ‘凶(흉)’이다. 좋은 게 있으면 나쁜 것도 있다. 인생의 섭리가 그렇고, 자연의 이치도 그렇단다. 그래서 길흉(吉凶)은 짝을 이룬다. 마치 빛이 있으면 그늘이 따르는 법과 같다. 내친김에 덧붙이는 글자가 화복(禍福)이다. 안 좋은 게 화(禍), 많을수록 좋은 게 복(福)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두 쌍의 단어조합을 함께 갖다 붙였다. 바로 길흉화복(吉凶禍福)이다. 그들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내 곁에 다가올지는 좀체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吉凶禍福(길흉화복)에 관해서는 점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언제 吉(길)이 찾아올지, 다가서는 길에 凶(흉)은 없는지, 禍(화)는 어떻게 미칠지, 福(복)은 당장에라도 오지 않는지…. 그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다.

‘신길(新吉)’이라는 이름, 그래서 만들었던가 보다. 세상살이가 험한 길, 험로(險路)의 연속이다 보니 지명에 ‘새로운 행복의 터’라는 뜻의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원래는 ‘신기리(新基里)’라고 했던 모양이다. 새 신(新), 터 기(基)라는 의미였으니, 요즘 폭정을 피해 북한에서 탈출한 동포들에게 쓰는 말 ‘새터’에 해당하는 한자어였을 테다.

우리는 결코 평탄치만은 않은 세상살이에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좋고 바람직한 상태, 즉 吉(길)함과 福(복)됨을 바란다. 목이 마른 사람이 단비를 바라듯이 그 행복을 좇고 바란다. 그래서 늘 ‘로또’의 그림자를 밟으려 노력하고, 답답하다 싶으면 길가 천막을 걷어 올리고 점을 쳐주는 사람에게 다가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吉凶禍福(길흉화복)에서 잠시나마 담담해지려는 자세도 잃지 않아야 좋다. 동양의 지혜를 갈파했던 노자(老子)는 이런 말을 했다. “화는 복이 걸쳐 있는 곳, 복은 화가 숨어 있는 곳(禍兮福所倚, 福兮禍所伏).” 화복을 같은 줄에 세운 뒤 그 둘이 서로 의존하는 관계, 나아가 서로 엇갈려 함께 있는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이는 그저 ‘화복(禍福)이 함께 붙어 다닌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노자의 지혜는 화를 복으로, 또는 자칫 잘못 다룰 경우 복이 화로 변할 수 있다는 ‘전환(轉換)’의 의미를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우리는 주변에서 그런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로또의 ‘대박’을 건진 뒤 주체할 수 없는 돈 때문에 가정이 풍비박산으로 치닫고, 제 목숨도 건사하지 못하는 경우 말이다.

그 자세한 속사정은 인천행의 길목에 있는 부평역을 지날 때 자세히 덧붙이기로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스토리에는 老子(노자)의 그런 철학적 시선이 듬뿍 담겨 있다. 부평역을 지날 때 새옹지마에 담긴, 禍福(화복)을 바라보는 속 깊은 사람의 심정을 소개할 작정이다.

그래도 어쨌거나 풍파가 많은 세상살이다. 그런 소용돌이와 같았던 옛 삶의 여정에서 새 터로 옮겨와 가정의 평안과 마을의 번영을 꿈꾸면서 지었을 법한 新吉(신길)이라는 이름의 울림은 여전하다. 헐벗고 굶주린 삶 속에서 그만큼 간절하고 소박한 염원이 어디 있을까. 순우리말도 그렇지만, 당대 많은 이들의 염원이 담긴 한자 지명도 삶의 여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저, 책밭, 2014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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