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운연 기자
  • 입력 2019.02.02 06:00

오프라인, 콘셉트 확실하면 사람 온다
'찾잼' 충족…삐에로쑈핑·동묘가 '꿀잼'

(사진=이마트)
(사진=이마트)

[뉴스웍스=허운연 기자] “기왕 돈을 쓰는 김에 재미라도 있어야 하잖아요.”

서울 홍대 근처에서 만난 20대 남성의 발언이다. 

지갑이 하루하루 얇아지는 청년들은 모으고 모아서 ‘탕진잼’(탕진하는 재미)을 만끽하기도 하고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으면서 ‘꿀잼’(꿀+재미)을 이어가고 있다.

뻔한 시대에 펀(Fun)한 곳을 찾는 것은 당연해졌다. 재미는 언제나 소비를 일으키는 기본 가치다. 이제는 싼 가격에 합리적인 소비라는 믿음이 굳건한 곳, 게다가 즐거움까지 있는 장소로 소비자들이 움직이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난해 11월 전국경제인연합회 CEO 조찬강연에서 올해 우리나라 소비트렌트를 “원자화·세분화하는 소비자들이 기술 등 환경 변화에 적응하면서 정체성과 자기 콘셉트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제시했다. 마케팅도 특별한 콘셉트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재미’를 콘셉트로 잡은 오프라인 공간은 온라인쇼핑이 대세인 지금 시대에도 힘을 내고 있다. 불황을 비켜가는 힘은 결국 ‘재미’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지난해 6월 서울 코엑스에 ‘B급 감성’ 콘셉트로 꾸민 삐에로쑈핑 1호점을 열었다. “우리나라에도 돈키호테가 생겼다”는 소문에 삐에로쑈핑 1호점은 개장 한 달 동안 일평균 1만명의 고객이 방문했다. 오픈 첫 주말에는 입장 줄이 150m까지 이어지면서 입장 제한 시간을 두기도 했다. 현재는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7000명 가량이 매장을 찾고 있다.

삐에로쑈핑은 지난해 12월 의왕점과 가산W몰점, 명동점 등 총 3개 매장을 선보이면서 6호점까지 확장했다. 주거지역에 처음 오픈한 의왕점은 평균 3000명 이상의 고객이 방문하면서 목표를 상회하는 실적을 거두고 있다. 명동점도 하루에 8000명 이상 방문하는 ‘핫 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삐에로쑈핑은 일본의 프랜차이즈 잡화점인 돈키호테를 벤치마킹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돈키호테는 지난 2017년 말 기준으로 370여개 매장에서 8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 거대 잡화점이다. 우리도 일본에 갈 때 ‘돈키호테 쇼핑리스트’를 한 번쯤 검색해 보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일본의 돈키호테가 쇼핑의 성지로 자리매김하면서 삐에로쑈핑도 강남과 동대문, 명동 등 외국인이 주로 찾는 관광지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삐에로쑈핑 명동점이 개장하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반드시 거쳐가는 핫 플레이스로 거듭나고 있다"며 "브랜드 인지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돈키호테의 성장은 저렴한 가격 정책에 기반하고 있으나 압축진열을 통해 매장을 찾는 이들의 재미를 자극한 것도 큰 효과를 발휘했다는 분석이다. 돈키호테는 질서정연하게 물건을 진열하지 않았다. 그냥 어질렀다.

삐에로쑈핑의 물건도 두서없이 놓여져 있다. 성인용품 옆에 세계 맥주가 있고 루이비통 등 명품 옆에는 철수세미가 자리해 있는 식이다. 이에 처음 매장을 찾으면 “이게 뭐야?”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뭐가 어디 있는지 몰라 불편하다”며 다시는 찾지 않을 것처럼 하다가도 '찾잼'(찾는 재미)에 빠져 금세 “또 오자”고 한다.  

이마트가 1호점 개점 당시 열흘간 매장에서 신세계포인트카드를 사용한 고객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대와 30대 비중이 각각 17.3%, 36.8%로 절반 이상(54.1%)을 차지했다. 이는 이마트보다 무려 21.9%포인트 높은 것으로 “쇼핑도 쇼핑이지만 재미있다”는 입소문에 젊은 층이 응답했다.

이처럼 찾잼은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다.

(자료=서울시 라이브서울 영상 캡처)
(자료=서울시 라이브서울 영상 캡처)

한편, 최근에는 ‘할배들의 홍대’로 불렸던 동묘 구제시장이 패피(패션피플)의 찾잼 성지로 각광받고 있다. 동묘는 앞서 방송을 통해 크게 조명 받았다. 지난 2013년 MBC 인기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빅뱅의 GD와 정형돈이 동묘를 방문해 ‘삐딱하게’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하면서 큰 화제가 됐다. 지난해에도 ‘나혼자산다’ 등 주요 인기 예능에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옷 1벌에 2000~3000원 밖에 하지 않는 동묘는 찾잼을 기반으로 하는 득템(得+아이템)의 장소가 됐다. “무작정 싸다고 사면 큰일 난다”며 “단추나 지퍼가 달려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주의사항이 난무하지만 본디 득템에는 꽝이 동반된다. 그래도 그 꽝 조차 확률에 기대지 않은 결과인 만큼 납득할 만하다. 단돈 몇 천원으로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동묘에는 이제 '핵인싸'(핵+인사이더)들이 가득하다. 

재미는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다. 이에 단순한 소비의 개념에서 벗어나 그 과정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펀슈머(Fun+Consumer)가 대세다. 오프라인이 힘을 쓰지 못하는 시대라지만 가성비, 가심비를 넘어 재미가 더해지면 결국 사람이 몰리고 지갑이 열리는 공식은 여전하다. 여느 때와 같이 재미가 있는 곳에는 매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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