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환자는 함께 사는 생활인"…지역사회가 품다
"치매환자는 함께 사는 생활인"…지역사회가 품다
  • 고종관 기자
  • 승인 2019.02.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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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례로 본 치매환자 복지정책…'치매카페'에 농촌체험으로 효과
일본의 한 농원에서 치매환자와 가족이 농촌체험을 하고 있다.
일본의 한 농원에서 치매환자와 가족이 농촌체험을 하고 있다.

[뉴스웍스=고종관 기자] 지난해 11월 하순, 일본 교토부 우치시(京都府宇治市)의 한 농원.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남녀 20여 명이 고카브(순무의 일종)를 수확하고 있다. 이들은 농장주인 이우치 도루(36·井内徹)씨의 안내에 따라 순무를 뽑아 가지런히 정리한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한 노인은 “건강에 좋다고 생각해 4년 전부터 농촌 체험에 참가하고 있다”며 땀을 닦았다.

얼핏 평범한 농촌돕기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구성원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참가자는 치매노인과 가족,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다.

일본경제신문 자매지인 '헬스 업'은 최근 지역사회에서 진행되는 치매복지사업을 차분히 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급증하는 치매환자에 대처하기 위해 지역사회의 자원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수정하고 있다. 치매환자를 ‘케어를 받는 대상’이 아니라, ‘지역에서 함께 사는 생활인’으로 개념을 바꾼 것. 시설에 입원시키는 '환자격리'가 의료비 상승을 불러올 뿐 아니라 환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받아온 것이 그 배경이다.

우치시도 이 같은 정부 방침에 적극 동참한 지자체 중 하나다.

시는 2015년 ‘치매환자에 좋은 마을’을 선언했다. 그리고 상점이나 은행, 농원, 택시회사 등 42개 사업장이 참여해 치매환자의 생활을 지지하는 ‘우치시 치매 얼라이언스’를 설립했다. 이우치 씨도 이 단체에 가입한 사업주 중 한 명이다.

시는 이미 2013년 ‘초기치매 종합상담 지원사업’을 시작해 시내 6곳에 ‘치매 카페’를 마련했고, 지원팀은 이 카페를 중심으로 치매환자의 조기발견 및 조기치료 사업을 시작했다. 초기 치매환자를 지원해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를 통해 증상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것이 사업의 취지다.

카나가와현 카마쿠라시(神奈川県鎌倉市)에선 치매고령자들이 공원청소나 화단 손질도 한다. 또 거동을 못하는 와상 고령자를 대신해 마당의 풀베기나 가지치기도 돕는다.

농원에서는 매년 7월 지역 전통채소인 만원사(万願寺)고추를 수확하는 일에 이들을 참여시킨다. 또 5월에는 다원에서 우치(宇治)차의 찻잎을 따는 일도 돕게 한다. 물론 참가자에게는 임금을 지급해 취업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실제 작업에 참여한 토테루코(87·東照子)씨는 “예전에는 혼자 집에 틀어박혀 외로웠지만 지금은 삶에 의욕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돈 계산을 할 수 없어 등유조차 사지 못했지만 이제는 인지기능이 개선돼 생협에서 생활용품을 주문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일본에선 의료·간호 전문직과 시민이 함께 어울리는 '치매 카페'도 확산되고 있다. 원래 치매 카페는 네덜란드와 영국 등 서구에서 시작해 일본에는 2000년께 등장했다.

후생노동성이 치매환자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취지로 시작한 ‘신오렌지 플랜’ 덕에 2017년까지 전국 5800개로 늘어났다.

인구 약 17만명의 호카이도 토마코마이시(北海道苫小牧市)엔 11개의 ‘치매 카페’가 있고, 이곳을 이용하는 환자는 300여 명에 이른다. 지자체가 보조금을 주며 의료법인이나 사회복지법인에 위탁해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 커뮤니티 센터는 집회실로도 활용될 뿐 아니라 건강강좌를 개최하거나, 자원봉사자가 진행하는 종이연극 등 문화행사도 개최한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2016년 2700개 치매 카페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치매환자가 잘 오지 않는다’ ‘프로그램이나 콘텐츠가 부족하다’ ‘운영할 사람이 부족하다’ ‘운영 자금난에 시달린다’ 등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를 조사한 대학조사팀은 “운영이 지리멸렬해 카페를 닫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관민이 지혜를 모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같은 일본 사례가 치매환자에 대처하는 정책 당국의 모범답안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치매 환자의 삶을 존중하고, 지역사회가 함께 노력한다는 점은 높이 살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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