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19.02.11 14:25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은 과연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진부한 텍스트'일 뿐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사람에 따라 확실히 다른 대우가 이뤄지고 있는 것을 목격하다보면 이상과 현실 간 괴리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주역이 더불어민주당이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1심 재판으로 법정구속된뒤 유죄판결에 따른 징계를 주기는 커녕 1심 판결을 내린 법관에 대해 '적폐 판사' 운운하며 당력을 집중해서 총공세에 나선 반면, "더불어민주당 대전광역시당로부터 지난 6·13 지방선거 과정에서 1억 원의 불법선거자금을 요구받았다"고 폭로한 김소연 대전 시의원에 대해서는 그 어떤 법정판결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차없이 '제명'으로 응징했기 때문이다.

혹여라도 김경수 지사와 김소연 시의원은 '급(級)이 다르지 않느냐'라고 강변할 요량이라면 또 다른 사례를 들 수 있다. 최근 2심 판결 결과 법정구속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이다.

민주당은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과 관련해 지난해 3월 5일 밤 10시에 긴급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안 전 지사에 대해 출당 및 제명 조치를 의결한 바 있다. 당시 안 전 지사는 이 사건으로 재판을 시작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김경수 경남지사와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같은 도지사인데도 민주당은 이 같이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면 '급(級)이 다르지 않느냐' 는 언급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민주당도 할 말은 있다. 이해찬 대표는 이와 관련해 지난해 11월 23일 국회 기자간담회를 통해 "안 전 지사는 그날 바로 본인이 처세를 시인하고 사과했기 때문에 당에서 징계 절차를 밟았다"며 "이재명 지사와 김경수 경남지사는 본인들이 부인을 하고 있어 당 입장에서는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상식적으로 집권여당의 시의원이 몸 담고 있는 지역조직에 대해 폭로에 나서는 것은 보통 용기와 배짱이 없다면 감행하기 힘들다. 그러나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김소연 시의원은 쫓겨났다.   

증거자료가 없는 단순한 의혹 사건에 대해 민주당은 그간 다른 잣대를 적용한 적이 있다. 바로 이재명 경기지사 건이다. 지난해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이 지사의 '친형 정신병원 강제입원 의혹', '대장동 개발관련 허위사실 공표 의혹', '검사 사칭 의혹' 등이 불거져서 민주당원들 일각에서 이 지사에 대한 제명과 출당 요구가 거셌을 무렵 "의혹만으로는 징계를 내릴 수 없다"고 강조했던 바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급'에 따라, 사안의 파급력과 본인의 인정 유무에 따라 징계 유무가 달라졌다는 얘기다. 그런데 민주당 당헌당규나 윤리규범 어디를 살펴봐도 당원의 위치나 영향력에 따라 징계 처분을 달리 한다는 규정은 없다.

김소연 시의원에 앞서 '의혹'만으로 제명 당한 민주당 시의원이 또 있었다. 지난해 12월 4일 민주당 전남도당은 윤리심판원 회의를 열고 아내가 운영하는 의료기기 사업과 관련해 이권개입 의혹을 받아온 A 목포시의원을 제명 처분했다. 지역구 인근 공무원에게 "국비사업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 있는데 검토해 보라"는 취지로 부당한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언론을 통해 제기되자 당 윤리규범 제6조 '청렴 의무', 제9조 '직권남용 및 이권개입 금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바로 최고 수준의 징계를 내렸다. A 시의원의 경우는 의혹과 관련해 검·경의 수사와 같은 사법당국의 수사조차 받지 않았던 상태다. 언론에서 부당청탁 의혹을 보도한뒤 수사에 착수하기도 전에 사실상 '유죄'로 판단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민주당 지도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뿐만이 아니다. 김소연 대전 시의원의 경우에는 해당 본인에 대한 제명 처분은 물론이고, '김소연 시의원 구명운동'에 나선 당원에 대해서도 징계안을 상정해 놓고 있는 상태다. 이런 구명활동을 한 B 씨에 대한 징계안은 오는 14일 민주당 경기도당 윤리심판원 심사에 오를 예정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괘씸죄'를 적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으로 유명한 김경수 경남지사는 현재대로라면 2심에서 유죄판결이 나더라도 징계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적지않다. 대법원 판결을 보고 징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이 이런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당원의 징계 규정을 명확히 해야한다. 이를테면, '당원은 그 어떠한 사유를 막론하고 1심 재판에서 유죄를 받은 자는 그 즉시로 제명(혹은, 출당) 시킨다' 등으로 원칙을 수립하는 것이다.

실제로 국가공무원법 제73조의3(직위해제)과 지방공무원법 제65조의3(직위해제)을 보면, 공히 적용되는 항목으로 '△ 직무수행 능력이 부족하거나 근무성적이 극히 나쁜 사람 △ 파면·해임·강등·정직에 해당하는 징계의결이 요구되고 있는 사람 △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약식명령이 청구된 사람은 제외한다) △ 금품비위, 성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위행위로 인하여 감사원 및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조사나 수사 중인 자로서 비위의 정도가 중대하고 이로 인하여 정상적인 업무수행을 기대하기 현저히 어려운 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형사사건으로 기소되면 직위해제를 한다'는 것이다. 기준이 아주 명확하다는 얘기다.

이처럼 '그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징계의 잣대'부터 확립해서 제대로 지킨다면 민주당은 '사람에 따라 다른 징계를 내리느냐'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조차도 못한다면 민주당은 공당(公黨)이 아니다. 당지도부가 윗분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들의 이해관계만 중시하는 사당(私黨)일 뿐이다. 감히 시대정신을 입 밖으로 꺼내도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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