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 기자
  • 입력 2019.02.15 12:02

[뉴스웍스=고종관 기자] 병원 전공의의 수련시간은 ‘살인적’이다. 정부가 인정한 법적 근무시간으로 따져도 주당 최대 80시간이다. 여기에 교육목적이라면 8시간을 추가해도 무방하다. 최대 연속 근무시간은 36시간에 이른다. 응급상황에선 40시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가 14일 조사한 수련환경평가 결과를 보면 전체 수련기관 중 38.5%가 이 같은 법령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가천대 길병원에서 사망한 전공의는 최대 59시간 연속수련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수련환경평가에서 법령 미준수가 확인된 수련병원 94곳에 과태료 및 시정명령 처분을 내렸다. 전공의법이 전면 시행된 2017년12월 이후 첫 행정처분이다.

공교롭게도 복지부 발표 당일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수련환경 개선 촉구 및 전공의 사망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내용에 따르면 많은 수련병원들이 근무시간과 관련한 법망을 피하기 위해 EMR(전자의무기록) 접속을 차단한다는 것이다. 협의회가 확인한 수련병원만 전국에 9개나 된다. 짧은 기간 내에 자체 조사한 결과이니 실상은 더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기자회견장에서 한 회원은 “국립이나 사립 등 규모를 가리지 않고 시간 외 근무시간에 EMR 접속을 막아 놓은 곳이 꽤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공의들은 EMR이 차단된 상태에서 다른 전공의나 담당 교수의 아이디로 대리처방을 해야 하니 이 또한 불법행위의 소지가 있다. 특히 당사자의 의료행위가 의료사고로 이어질 때 법적인 책임은 누가 져야 할 것인가.

문제는 복지부가 이 같은 실상을 알고 이번 수련환경평가를 했느냐는 것이다. 몰랐다면 탁상행정이요, 알았다면 직무유기다.

특히 대리처방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있느니만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이번 전공의협의회 기자회견장에서도 이 문제가 집중 거론됐다. 복지부 수련환경평가에 이 같은 사항을 적극 반영해 직접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수련병원의 전공의 처우가 예전보다 좋아지긴 했다. 하지만 아직도 교육생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병원의 입장도 설득력이 있다. 대체인력이나 추가인력이 없는데다 추가되는 인건비도 병원 몫이다. 전공의가 모자라 스텝들이 당직을 서며 과로에 시달리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이러한 인력부족 현상은 환자의 안전을 위협할 정도로 의료 품질에 악영향을 미친다.

결국 해결의 열쇠는 정부가 쥐고 있다. 수련환경평가라는 규제 잣대만 들이대지 말고 중장기적인 의료인력 수급계획과 교육비 지원 등 근본적인 정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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